전병식 주필
젊은 날 나는 깊은 고독과 사색을 즐기는 문학도였다. 하늘아래 첫 동네 홈다리. 한겨울 밤 사경의 시각 백설은 소리없이 내린다. 내려서 쌓인다. 견디다 못한 금강송이 가지를 부러뜨려 적막을 깨뜨린다.

해운대 바닷가를 찾아 부서지는 파도 포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온갖 언어들을 대입해 보기도 하고, 저녁 노을지는 경산 남매지의 파랑에 담겨 반짝이던 햇살을 보면서 신비로움의 근원을 찾아내려 애를 썼다.

호랑이 장가가던 날, 삿갓을 쓰고 천년의 한을 삭이며, 침묵하던 큰 빛내 삿갓봉과 의기투합했던 쓸쓸한 추억도 간직하고 있으며, 아지랑이 피던 날 동해남부선 시냇가 철교 위를 달리던 열차의 난간에 섰다가 봄기운의 속삭임이 너무도 간절하여 손을 놓아버리려 했던 아찔한 기억도 있다.

현동 이모네 집에 갔다가 밤 기차를 타기위해 산등성이를 오르다가 길옆 과수원의 달빛에 젖은 홍도화를 보고, 그 황홀한 정취에 취해 나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난 아직 세상에서 그처럼 숨막힌 서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지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대구의 정모 시인은 “햇볕이 쿵쾅쿵 내리 쬐고” 라는 시어를 나의 골통 속 깊이 박아 주었고, 대학 축제장에 전시된 어느 학생 시인은 “5월의 보리밭이 술렁인다”고 노래하여 봄이 이 땅에 어떻게 번져 오는 지를 가르쳐 주었다.

늦은 봄 사나흘 내리던 비가 잦아들었다. 내 마음은 부산의 한 독서실 창가를 잉~잉~ 울며 스쳐 지나가던 바람과 함께, 자신의 몸을 아스팔트 위에 마구 던져 부셔지며, 돌아가던 ‘비의 귀로’를 따라가기도 했다.

고교시절 한 여름 밤 월변다리를 건너 강 하류쪽 뚝방길을 따라 하숙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10여 미터 떨어진 강바닥에는 막 멱을 감고 바위에 올라 선 칠흑같은 머리채를 가진 우유빛 나신의 아가씨!

난 넋을 놓고 말았다. 어슴푸레 안개 같은 가로등 불빛에 그녀의 옆 모습 윤곽만 보였다. 욕정이 아니었다. 신의 작품이었다. 비로소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성동의 만다라를 읽으면서 부처가 어디에 어떤 형상으로 존재하는 지를 알게 되었고, 머나먼 쏭바강을 읽으면서 전쟁의 팍팍함을 실감했다.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통해서 과학의 궁극에는 영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중학교 저학년 시절 한밤 중에 일어나 두두둑~ 두두둑~나의 창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봄바람을 맞았다. 난 그때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기억하려 애를 썼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처음으로 쓴 시였다.

이처럼 나는 젊은 날 한 때 꽤나 문학적 갈망에 젖어 있었다. 몇날 며칠을 시상에 잠겨들기도 했으며, 한 대목을 두고도 왼종일을 보내기도 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삼랑진 강마을이나, 낙동강역, 기장에 있는 정관사에 똬리를 튼 적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 나의 문학적 자산이 되었고. 젊은 날의 나의 초상이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 지도 알지 못하지만, ‘11일간의 사랑’과 달집과 키오스크’ 라는 두 편의 단편소설은 그때의 습작들이고, 그 외에도 당시 꽤 여러 편의 시편들을 남겼다.

나는 요즈음 삶의 활력을 되찾고 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분과 만날 날을 기다린다. 그는 한국문단의 거장 김주영 작가다. 근간 한 두달 사이에 세 번이나 가까이서 대면하면서 그의 문학적, 인간적 냄새를 직접 맡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나를 이끌어 줄 스승같은 존재로 생각하면서 따르고 싶고, 모시고 싶고, 흠모해 왔던 분은 모두 세 분이었다. 그들은 우국지사도,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남긴 이도, 권력의 정점을 누리던 정치인도, 사업으로 대성공한 부자도 아니었다.

두 분은 소설가이고, 한 분은 종교인이다. 이병주, 이광수 작가와 한경직 목사가 그들이었고, 최근 ‘객주’를 읽고 난 다음 김주영 작가가 추가됐다. 만일 내가 20대에 ‘객주’를 읽었다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만나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던 김주영 작가를 가까이 하게 된 것은 내 인생에 있어 최대의 선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난 외부에서는 간혹 원고청탁을 받아본 적이 있지만, 지역내의 발간물에 실을 글을 써 보라는 권유는 거의 처음 받아본 것 같다. 처음이란 늘 신선하고 설레인다. 그것도 ‘울진문학’이라면, 문학적인 내용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써야겠는 데...

한때 나도 문학도였지만, 지금 소설이나 시를 써본 지 오래되었다. 그 당시는 감흥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다. 특히 생명이 움트는 봄에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신기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빛바랜 추억의 책장만 들출 뿐이다.

그래서 나의 젊은 날 문학적 기억들을 끌어 모아 보았는데, 독자들로부터 배척받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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