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

               만우스님
뱀만큼 다양하고 극단적인 상징을 가진 동물은 흔치 않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술의 상징이었으며,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은 우로보로스, 즉 완전한 우주의 상징이다. 힌두교에서는 지혜, 이집트에서는 권력, 중국신화에서는 창조와 결혼의 상징이었다.

반면 성경에서는 간사하고 교활한 사탄의 상징으로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하여 낙원으로부터 추방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공포영화나 괴기소설에서는 공포의 상징으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이다.
 
풀숲이나 나무, 또는 늪에 숨어서 천천히 움직이다가 갑자기 사냥감을 공격하는 뱀의 은밀한 습성, 또 강한 독을 품고 있다거나, 사람이나 동물을 친친 감아 압사시키는 강력한 힘 등이 뱀을 공포의 대상으로 둔갑시켰으리라.

또 보는 이에 따라 그 시각도 다양하다. 땅꾼들에겐 돈으로 보일 것이고, 호색가에겐 정력제로, 병자에겐 보양식으로, 애완동물로 키우는 이들에겐 그저 귀엽게만 보일 것이다. 그래서 백사라든가 희귀한 뱀을 잡아 비싼 값에 팔았다는 기사도 종종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나 일반인들에겐 징그럽고 무서운 두려움의 대상이다. 겁에 질려 도망치기 바쁘다.

산골에 살면서 뱀과 만나는 일은 밥 먹는 일만큼이나 흔하다. 봄이 되면 양지쪽에 뱀이 나와 일광욕을 즐기는 장면을 흔히 본다. 길을 가다가도 마주치고 물을 건너다가도 본다. 어떤 때는 집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한다.
 
뱀이 두렵다고 해서 그걸 다 때려잡는다면 아마 너무 바빠서 산골생활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뱀을 볼 때마다 처음엔 깜짝 놀라지만 놀라운 생명력에 신비감마저 든다. 자주 접하다보면 고개를 슬쩍 돌려 인사도 하고 사라진다. 

이제까지 경험상 뱀이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흔치 않다. 대부분 미리 도망쳐 숨어버리거나 아니면 경고를 한다. 그런데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읽지 못할 뿐이다. 즉 자연과 함께 호흡하지 못한다.

자연은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인간의 감각이 그것을 읽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더러 뱀에 물려 상처를 입고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한 불행은 우리나라에서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훨씬 적다. 

한번은 친구가 집앞 바위 아래 사는 누렇고 커다란 뱀(아마 구렁이 종류이지 싶다)을 보더니 기겁을 하고 방으로 뛰어들어와 저 뱀을 쫓아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부산을 떨었다. 그래서 그 뱀이 너를 공격하더냐 하고 물으니까 자기를 피해 굴속으로 숨었다고 했다. ‘저 뱀이 쥐도 잡아먹고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음으로 해서 오히려 우리가 이익을 보기도 한다.’ 했더니 그제야 좀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뱀은 공포도 지혜도 사탄도 아닌 그저 자연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은 생명일 뿐이다. 내 목숨이 하나이듯 뱀 역시 하나의 목숨이다. 내가 사람이라고 해서 그 생명의 무게가 더하며, 뱀이 징그럽다고 해서 그 무게가 덜한 것이 아니다. 

어릴 적 회초리를 들고 뱀을 때려죽이던 기억만 하면 지금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때는 뱀은 사탄이며 공포이므로 때려죽여도 무방한, 오히려 그 행위가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 아무런 죄책감이나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뱀으로 태어난 게 무슨 죄라고! 사람의 관념이란 게 이렇게 뱀보다 더 무섭다. 성경에서 읽은 그 관념 하나로 인해 뱀은 처단해야할 마녀이며 사탄이 되어 그 생명의 무게를 잃어버렸다. 뱀이 건강하다는 것은 이 자연과 우주가 건강하다는 것인데, 그와 반대로 뱀이 건강하다는 것이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이와 반대인 경우도 있다. 아이들에게 뱀과 강아지에 대해 질문을 하면 열이면 열 뱀은 싫고 강아지는 좋다고 한다. 뱀한테 물려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런 일이 없다고 하고, 강아지한테는 더러 물려본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왜 뱀을 싫어하지? 그리고 왜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세우지? 좋은 상징이든 나쁜 상징이든 어쨌든 그런 관념은 위험하다. 그것이 극단화되면 뱀을 좋아하거나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불의(不義) 또는 악(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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