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스님

             만우스님
스님에게 나이를 묻는 일은 거의 없지만 돌아다니다보면 실제 나이를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40대 중반이라고 대답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인다나. 어쨌든 기분은 좋다. 나도 어리게 보이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데도 말이다. 어려보이는 이유는 단연 피부에 있다. 얼굴 피부가 참 깨끗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면 나는 슬쩍 농담을 하며 넘어간다. -제가 좀 특별한 비누를 씁니다. -그게 뭔데요? -빨래비누요.

물론 상대편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이다. 삭발을 했으니 샴푸나 린스를 쓸 일이 없고, 차를 덖으면서부터는 빨래비누 외에 향기가 진한 비누를 아예 쓰지도 않을뿐더러 장만해놓지도 않는다.
 
차쟁이들의 이상한 고집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차는 손으로 직접 덖고 비벼야 하는 작업이니만큼 찻잎에 비누향이 스미면 그 맛이 좋을 리가 없다. 차는 아무래도 식물성 그대로의 풋풋한 맛으로 마시는데, 진한 향수가 밴다면 차맛을 버린다.

그래서 차를 덖는 동안에는 빨래비누조차도 쓰지 않는다. 더러 결벽증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스런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겠는가. 차를 덖는 동안만큼은 어떤 이는 담배를 피워도 장갑을 끼고 피우고, 또 어떤 이는 고기나 생선 같은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거나손대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러다보니 향기가 나는 제품은 오히려 역해졌다. 다른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야 어쩔 수 없이도 맡을 수 있지만 내 몸에서 그 진한 향이 나면 왠지 거북하다. 빨래비누를 쓰고 나서 물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오히려 좋다. 머리도 그것으로 감고 목욕이나 빨래는 물론 설거지까지 온통 빨래비누 일색이다.

환경오염을 최소화하여 지구 생태를 지키는 일에 조금이라도 일조한다는 의무감은 아니다. 산골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생활의 모든 것을 간소화시켜야 한다. 도시 생활처럼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살 수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종종 닥친다. 이를테면 추운 겨울에 머리를 감기 위해 샴푸를 쓴다면 그것을 헹구어내기 위해 더 많은 물을 데워 소비해야 한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에 장작을 때서 살았으니 따뜻한 물은 정말 무엇보다 귀하다.

빨래비누도 마트에서 파는, 향기가 좀 있고 공장에서 찍혀 나온 것들은 쓰지 않는다. 그 비누는 너무 무르고 화공약품 같은 게 섞여있는 것 같아 꺼린다. 장날에 파는 오천원에 세 개짜리 크고 단단한 비누라야 오래 쓴다. 그것으로 빨래며 온갖 세재 역할 다 맡아 하는데도 오천원이면 겨울 한 철은 거뜬하다. 

그러나 요즘은 손으로 직접 만든 비누를 쓴다.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화장품이며 꽃꽂이 강습을 하는 분이 내 취향에 맞게 비누를 만들어주셨다. 두 개를 만들어주셨는데, 하나는 진주조개가루를 섞은 것이고, 하나는 대나무를 섞었다고 했는데, 물론 향기는 전혀 가미하지 않았다.

꽤나 고급스런 비누를 쓰고 있는 셈이다. 주신 성의를 생각해서 열심히 쓰려 하고 있지만 세수를 할 때도 거의 비누를 쓰지 않으니 두 달이 넘도록 별로 닳지도 않았다. 나의 못 말리는 버릇이 되었다.

그러니 피부가 좋은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빨래비누가 그 정답이라고 하는 말도 전혀 그릇되진 않았다. 좀 더 환원해서 말한다면 피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외형을 가꾸기 위해 욕심내지 않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속편하게 사는 게 그 비결이라고.... 그렇게 말한다면 화장품이나 세제류를 만들어서 파는 회사에서는 나를 꼴불견 같은 놈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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