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스님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인다나. 어쨌든 기분은 좋다. 나도 어리게 보이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데도 말이다. 어려보이는 이유는 단연 피부에 있다. 얼굴 피부가 참 깨끗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면 나는 슬쩍 농담을 하며 넘어간다. -제가 좀 특별한 비누를 씁니다. -그게 뭔데요? -빨래비누요.
물론 상대편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이다. 삭발을 했으니 샴푸나 린스를 쓸 일이 없고, 차를 덖으면서부터는 빨래비누 외에 향기가 진한 비누를 아예 쓰지도 않을뿐더러 장만해놓지도 않는다.
차쟁이들의 이상한 고집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차는 손으로 직접 덖고 비벼야 하는 작업이니만큼 찻잎에 비누향이 스미면 그 맛이 좋을 리가 없다. 차는 아무래도 식물성 그대로의 풋풋한 맛으로 마시는데, 진한 향수가 밴다면 차맛을 버린다.
그래서 차를 덖는 동안에는 빨래비누조차도 쓰지 않는다. 더러 결벽증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스런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겠는가. 차를 덖는 동안만큼은 어떤 이는 담배를 피워도 장갑을 끼고 피우고, 또 어떤 이는 고기나 생선 같은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거나손대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러다보니 향기가 나는 제품은 오히려 역해졌다. 다른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야 어쩔 수 없이도 맡을 수 있지만 내 몸에서 그 진한 향이 나면 왠지 거북하다. 빨래비누를 쓰고 나서 물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오히려 좋다. 머리도 그것으로 감고 목욕이나 빨래는 물론 설거지까지 온통 빨래비누 일색이다.
환경오염을 최소화하여 지구 생태를 지키는 일에 조금이라도 일조한다는 의무감은 아니다. 산골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생활의 모든 것을 간소화시켜야 한다. 도시 생활처럼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살 수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종종 닥친다. 이를테면 추운 겨울에 머리를 감기 위해 샴푸를 쓴다면 그것을 헹구어내기 위해 더 많은 물을 데워 소비해야 한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에 장작을 때서 살았으니 따뜻한 물은 정말 무엇보다 귀하다.
빨래비누도 마트에서 파는, 향기가 좀 있고 공장에서 찍혀 나온 것들은 쓰지 않는다. 그 비누는 너무 무르고 화공약품 같은 게 섞여있는 것 같아 꺼린다. 장날에 파는 오천원에 세 개짜리 크고 단단한 비누라야 오래 쓴다. 그것으로 빨래며 온갖 세재 역할 다 맡아 하는데도 오천원이면 겨울 한 철은 거뜬하다.
그러나 요즘은 손으로 직접 만든 비누를 쓴다.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화장품이며 꽃꽂이 강습을 하는 분이 내 취향에 맞게 비누를 만들어주셨다. 두 개를 만들어주셨는데, 하나는 진주조개가루를 섞은 것이고, 하나는 대나무를 섞었다고 했는데, 물론 향기는 전혀 가미하지 않았다.
꽤나 고급스런 비누를 쓰고 있는 셈이다. 주신 성의를 생각해서 열심히 쓰려 하고 있지만 세수를 할 때도 거의 비누를 쓰지 않으니 두 달이 넘도록 별로 닳지도 않았다. 나의 못 말리는 버릇이 되었다.
그러니 피부가 좋은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빨래비누가 그 정답이라고 하는 말도 전혀 그릇되진 않았다. 좀 더 환원해서 말한다면 피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외형을 가꾸기 위해 욕심내지 않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속편하게 사는 게 그 비결이라고.... 그렇게 말한다면 화장품이나 세제류를 만들어서 파는 회사에서는 나를 꼴불견 같은 놈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