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 : 2019.11.22 금 20:06
> 뉴스 > 성씨탐방
     
안동권씨(安東權氏)편 - 고려·조선 통한 명문후예
2011년 01월 18일 (화) 13:11:57 [조회수 : 14010]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조회수 : 2078]

고려태조 왕건이 金幸에賜姓,최초대제학등 4始를자랑


   
   ▶안동시 북문동 태사묘 내의 서재에 있는 대종회


[뿌리를찾아서 17회]안동권씨는 고려조의 사성(賜姓)이다.
시조는 권행(權幸). 그는 원래 신라 왕실의 후예로 본명은 김행(金幸)이었다. 관직은 고창군(古昌郡·현재의 안동) 별장(別將).

신라가 극도로 부패, 잇단 민란으로 국운이 기울어 가던 9세기 말엽 후백제의 견훤(甄萱)은 신라를 침입 경애왕을 살해한다.

이에 격분한 김행은 견훤군을 맞아 무찌르는 한편 김선평(金宣平·안동김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안동장씨의 시조) 등과 함께 왕건을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이후 왕건은 이들 3명에게 삼한벽상삼중대국태사(三韓壁上三重大國太師)라는 작위를 내렸다.
그리고 이들 중 김행에게 능병기달권(能炳幾達權, 능히 기미에 밝고 권도에 통달함)하다하여 권(權)을 성으로 내리고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 식읍으로 하사하였으니 후손들이 관향을 안동으로 하였다.

시조 권행의 묘소는 경북 안동군 서후면 성곡리 천등산 능골에 있으며, 향사는 매년 한식일과 10월 중정일에 올리고,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시조 권행과 김선평, 장정필을 모시기 위해 983년(고려 성종 2년)에 세운 삼태사묘는 경북 안동시 북문동 24번지에 있으며, 매년 2월과 8월에 제향한다.

울진군지에 의한 안동권씨의 울진입향은 1453년(단종 원년) 권심(權深)이 처음으로 이후 14명의 선조가 입향한 500년 내력을 소개하고 있다.

권심은 관직이 판관(判官)으로 화(禍)를 피하여 입향하였다 하여 자세한 기록이 없는데, 입향조의 묘소가 온정면 광품리 대송전등(大松田嶝)에 있고, 자손들은 온정 강릉 안동 서울 부산 대구 등에 분포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나라 권씨(權氏)는 2002년 정부 통계에 의하면 약 65만명이 살고 있는데, 그 중 안동권씨가 약 63만명으로 약 97%를 차지하여 전국 본관별 성씨 인구분포에서 11번째를 차지하는 상당한 인구의 종족이다.

울진에 권씨(權氏)는 약 500가구에 1,297명이 살고 있는데, 그 중 안동권씨가 1,271명이 살아 26명만이 본관을 달리하고 있어 약 98%가 안동권씨 일문으로 울진에서의 성씨 본관별 인구순위에서 또한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안동권씨의 집성촌은 안동시 법상동, 안동군 와룡면 이하동, 북후면 연곡동, 풍천면 가곡동, 영주시 영주동, 예천군 저곡리, 봉화읍 유곡리, 청송군 진보면 광덕동으로 주로 안동일대에 분포하고 있는데, 울진에는 기성 다천, 온정 광품, 기성 봉산, 죽변리가 안동권씨의 집성촌이었다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지금까지 본사의 기획특집으로 17개의 성씨를 탐방해 오면서 울진에 1천명 이상의 족친이 살고 있는데도 군단위 종친회가 없는 경우는 안동권씨가 처음이다.

이에 대해 30~40년 전 안동권씨 울진군종친회 총무를 했다는 평해 학곡리에 살고 있는 안동권씨 일족의 권덕후(90세) 할아버지는 군단위 종친회가 결성되어 활성화되자면, 전체 문중에서 제사를 올리 수 있는 단일 입향조의 묘소가 있거나, 문중에서 출중한 인물이 배출되었거나, 문중유산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후포 출신으로 군 종친회 회장을 역임했던 권중봉 어른이 돌아 가신 후로는 안동권씨 문중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안동권씨의 울진문중의 부흥은 울진출신으로 세계적인 사업가의 위치에 오른 아이비그룹 권영호 회장이 나선다면, 울진문중의 규합은 쉽게 이루어 질 것이라며, 권회장의 역할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안동권씨의 역사적 인물로서는 고려 충렬 충선왕 대에 자신을 비롯 5명의 아들과 3명의 사위 등 9명 모두가 봉군(封君)한 권부(權溥). 당대구봉군(當代九封君)은 역사상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것이 권문(權門)의 자랑이다.

이 밖에 충렬왕 대 문과에 급제하여 원나라의 만권당(학문 최고 연구기관)에서 문명을 떨쳤던 권한공(權漢功), 우왕 때 좌사간(左司諫)으로 재직중 고려가 망하자, 안동으로 낙향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권정(權定) 등이 려조의 명신이다.
권정은 조선개국 후 태종이 대사헌의 벼슬을 내리자 이를 거절한 올곧은 선비였다.
조선조 접어들면서 권문은 359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며, 찬란한 가문의 번영을 이룬다.

본관별로 보면 왕족인 전주이씨 다음으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여 상신(相臣)이 40명, 공신(功臣)이 86명, 문형(文衡)이 6명, 봉군(封君)이 69명이나 된다.
이처럼 쟁쟁한 역사적 숱한 인재들을 배출한 권문에는 사시(四始)라 칭하는 4가지의 전래적인 자랑이 있다.

