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닭서리, 콩서리, 복숭아, 참외, 수박서리가 재미삼아 있었다. 서리란 청소년들이 모여서 과수원의 과일이나 논밭의 곡식 등을 주인 몰래 조금씩 따거나 베어다가 나누어 먹으며 노는 놀이문화이다. 그 당시에는 들키더라도 주인이 대개 용서하고 넘어 갔다. 농촌에서 자란 5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는 이 서리 문화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요즘엔 철없는 아이들의 짓이라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서리는 더 이상 장난이 아니고 도둑질이다. 그런데 서리보다도 정도가 심한 도둑질이 울진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그러고도 이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연말 울진박물관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원남 갈면 폐교에 보관해둔 박물관 자료 수백 점이 사라졌다. 추적 결과 근남 수산 모 식당, 근남 굴구지 모 식품업체 관계자에게서 사라진 자료가 발견됐다. 갈면 폐교 모 식품업자도 연계되어 있었다. 이들은 박물관 자료들을 마치 자기 물건처럼 버젓이 식당에 진열해두거나, 수백 점을 한 곳에 보관했다가 경찰에 압수당했다.

그들은 사라진 자료를 찾던 추진위 관계자들에게 “도난당한 현장을 확인하는 것보다 서울 인사동 골동품 골목에 가서 물건을 찾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운운하며 ‘도둑놈 제발 저린’ 격의 말까지 했다고 한다. 양심마비, 도덕불감증이다. 한마디로 도둑놈 심보다.

사라진 자료가 발견되자 이들은 “갈면 폐교 모 식품업자 측이 박물관 자료들을 가져가라고 해서 가지고 갔다”고 했지만, 갈면 폐교 모 식품업자 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자기들의 행위가 도난사건으로 불거지자 서로 발뺌을 한 셈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물건도 자기 물건이 아니면 원칙상 그냥 두는 게 맞다. 아니면 주인이 찾을 수 있게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자기물건이 아니니 가져가라고 마치 선심이나 쓰듯이 남의 물건을 넘긴 자나 그 말을 믿고 가져간 자나 모두 도둑놈 심보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들 중 일부는 최근 군 예산을 지원받아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외지 출신으로 이런 사업을 쉽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의심스럽다. 군에서 사업자로 선정해 지원한다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서 그 실적과 기술, 그리고 장비 등을 검증 받았어야 한다. 어떤 절차를 밟아 금방 이사 온 외지인이 사업자로 지정됐는지, 어떤 연고로 군과 연결됐는지, 공무원의 개입은 없었는지에 대해 많은 군민들이 의문스럽게 여기고 있다. 남의 물건을 버젓이 가져가고도 아무런 사과 한마디 없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사업에 군 예산을 뒷받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둑질도 도둑질 나름이다. 중국 역사서에 ‘양상군자(梁上君子)’라는 말이 나온다. 후한 말, 태구 현감이었던 진식의 집에 도둑이 들자 진식이 이를 눈치 채고 자식들에게 훈계하기를, 『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의 군자[梁上君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하고 말했다. 도둑은 이 말에 감복하여 들보에서 내려와 사죄하였고, 진식은 그를 용서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 양상군자로, 도둑을 에둘러 이르는 말이다.

또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위고(V. Hugo)가 쓴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의 주인공 장발장이 배고픈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을 때 선처 받았던 것처럼, 도둑질을 해도 입장을 고려해 용서해 줄 수도 있다. 과거 청소년들이 했던 서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것이 습관화되면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박물관 자료 도난사건은 이런 선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반년이 다 되어가도록 관련자들은 지금까지 추진위 측에 아무런 사과 언급조차 없다. 추진위측은 이들의 무책임한 행동거지에 분노하고 있다.

수사를 맡은 경찰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다. 물건을 잃어버린 자가 있고, 그 물건을 주인 허락 없이 가져간 자가 있다면, 주인허락 없이 가져간 자는 분명 도둑이다. 엄연한 형사 사건이다. 하지만 경찰에서 이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경찰의 이와 같은 처분은 별다른 혐의가 없다면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도 된다는 태도로 보인다. 참으로 해괴한 법 논리를 만든 것이다. 사건처리에 대한 경찰의 공식적 통보조차 없다고 하니 추진위 측에서는 “공권력이 누구 편인지 의문스럽다”는 말까지 나왔다.

진식이 양상군자에게 관용을 베풀었던 것과 달리, 이번 사건으로 열 받은 추진위 측은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추진위 측에서는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도둑놈 심보를 가진 자들은 청정 울진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격한 의견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도둑놈 심보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