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천 하늘조청

굴구지 왕피강가에서 이원복씨 몸과 마음으로 빚어

울진의 대표적 특산물 공인받아 현대백화점 등에 납품

조청(造淸)은 자연에서 채집된 꿀과는 달리 곡물의 엑기스 성분과 엿기름을 섞어서 불에 달여 낸 인공적인 꿀이라 할 수 있는데, 부작용이 전혀 없는 당분이다. 이 음식은 아마 농경사회의 가장 진화된 음식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에서는 왕실보양법의 하나로 왕세자가 공부를 하기 전, 두 숟갈 정도 먹은 다음 공부를 시작했다고 전해지니 얼마나 귀한 음식인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왕실보양법이 과거를 보는 선비들에게 전해지고 반가에도 전해지다가 일반 백성들에게도 전파됐다고 추측된다.

공부에 집중하면 뇌에 충분한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하는데, 뇌에 공급되는 에너지가 바로 당분이다. 우리 인간의 두뇌란 당분만을 영양소로 취하는데, 자연과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우리 인간들의 생물학적 구조를 알아 조청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조청은 주로 수수나 쌀로 만드는데, 요즈음은 쌀과 수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능성 곡물이나 쑥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조청을 만든다고 해서 조청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명품이란 늘 그렇듯이 명소가 있어야 하고 명인이 있어야 탄생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명품음식은 완성도가 높은 한편의 드라마다. 그것도 1인극이다. 혼자서 방송대본을 쓰고 연출과 연기를 해야 하는 1인극이다. 완성을 향한 피나는 노력 없이는 감동도 없는 외로운 싸움이다.

명소와 명인, 명품 조청을 만드는 현장을 찾아갔다. 바로 울진 왕피천 굴구지 마을에 있는 왕비천 ‘하늘조청’이다. 왕피천은 푸른 한줄기 띠처럼 흐르다가 마침내는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아름다운 곳인데, 골마다 마을마다 비경을 숨겨두고 있다.

근남면 구산리. 첩첩산중 긴 물길을 형성하여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오지중의 오지. 왕이 피난 온 계곡이라 전해지며 수 백 여종의 희귀식물과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왕피천’ 하류에서 아홉 고개를 넘어가야 만날 수 있는 굴구지마을. 마을버스가 들어오지 않는 굴구지마을에는 40여 가구 70여명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동네 주민들은 저마다 친환경농사는 물론 봄나물 캐기, 대나무 피라미 낚시, 송이 채취 등을 주로하며 정겹게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원복(54)씨는 ‘그 옛날 어머니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손맛 그대로’ 조청을 만들고 있다. 사용하는 재료는 모두 울진의 친환경농산물이다. 직접 재배한 도라지와 채취한 재료도 쓴다. 가마솥에 참나무 장작불로 꼬박 이틀간 작업시간을 거쳐야 하기에 생산하는 조청의 양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가 명품조청으로 알려져 주문이 넘친다.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난 이씨는 부산에서 불화(탱화)를 그렸다. 불화를 그리면서 조청을 만들어 붓이나 물감 등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중 고향 강원도 정선과 부산을 오가는 경로에 있는 울진에 그림 그리러 왔다가 왕피천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지난 2005년 정착하게 됐다.

조청을 만드는 재료로 지역 농산물만 사용하고 무방부제, 무화학조미료, 무색소의 3無를 고집하는 조청을 만들자, 금방 입소문이 났다. 여러 번 방송사의 저녁프로그램에 소개됐고, 경북도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상도 받았다. 2009년 농촌여성일감제품『명인명품21인』에 선정되어 현대백화점에 납품하고 있으며, 2008~2011년 세계?전국식품박람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그가 조청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는 모두 인근에서 계약재배 방식으로 생산한 무농약 농산물이다. 5년근 이상 도라지, 살짝 도정하여 박피한 수수, 무, 해안가 야산에서 얻은 조릿대 등을 사용해 수수도라지조청, 수수조릿대조청, 수수마늘조청, 수수당귀조청, 찹쌀조청, 보리조청 등을 만들고 있다.

당분 이외의 영양성분이 거의 없는 설탕이나, 유전자 조작 콩이나 옥수수를 사용한 물엿?올리고당 그리고 제한된 꽃으로만 밀원을 조성하는 벌꿀과는 달리 조청은 표백, 정제 등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흙속에 있는 영양소를 고스란히 받아낸 뿌리와 줄기, 잎과 열매, 꽃에서 얻어낸 종합영양소를 포함하고 있어 두뇌건강에 좋은 필수음식이며, 아이들의 학습시기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다.

조청은 한과나 약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물론, 과자를 만들 때 쨈 대용이나 각종 요리시 양념으로 사용하면 좋다.

지난해 이씨의 매출액은 1억 5000만원, 이 중 70%는 비용이다. 생산비에 비해 가격을 낮게 책정한 때문인데,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는 가스불을 사용하여 쉽게 조청을 만드는 대량생산방식 보다는 참나무숯을 이용한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조청 맛을 잊을 수가 없고,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조청을 전하는 게 보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왕피천 하늘조청은 기능성이 우수해 전국의 ‘체질’ 한의원에도 공급하고 있다.

초기에는 조청을 찾는 이가 없어서 마음고생도 많았다. 농업기술센터의 꾸준한 기술지원과 홍보와 한 두 번씩 조청 맛을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홍보가 되고, 전국 식품박람회를 통해 소개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2009년 ~2010년에는 foodex japan 이어 싱가폴 한식 식재료 품평회에 출품하여 세계인들로부터 조청쨈으로 호평을 받았다
2011년에는 농촌진흥청 강소농 차별화 부문에 어머니의 손맛에 기능성을 담은 명품 조청으로 선정되여 구미에서 열리는 경북농업인한마음 축제시 명품전시관에 전시홍보도 되었고 강소농 우수제품으로 청와대에 전시홍보도 되었다.

2012년에는 고부가기술농 사업으로 선정되어 작업장을 전통식으로 개선한 다음 산촌체험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현대백화점의 우수고객들에게 전통조청 체험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친환경 재료들을 가지고 밥하고 섞고 졸이고 기다리는 미학을 평생 실천하고 있는 이원복씨는 우주의 4대 원소인 물, 불, 공기, 흙의 연금술사다. 그것이 하늘조청이란 제품으로 구체화되고 불화를 그리던 화가의 정신을 뛰어넘어 하늘의 마음을 닮아가고자 하는 천손의 후예로서 마음으로 빚는 음식이 바로 ‘하늘조청’이었다. 그러므로 ‘하늘조청’은 하늘에 바치는 음식을 만드는 정성으로 제조한 것이다.

이 음식은 종합영양소이기도 하지만 현대인의 마음 병을 치유하는 최상의 음식인 것이다. 이 음식을 만드는 곳이 울진 굴구지 마을에 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명소와 명인과 명품이 공존하는 마을, 굴구지 산촌마을의 겨울은 깊어 간다. 하룻밤 정도 세속의 무게를 내려두고, 굴구지 마을 산림펜션에서 몸도 영혼도 쉬어 가자. 가래떡에 왕비천 ‘하늘조청’을 찍어 먹으며 긴 겨울밤을 세워보자. 우리 고장 제품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사랑하랴!

‘하늘조청’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왕피천 물길이 우리 인생을 푸르게 적셔줄 것이다.

                                                                  /이종주 프리랜서

전화문의:  010-3489-7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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