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농모 배동분의 에세이로 쓰는 유럽연수기 (4)


“세계인들 식초 한 방울에 기품있는 표정으로 감탄”

 발사믹 식초 뿌린 스테이크냐에 따라 가격차 겁나

 4대 걸친 가업 역사가 만든 제품 세계적 명성 얻어

 


마음 안쪽에서는 아프다고 아우성이고, 바깥쪽에서는 봄이 어디쯤에서 심호흡하고 있는지 나가보자 아우성이다.
그러자니 어수선함만이 발길에 채이나 난 마음의 거죽 편을 들어 털신을 꿰어찬다.

넌덜머리나도록 온 눈은 대찬 햇살에도 끄떡없는 것으로 보아 산골의 봄은 아주 먼, 아득히 먼 곳에서 숨도 고르지 않고 넋 놓고 있지 싶다.

이제 콧구멍에 찬 공기 불어넣고 들어왔으니, 유럽 연수라는 우물에서 물을 다시 떠올려 봐야 한다.
그때의 퍼즐조각들을 맞추고 있다. ****************************

 

 

 

 

이번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연수에서 가장 감동적이라고 생각하는 곳을 꼽으라면,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사믹 식초 농장의 방문이라고 침튀길 것이다. 그 정도로 발사믹 식초 농장의 견학은 내게 커다란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한 마디로 전 세계인이 그 식초 한 방울에 오만가지 기품 있는 표정을 지으며 감탄하고, 그것이 잠자리 오줌만큼(잠자리도 오줌을 누는지 모르겠다) 뿌려진 스테이크냐, 아니냐에 따라 가격차를 겁나게 많이 둔다는 점만 들더라도 발사믹 식초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뭐 하나만 될 성 싶으면 초대형 시설과 운영체제로 돌입하여 공장형 아니, 기업형으로 가기 십상인데 4대에 걸쳐 하나하나의 행동이 바로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역사가 되는 제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나의 이해심의 한계를 넘는 현장이었다.

징검다리처럼 세대와 세대를 내려온, 세계인이 감탄 수준을 넘어 경배하는 이 발사믹 식초는 유기농 인증을 받은지 20년이 된 농장에서 직접 포도를 재배하여 식초라는 명품이 탄생할 때까지 전 과정을 가족 경영으로 이루어내고 있었다.

포도를 12시간 정도 끓인 다음 둥근 나무통에서 12년 이상 숙성시킨다는 발사믹 식초. 이 나무통 바테리에(batterie)는 떡갈나무, 밤나무, 체리나무, 아카시아나무, 벚나무, 물푸레나무, 뽕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로 만드는데, 바리통을 1~2년 마다 서로 왕래해 가며 식초는 숙성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나무통을 바꿀 때마다 그 나무 고유의 향이 배어 들도록 하기 위함이다. 명품 식초들이 잠들어 있는 숙성실은 어마어마하고, 삐까번쩍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고조할아버지가 방앗간으로 사용하던 것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어 또 한번 감동케 했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오래된 바리통이 수백 개씩 침묵 속에서 숙성되고 있었는데, 1850년에 담은 것도 있었다. 이처럼 오래 된 것은 얼마 받고 파느냐는 한 연수생의 질문에 절대로 돈 받고 팔지 않는단다.

이 가치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귀한 손님에게 선물한다는 말에 자부심이 진하게 묻어났다. 하기야 엑스트라급은 25년산부터 인정을 받는다고 하니, 명품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을 먹이로 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100년 이상의 세월을 머금고 있는 상품, 상품이라 하면 너무 가볍게 느껴지고 이건 역사를만들어가고 있는 현장 같았다.

이 명품 발사믹 식초의 가격은 25년산이 85유로(250ml-약 12만1천원), 40년산은 110유로(15만6천원)에 현지에서 팔리고 있으니, 한국으로 수입된 식초의 가격은 상상에 맡기겠다.

‘역사 지킴이’ 즉, 농장주가 바리통을 다루는 모습은 예식과도 같았으며, 자신의 일이 선조들의 것을 수행해야 할 미션이라 생각한다는 말에 머리가 숙여졌다.

난 오늘 농장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을 방문했고 하나의 명품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요인들이 서로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앞의 연재에서도 말했지만, 이 발사믹 식초병을 디자인계의 세계적 거장 주자로가 디자인할 정도로 마케팅에도 엄청난 공을 들인 결과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발사믹 식초 농장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이탈리아의 또 다른 세계적인 명품 파마지아노 치즈 농장을 방문했다. 이 농장 역시 3대째 운영해 오고 있다니, 명품의 기본은 어쩌면 시간이라는 먹이가 기본이란 생각이 박히게 했다.

이곳에서 사육되는 모든 젖소는 인공사료를 주지 않고 곡물과 건초를 먹이고 있었고, 소들에게 넉넉한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물론 항생제를 전혀 사용치 않은 젖소에서 얻은 우유로 치즈를 만든다는 험브레 농장. 치즈로 만들어지고 12개월 숙성한 다음부터 판매할 수 있는데 24개월, 36개월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그리되면 처음에는 45kg이던 것이 숙성되면서 36kg으로 줄어들 정도라고 한다. 또한 이 치즈는 협회에서 전수 검사를 하여 이에 합격해야만 ‘파마지아노 레지아노(Pamigiano-Reggiano)' 인증마크를 준다. 또한 QR코드를 통해 생산이력이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는데, 역시 명품이라는 말이 껌처럼 달라붙는 데는 그만한 노력과 관심, 사랑이 거름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치즈 저장고에는 약 9,000개의 치즈가 숙성되고 있었고, 청소 로봇이 치즈 덩어리를 청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기적으로 뒤집어 두는 등의 관리를 해내고 있었다. 세계적인 셰프인 막시모 보뚜라가 사용할 치즈는 전용 선반에서 숙성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해외 공연 때 반드시 가방에 파마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넣고 다녔다고 설명하는 치즈 연합회 실무자의 모습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처럼 발사믹 식초와 파마지아노 치즈 농장을 방문했을 때, 쓰나미처럼 몰려든 감동과는 달리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맥이 없었다. 우리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으로 보였다.

연수 떠나올 때 원기충천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호텔방에 구겨져 오늘 방문한 농장필름을 되돌려 보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원인을 찾아냈다. 뭔가를 단숨에 따라잡으려니 버거웠겠지. 그들과 같은 효과를 단박에 내려니 시간이 딸렸겠지.

그러니 역사를 만들 정도의 시간과 철저한 제품관리가 관건이었다. 거기에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 내는 모데나처럼 우리 울진도 각개전투가 아닌 상품과 마케팅, 그리고 관광이라는 삼박자를 엮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주력한다면 충분히 실현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치즈 하나만 보더라도 이탈리아 치즈보다 더 좋은 치즈가 없어서 세계인들이 이탈리아 치즈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치즈에 마케팅이라는 튼튼한 꽃받침대가 있었기에 아름다운 꽃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그쯤되니 신생아처럼 구겨질대로 구겨진 얼굴상이 서서히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뭔가를 배운다는 건 이렇듯 절망 속에서도 싹을 발견하고, 복에 겨워 얼굴 붉히는 것은 아닌지....


 ※배동분; 2000년 서면 쌍전리로 귀농하여 낮에는 야콘농사를 지으며, 밤에는 글을 짓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과 <귀거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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