첫째는 전문형지시(典文衡之始)로서 조선조에서 첫 문형(文衡, 조선조 대제학의 다른 이름) 권근(權近)을 배출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영회지시(耆英會之始)로 정2품 이상을 지낸 국가원로들의 교유단체인 기영회(耆英會)를 처음 설립했다는 것인데,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권중화(權仲和)가 처음 설립했다.

셋째가 족보지시(族譜之始)로 성종 7년(1476년)에 최초로 성화보(成化譜)라는 족보를 만들었다는 것이며, 넷째가 호당지시(湖堂之始)로 권근의 조카 권채(權採)가 처음으로 호당(조선조 문관 중 젊고 유능한 인재를 뽑아 학문에만 전념케 했던 국비교육기관)에 뽑히는 영예를 누렸다는 것이다.

특히 권문의 후예들은 인물의 업적 못지 않게 성씨 글자의 철학적 유래에서 큰 자부심을 갖는다.
권(權)은 현 권세권자라 부르지만 원래 저울 권자이다. 저울은 무게를 헤아리고 사물을 가늠하는 기준을 뜻한다.

안동권씨는 대개 청빈(淸貧)한 편이어서 권력과 부를 쌓기보다는 학자나 선비가 많고 득성(得姓)이래 역적이나 도적 등 이른바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별로 나오지 않았다.
권자를 파자(破字), 즉 나누어 보면 지상에서 가장 굳건한 기준 나무목(木초)자가 있다. 한곳에 붙박혀 움직이지 않으며 온갖 비바람에도 휘거나 굽히지 않는다.

다음으로 초두(艸頭), 즉 초(艸)자가 있으니 온갖 풀이고, 그리고 입구(口)자가 둘이고, 마지막으로 새추(?)자 즉 날짐승이다. 이를 다시 조합하면 큰나무를 기준으로 온갖 말 못하는 초본식물과 인류(口)와 금수(禽獸)가 모여 직분에 따른 질서를 이루며, 화합하는 모양으로 안동권씨의 철학적 명제인 병기달권(炳幾達權)과 반경합도(反 合道)와 부합된다는 것이다.

태종 때 조선조 최초의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권근은 안동권씨 제1의 석학. 왕명을 받아 동국사략(東國史略)을 저술했는데, 성리학자로서 그의 입학도설(入學圖說)은 후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세종 때 정인지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바친 권제(權 )는 권근의 둘째 아들. 이들 부자는 당대의 대제학을 지내 명성이 드높았다.

권문은 역사적으로 수 많은 인물들을 배출 한국사에 기여하며 조선조에서 대세를 누렸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해야 될 인물은 임진왜란의 영웅 권율(權慄) 장군. 그의 아버지는 명종 때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 정승을 지낸 권철(權轍)이었다.
임란당시 의병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쳐 경상도 병마절도사겸방어사를 지낸 권응수(權應銖)도 권문의 후예이다.
권율장군으로 대표되는 권문의 구국충정의 기백은 일제의 암흑기에도 이어져 권종해(權鍾海) 권준(權晙) 같은 숱한 항일투사들을 낳았다.

안동권씨는 해방 직후 또 하나의 가문의 영광을 더했다.
권중휘(權重輝) 전서울대총장을 비롯 4명의 대학교총장과 4명의 장관을 배출하였고, 이후 수십명의 국회의원 등의 정치인을 배출하여 안동권씨의 뿌리의 총체적 역량을 보여 주어 한국 명문세가의 반열에 꼽아도 손색이 없다.

권문에는 15개의 계파가 있다.
-검교공파 : 권척을 파조로 한다.
-광석공파 : 권대의를 파조로 한다.
-군기감공파 : 군기감을 지낸 권사발을 파조로 한다.
-동정공파 : 고려 호장동정을 지낸 권체달을 파조로 한다.
-별장공파 : 고려 별장을 지낸 권영정을 파조로 한다.
-복야공파 : 고려 상서좌복야 상장군을 지낸 권수홍을 파조로 한다.
-부정공파 : 고려 식록부정을 지낸 권통의를 파조로 한다.
-부호장공파 : 고려 때 부호장을 지낸 권시중을 파조로 한다.
-수중공파(종파) : 권수중을 파조로 한다.
-시중공파 : 고려 시중을 지낸 권인가를 파조로 한다.
-좌윤공파 : 고려 호장좌윤을 지낸 권지정을 파조로 한다.
-중윤공파 : 고려 호장중윤을 지낸 권숙원을 파조로 한다.
-호장추공파 : 고려 호장을 지낸 권추를 파조로 한다.
-추밀공파 : 추밀원부사 권수평을 파조로 한다.
-급사중공파 : 권형윤을 파조로 한다.

[연락처]울진 권달우(017-811-4462), 죽변 권문석(781-3008), 평해 권수경(016-878-6855), 북면 권두진(782-2990)

                                        /전병식 편집국장



입력 : 2005년 02월 25일 15:42:00

 

울진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울진신문(http://www.uljin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글쓰기-
전체보기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창간일자 : 1991년 4월 8일 |운영위원장 : 박경조 | 발행·편집인 및 주필 : 전병식 | 등록번호 : 경북 0100137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전병식
서울지사장 : 임명룡(☎ 010-6230-1976) | 부산지사장 : 안정권(☎ 010-5488-2686) | 대구지사장 : 전종각(☎ 010-7287-7910) | 연간구독료 : 30,000원
계좌번호 농협(주식회사 울진신문사) 317-0002-7924-91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내3길 17 | 전화 : 054-783-8600 | 팩스 : 054-783-8601
Copyright 2005 (주)울진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이메일 webmaster@ulji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