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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坡平尹氏)편 - 려조·이조 최고의 명문 반열
2011년 01월 18일 (화) 12:13:44 [조회수 : 13496]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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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에서만 문과급제자 418명 배출한 100만 거족


   
                        ▶원남면 금매2리 몽천샘 위에 세워진 삼조어비각

파평(경기도 파주) 윤씨는 울진에 현재 약 430여 가구에 1천160 여명이 살아 울진의 성씨별 분류에서 13번째를 차지하고 있으나, 전국으로는 약 95만여명이 살아 김해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등에 이어 단일본 족속으로는 전국순위 8번째를 차지하는 거족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배출, 울진지역 토성중 타성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려조 이조의 권력의 핵심에서 최고 번영을 누려 온 집안인 것으로 보여진다.

파평윤씨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이다. 파윤 대종회에서 펴낸 씨족사 「용연보감(龍淵寶鑑)」이라는 문헌에 따르면 시조는 경기도 파주군 파평산 기슭에 있는 용연지라는 못 가운데 있던 옥함(玉函)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시조 윤신달은 문무를 겸비한 현신(賢臣)으로 항상 고려태조 왕건의 곁에서 인의와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충간(忠諫), 삼국을 통일하는데 개국 2등공신이 되었으며,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의 관작을 받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파평을 본관으로 삼으니 명문세도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그의 묘소는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계동에 안장되어 있다.

한 문중이 우수하다는 것은 첫째 숫적으로 번성해야 하고, 둘째 질적으로 뛰어나야 하며, 셋째 국가와 민족에 보람있는 일을 했을 때이다.
이런 점에서 파윤은 시조득성 1천년 이래 숱한 명장 충신 명현들이 나와 역사를 통해 혜광처럼 빛나고 있으니, 오늘날 그의 후손들은 문중에 대한 자긍심과 그 뿌리의 든든함에 자신의 번성을 믿어 틀림이 있으랴!

지난 79년 미 하버드대 <에드워드. W. 와그너> 박사와 전북대 이준호 교수가 공동으로 씨족별 이조 오백년간의 과거급제자의 조사에서 파평윤씨가 역사를 통해 명문세족임이 통계적으로도 밝혀졌다.
그에 따르면 조선조에서의 과거급제자는 모두 1만4천624명으로 그 중 전주이씨가 844명으로 1위이며, 파평윤씨 족이 418명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실 국혼(國婚)가문으로는 청주한씨의 5명에 이어 여흥(驪興)민씨와 함께 4명의 왕비를 배출했는데, 연산군의 생모까지 포함한다면 청주한씨와 맞먹어 가히 그 세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정승 수에서도 102씨족에서의 총 635명의 정승 중 전주이씨 22명, 안동김씨 19명, 동래정씨 13명, 청주한씨, 여흥민씨 각 12명에 이어 11명을 배출 7위를 차지함으로서, 고려 개국공신 가문에 이어 조선조에서도 명문세가를 이뤄 낸 한국 역사상 그 족적을 뚜렷이 하고 있다.

파평윤씨의 위광은 시조의 5세손으로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 문무를 겸비했던 영걸 윤관(尹瓘)장군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는 예종 2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부대를 편성 1107년 병마도통사로 30만 대군을 이끌고 동북계 여진정벌에 나서 두만강 건너 7백리를 개척, 고구려의 옛강토 만주일대에 9개의 성을 쌓고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파평윤씨 집안에서는 지금도 잉어를 먹지 않는다는 윤관장군에 얽힌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한 윤인첨(尹鱗瞻)은 조위총의 난 때 토벌군의 원수로 출정 서경을 평정 고려 명종 묘정(廟庭)에 제향(祭享) 되었다.

파윤은 고려에 이어 조선에 들어와 태조~명종조에 그 세력을 떨쳤는데, 주로 판도공파(版圖公派)와 소정공파( 昭靖公派)에서 대대로 고관 및 학자를 배출 이 두파의 후손이 가장 번성했다.
판도공파는 아들대에서 다시 갈리었고, 그 중 정정공파(貞靖公派) 한 집안에서 같은 시기에 두 왕비가 나올 만큼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윤임(尹任)을 필두로 하는 대윤(大尹)과 윤원형(尹元衡)이 이끄는 소윤(小尹) 간의 일가파쟁(一家派爭)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킨 소용돌이 역사를 남기기도 했다.
성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윤필상(尹弼商)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파평부원군(坡平府院君)에 봉군되었으며, 그의 증손 윤현(尹鉉)은 중종 때 호당(湖堂)에 뽑히고,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시문이 뛰어나 국간집(菊磵集)이 전한다.

