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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홍씨(南陽洪氏)편 - 우리나라 10대 문벌가
2011년 01월 18일 (화) 13:23:15 [조회수 : 21037]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조회수 : 2118]

당홍과 토홍의 동성동본 두 계보



   
 [사진설명]  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 벽에 걸려있는 홍범도 장군 초상화
고려(高麗), 조선(朝鮮)에 걸쳐 근 1천여 년 융성을 누리며 우리나라 10대 문벌의 하나로 손 꼽혔던 남양홍씨는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으로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보가 있다.

당홍(唐洪)은 멀리 고구려(高句麗)시절 당나라에서 귀화해 온 홍학사의 후예, 토홍(土洪)은 고려 고종조(高宗朝)의 김오위(金吾衛) 별장 홍선행(洪先幸)의 자손으로 각각 일컬어 온다.

- 당홍계(唐洪系) 시조 홍천하(洪天河)는 고구려 27대 영유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8학사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유학과 문화를 혁신시켰다.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고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되었으며 본관을 당성으로 하였다.

당성이 후에 남양으로 지명이 바뀌어 본관을 남양으로 하고 있는데, 현재는 경기도 화성군 일대이다.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인 홍은열(洪殷悅)을 중시조로 1세 조상으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홍은열은 원래 이름이 홍유(儒)였는데, 고려 개국에 크게 공을 세워 태조가 ‘은(殷)나라 부열(傅說 : 중국 은나라 고종 때의 명재상)과 같다.’며 이름을 은열로 하사 했다고 한다.
- 토홍계(土洪系) 시조 홍선행(洪先幸)은 당성에 대대로 살아온 선비의 집안으로 고려 때 금오위 별장동정을 지냈으며 가문의 기틀을 잡아 가세를 크게 번창시켰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남양으로 하였다.

그런데 정작 「토착파」인 토홍의 역사보다 「귀화파」인 당홍의 역사가 3백여 년 이상 유구한데서 토홍은 당홍의 일파라는 설이 있는데, 실제 그 뿌리가 같은 지 다른 지 입증할 자료가 없어 동성동본 두 집안의 관계는 역사의 미궁으로 돌아가 있다.

홍(洪)씨는 남한에만 현재 약 52만명이 살아 성씨별 인구순위는 20위. 그 중에도 대종은 남양(南陽), 우리나라 본관별 성씨 인구순위는 22위이다.

남양홍씨는 홍씨 전체의 약 80%를 차지하는 약 41만명인데, 당홍과 토홍의 비율은 38만 대 3만으로 토홍의 인구는 미미하다. 이것은 또 두 남양 홍씨가 어느 한쪽에 흡수되지 않고 유지돼 온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영이 약 3만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또한 일부 남양의 후손들이 혹시 남양을 남영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남양홍씨의 울진입향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오백년 전으로 1472년(성종 3년) 진사공 홍달효(洪達孝)가 삼척으로부터 들어왔고, 묘소는 근남면 노음리 당북동 성류봉 아래 위치하며, 그 자손들이 울진 원남 근남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한다.

울진에는 현재 홍씨들 모두는 약 250 가구에 66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중 남양홍씨가 전체의 약 80%를 차지 약 50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울진에서 남양홍씨의 본관별 인구순위는 24번째로 남양을 제외한 몇 개의 다른 본관이 보이지만, 그 숫자는 미미하다.

얼마전까지 울진에서의 집성촌은 근남면 진복리와 동정동 마을이었다.
홍원표(68세) 울진군종친회장에 따르면, 입향조 진사공에 묘소에는 매년 음력 10월1일 수십명의 후손들이 함께 모여 제사를 올리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3일 울진종친회정기총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한다.

그리고 매년 음력 3월 첫째 주일 대전 세덕사(世德祠)에서 전국 종친들이 모여 제향을 올리고 있는데, 올해는 양력으로 4월10일 날이다.


