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문 논설위원
설밑에 볼 일이 있어 대구에 들렀는데, 온 김에 영화나 한 편 보자 싶어 ㅎ극장을 찾았다.문득 매표소 창에 붙은 『부러진 화살』의 영화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주연배우 안성기가 석궁을 들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표를 끊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개봉 이틀째인 탓에 극장은 썰렁했다. 그러나 썰렁한 느낌도 잠깐, 필자는 영화에 몰입되어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스크린에 법정 진실공방이 주인공과 재판장 간에 치열하게 벌어졌다.

'부러진 화살'은 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석궁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법정영화이다. 사건의 발단은 입시문제를 지적한 대가로 대학 당국의 재임용에서 탈락한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김 전 교수는 학교 측의 결정에 불복하여, 대학을 상대로 재임용 탈락 취소 소송을 냈다. 

새 사학법 규정을 소급 적용할 경우 학교 측의 사전 통지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재임용 탈락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 측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보면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보고 김 전 교수의 재임용 탈락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장인 부장판사는 소송 상대방인 성균관대 출신이었다. 김 전 교수 측은 이것이 패소의 원인이라고 판단, 다시 항소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다시 패소 판결한다. 항소심 판결 사흘 뒤인 부장판사의 집 앞에서 이른바 ‘석궁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관한 김 전 교수와 재판부의 쟁점은 다음과 같다.

(1)핏자국 감정 왜 안했나? 영화 속 핵심 쟁점은 법원이 왜 옷에 묻은 핏자국과 박 부장 판사의 피가 일치하는지 재판부가 대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은 실제로 핏자국을 대조하지 않았는데, 법원은 현장 목격자들의 진술이 분명해 혈흔 대조는 불필요했다고 설명한다.

(2)부러진 화살은 어디에 있나? 김 교수는 부러진 화살이 사라진 것은 검찰 측의 의도적인 증거 인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재판부는 화살이 없어도 유죄 입증이 충분하므로, 사라진 부러진 화살의 존재보다 김 교수의 범행 전 준비 상황을 더 중시했다. 김 교수가 사전에 석궁 발사 연습을 여러 차례 했고, 회칼까지 가방에 넣어가는 등 유죄 판단 근거가 충분했다고 밝혔다. 

(3)화살을 쏜 사람은 없는데 맞은 사람은 있다? 다시 말해 부장 판사의 상처가 석궁에 의한 상처가 맞는가? 영화 속 김 교수 측은 석궁의 위력 실험을 동영상에 담는다. 석궁의 구조와 위력을 감안하면 치명적 상처를 입으므로, 만약 그 정도의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발사 자체가 안 된 것인데, 재판부가 동영상 제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법원은 석궁을 미숙하게 다루면 얼마든지 가벼운 상처만 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영화를 보고 한국 사회에 또 하나의 파문이 일겠구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설 연휴 동안 영화 <부러진 화살>은 개봉 8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고공 흥행행진을 이어갔다. 이에 '석궁테러사건'에 대한 진실공방도 다시 불붙고 있다.『한국판 드레피스』『제2의 도가니』라는 수식어와 함께 사회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줬다는 호평이 나오는가 하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급기야 사법부가 "영화와 사실은 다르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진화에 나섰으나, 이 영화 흥행을 계기로 오히려 사법부에 불신을 가진 목소리가 더 크게 터질 모양새다.

영화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은 "사실을 근거로 한 부분이 90%고, 상상력이나 사실에 의존했지만 조금 바꾼 것을 허구라고 했을 때 10% 정도 된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이 영화에서 사실이라고 하면 '공판장면'인데, 철저히 공판기록을 토대로 사실을 해치치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관람객들의 폭발적 반응에는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고 보겠다.

법에 문외한인 필자가 상식적으로 보아도 김 전 교수의 법리가 재판부의 법리를 압도한다.  주인공인 김 전 교수는 수학전공의 비법률가이지만 감옥에서 법전을 공부해가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재판부와 변호사보다 더 논리가 있다. 수학자답게 원칙과 상식에 근거한 법을 아름답다고 믿는 피고인 김 교수, 원리원칙을 강조하며 형사소송법조항을 갖다 대며 판사를 향해 『법대로만 하라!』고 외친다.

검사 측 증거는 모순점이 계속 나와도 인정을 하면서 피고 측 의견은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주심 재판장은 '기각합니다.',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라는 말로 일관한다. 김 전 교수의 논리 정연한 주장에 벌레 씹은 듯 궁색한 표정을 한 영화 속 판사의 모습! 사법부의 공정과 정의와 진짜 권위는 온데 간 데 없고, 오만과 특권의식에 가득한 권위주의 모습으로만 비쳐져 참으로 안쓰러웠다.

법원은 영화가 사실과 많이 다르지만 대중은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현상에 곤혹스러워 한다. 한마디로 영화는 허구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법부가 영화의 허구성을 입증하려 힘을 쏟기 보다는 사법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최근 사법부 권위를 더욱 존중해야 할 검찰마저도 곽 교육감 재판을 두고 '화성인 판결'이라고 조롱하는 판이다. 주인공인 김 전 교수가 재판이 끝나고 교도소로 수감될 때『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가시 돋친 말의 석궁 하나! 또 다시 사법부를 향해 정통으로 날린다. 이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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