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

            만우(김민형)스님
휴대전화에 낯선 번호가 찍혀 받아보면 십중팔구는 무슨 캐피탈, 무슨 카드회사에서 돈 빌려쓰라는 얘기다. 그때마다 대한민국 참 좋은 사회라고, 돈 떨어진 줄 어떻게 알고 선뜻 빌려준다고 그것도 생떼를 쓰다시피 하며 강요하는지.....

처음엔 산에서 사는 스님이라 그다지 돈이 필요없다고 해도 하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나름 거절하는 방법을 창안해냈다. ‘나는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어요’ 라고 하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그 말을 했더니 상대방이 ‘부럽네요’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때 얼마나 미안하던지 다시는 농담으로라도 그 말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자기 돈을 빌려주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한 건 성사시키면 그 수당을 받아 살아가는 아줌마일 텐데 내 말을 듣고 얼마나 박탈감에 시달리겠는가! 주위에 돈이 많아도 정작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니까.

요즘에야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 산골에 사니까 그런 수고는 좀 덜었지만 어쨌든 한 건 성사시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전화를 하고 자존심이며 뭐며 다 팽개치고 악착같이 매달렸겠는가!

그렇다고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산에서 사는 사람이 더구나 승려의 몸으로 처자식도 없고, 집이며 절이며 땅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저 있는 거라곤 차비 정도다. 차가 필요해서 중고차 한 대 구입한 것이 있긴 하지만 워낙 싸게 산 거라 재산목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산골 빈집 하나 빌려 얼마간 월세를 내고, 쌀이며 반찬은 이 절 저 절 다니며 얻어다 먹고, 야생차를 덖어서 원두커피와 바꿔먹고 하는 수준이니 설마하니 그 아줌마가 내 속사정이나 알고 부럽다고 했겠는가.
하지만 그 속사정을 알면 진짜로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쓸 일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돈을 벌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는 그만큼 자유로운 셈이고, 그런 만큼 스트레스를 받거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감에 시달리는 일은 적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나처럼 살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결혼도 하지 않고 직장에도 다니지 않으며 사회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유지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친지의 애경사에 얼굴이라도 비치려면 돈은 있어야 하고 가능하면 풍족하면 더욱 좋으리라.

10대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 사회는 그러나 그리 풍족한 것 같지는 않다.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누군가는 돈이 남아돈다는 것이고, 그 남는 돈으로 이자를 쳐서 더 돈을 불리겠다는 말인데,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어렵다고 돈이 없다고 한다.

마늘밭에서 현금이 수십억이 나오고, 누구는 몇 조라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며, 기백억 단위의 로비자금을 쓴 기업인도 있다는데 누구는 교통비와 채소값에도 가슴을 졸인다. 수입억의 자산가인 어린이가 있는 반면, 점심을 굶는 어린이도 있다. 누군가는 남아서 걱정이고 누군가는 없어서 걱정이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는데 욕망은 무한정이다. 채워도 채워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자기가 필요한 것 외에는 나누어주면 될 터인데도 그 나눔을 모른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아무리 공덕을 많이 쌓고 복을 짓는다해도 회향(回向)을 잘 하지 못하면 올바른 공덕이 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즉 내가 쌓은 공덕을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로 돌리라는 뜻이다. 혼자만 독차지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복이 아니라 화가 된다. 욕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아줌마는 누군가에게 연리 몇 프로에 돈을 빌려쓰라고 전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진 게 돈밖에 없다’라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는다 하더라도 정말로 돈이 펑펑 남아도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내가 가진 건 정말이지 돈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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