   
 
[사진설명] - 세덕사는 선시조 학사공 휘천하(先始祖 學士公 諱天), 시조 태사공 휘은열(始祖 太師公 諱殷悅), 16파조를 모신 사찰로서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에 위치하고 있다.

 
울진에서는 격년제로 버스 한 대를 전세 내어 참배를 다녀오고 있는데, 금년에는 세덕사에 참배를 가는 해로 울진종친회정기총회 겸 다녀올 예정이라고.
대전 세덕사에는 선시조 학사공과 시조 태사공을 비롯한 16파조를 봉안하고 있는 남양홍씨 사우이다.

조선조(朝鮮朝)에 남양 홍씨는 모두 3백 29명(당홍 206, 토홍 123)의 문과 급제자를 냈다. 전주 이씨(全州 李氏) 884명, 안동 권씨(安東 權氏) 359명, 파평 윤씨(坡平 尹氏) 336명에 이어 네 번째의 서열이지만 인구 순위를 감안하면 놀라운 강세다.

당홍에서만 상신(相臣) 8명, 대제학(大提學) 3명, 왕비(王妃) 1명[헌종의 계비(憲宗의 繼妃)], 청백리(淸白吏) 3명을 배출했고, 토홍은 토홍대로 상신(相臣) 3, 대제학(大提學) 2, 청백리(淸白吏) 3명을 배출했으니 남양 홍씨의 명성은 부동이었다.

당홍계의 대표적 인물로는 홍처량(處亮)이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 홍명원(命元) 이 인조 때 시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홍계희(啓禧)는 영조 때 이조판서를 지냈다. 홍명하(命夏)는 현종 때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에 올랐다.

그런데 당홍의 이름을 역사에 길이 드높인 인물은 썩어빠진 조선왕조를 뒤엎고, 천하를 일신하려던 혁명아 홍경래(洪景來). 그는 비록 웅지를 펴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민중의 영웅」으로 길이 살아 숨쉬고 있다.

한말 당홍은 개화파 홍영식이 김옥균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처형되는가 하면, 그의 형 만식은 을사조약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자살했고, 홍종우는 개화파의 거두 김옥균을 암살하는 등 영화와 비운을 같이 했다.

일제 침략의 국란기에 당홍은 적잖은 의병열사를 배출했다.
그 중에서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만주에서 항일무력투쟁을 벌인 「전설적인 인물」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있다.

그는 신출귀몰한 게릴라 전술로 산수 혜산 만포진에서 일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대한의 역사에 길이 빛날 봉오동 전투에서 대전과를 올려 그 이름만 들어도 일군을 공포에 떨게 하였는데, 독립군 활동의 가장 큰 승리였던 청산리대첩에서도 북로군정서 제1연대장으로서 참가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그에게는 건국훈장(建國勳章褒章) 대통령장이 수여되었다.
토홍계는 소수이지만 역사적 인물에서 또한 저력을 지니고 있다.
홍언필(彦弼)이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그의 아들 홍섬(暹)은 선조 때 영의정을 세차려나 중임하여 부자간에 네차례나 수상에 올랐으면서도 명상과 청백리라는 칭송을 들어 영화 중의 영화를 누렸다. 홍담(曇)은 선조 때에 이조판서를 지내고,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이 세워졌다. 홍숙(淑)은 중종 때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병자호란의 삼학사 중의 한 사람인 홍익한(洪翼漢), 혼천의(渾天儀)를 제작한 실학자 홍대용 (洪大容), 독립협회 간부였던 홍정후(洪正厚), 작곡가 홍난파(洪蘭坡), 시인 홍사용(洪思容) 등이 그들이다.

홍원표 회장은 한반도의 유사이래 역사의 전면에서 이 땅에 주역으로 살아 온 남홍의 후예들은 앞으로도 빛나는 선열들의 가문정신을 이어 받아 종친들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 국가에 헌신하는 가풍을 전수하는데 혼신을 다할 것이라고.


울진종친회연락처 회장 홍원표 783-2424, 011-524-2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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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3월 08일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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