윤흥신(尹興信)장군은 임란을 맞아 부산 다대포에서 왜적과 싸우다 동생 흥제(興弟)를 껴안고 함께 순절했다.
숙종 때 대학자 윤증(尹拯)은 소론의 영수로 노론의 거두 송시열과 학문으로 쌍벽을 이루었는데 파평윤씨 문중에는 과거 급제자 수에서 말하듯이 뛰어난 인물의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그 수가 많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의 한 절을 크게 빛나게 한 호국의 인물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의사도 파윤의 후손이다.
충남 예산 출신으로 백범 김구의 지휘아래 1932년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있은 일본의 천장절(天長節) 기념일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사령관 백천(白川)대장을 죽이고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과시한 뒤 순절했다.

윤의사의 위광에 가려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독립투사 윤준희(尹俊熙)는 간도에 있던 일제소유 조선은행에서 현금 15만원을 이송한다는 정보를 입수, 이를 동료들과 함께 탈취 러시아로 들어가 독립군에 댈 무기를 구입하고 운반대를 결성했다가 첩자의 밀고로 체포돼 결국 옥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윤기섭(尹琦燮)은 서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남경에서 신익희 김규식 등과 「민족혁명당」을 조직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울진의 파윤은 1400년대에 입향하기 시작했다. 고려개국공신의 집안으로 이조가 등극하자 벼슬을 버리고 궁벽진 곳을 숨어 든 것으로 추정된다.

파윤의 입향은 야성군파(野城君派)의 윤원생(尹原生)이 기성면 삼산리에, 뒤이어 소정공파 윤응수(尹應修)는 근남면 노음리에, 평정공파 (平靖公派) 윤조(尹肇)는 원남면 오산리에, 정정공파 윤성(尹誠)은 근남면 동정리에 입향하였다.

오늘날 울진에서의 파윤은 대개 원남면 매화리와 근남면 노음리에 세거하고 있으며 기성면 삼산리에 입향한 파윤18世 윤원생은 산곡에서 은거생활을 하면서도 후학양성에 힘을 써 그 명성과 덕망이 높았는데, 그의 후손들이 원남면 매화리 남수산 아래를 터 잡으니 오늘날 매화 윤촌(尹村)을 이루었다.
이 매화 윤촌에서 조선 효종 숙종 정조 3대 왕으로부터 윤촌의 한 가문에 3차례의 비답(批答)을 받았는데 우리나라 역사상 드문 일로서 크나 큰 가문의 영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효종의 비답은 왕이 전국에 정책의견을 구할 때,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의 만언소(萬言疏)에 대한 비답이고, 우암의 장남인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의 상소 국가편의17조(國家便宜十七條)에 대한 숙종의 비답이며, 우암의 증손인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의 철학서 5권을 읽은 정조의 비답이다.

우암의 만언소는 효종을 감동케 하여 관보(官報)에 올리니 전국의 유림들로부터 그 명성이 높았으며, 삼족당의 17개의 정치폐단 지적을 본 숙종은 이의 시정을 비답했고, 황림의 철학서를 본 정조는 철리가 고금에 뛰어나다 하여 그를 영동교양관(嶺東敎養官)에 제수(除授) 하였다.
이에 향중유림은 1794년 매화 몽천서원에 우암과 황림 두분을 배향하고, 세 임금의 비답을 보존하여 후세에 기리고자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을 세웠다.

이처럼 파윤은 울진에서도 학문과 정책과 철학에 뛰어난 인재들로 대를 이었으니, 문중의 인물들을 다 살피자면 오히려 이 분들의 광채가 가려질까 두려울 뿐이다.
그러나 울진문중에서는 학덕의 선조들 못지않게 울진의 항일 독립운동가 4인에 대해서도 남다른 긍지로 여긴다.

전영경 진기열 최학소 등의 동지를 규합 조선독립공작당 조직을 주동하고, 독립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사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윤두현(尹斗鉉)애국지사와 1919년 4월 11일 매화장날 전병겸, 최효대 등 10여명과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4개월 옥고를 치른 윤정규(尹定奎)선생이 있었다.

그리고 또 울진유생 22명의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창유계(暢幽契) 회원이었으며, 102명이 검거된 조선독립 공작당 사건에서 옥사한 16명 중의 한 분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윤대규(尹大奎)와 윤종수(尹宗洙)지사 등이다.

현, 울진군발전추진위 위원장이신 윤원규(70세) 종친회장은 숭조경종(崇祖敬宗), 충효전가(忠孝傳家) 종친돈목(宗親敦睦)의 정신을 후대들에게 전승시켜 한국 대종(大宗)의 후예답게 파윤은 족친과 사회와 나라에 크게 기여하는 종문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연락처 울진문화원 윤대웅 사무국장 T.783-2270)
 

                                                               /전병식 편집국장


입력 : 2005년 02월 25일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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