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진과 해일 필자가 2년 전 조선실록 평해ㆍ울진 관련 350쪽 기사를 발췌한 후에 해제(解題)에 대한 자료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조선실록에 나오는 평해ㆍ울진 관련 기사는 첫째, 지방수령과 관련된 것. 둘째, 지방의 자연재해(지진, 홍수, 가뭄, 해일). 셋째, 인물에 관련된 것. 넷째, 유배와 관련된 것. 다섯째, 국방에 관련된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울진과 관련된 조선실록 중 천재지변에 대하여 연재하고자 한다.

 

上.지진과 해일 中.홍수와 화재 下.전염병을 제목으로 정하였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보아서 오늘날에는 그다지 큰 지진은 없었지만 조선전기 특히 16세기를 전후한 조선중기는 지진에 관련된 내용이 자주 나오고 있다. 평해ㆍ울진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에 관한 것을 연대별로 정리해 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

 

평해ㆍ울진 지역에서 발생한 천재지변에 대한 통계를 살펴보면 조선태조부터 철종까지 지진이 20회, 홍수19회, 태풍12회, 우박6회, 질병 및 한발, 충해 등이 산발적으로 발생하였다. 이번에 집중적으로 서술하고자 하는 것은 해일과 지진이다.

 

필자가 놀란 것은 지금부터 264년전에 동해안 지역인 울진지역에 해일이 발생한 사실이다. 1741년 7월 19일 실록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강원도 평해 등 아홉 고을에 바닷물이 줄어들어 육지와 같이 편편해 졌다가 얼마 후에 물이 육지로 넘쳐들어 하루에 번번이 7ㆍ8차례나 넘어드니 바닷가의 인가(人家)가 많이 표몰(漂沒) 되었고 주즙(舟楫)이 파손 되었다.』 이와 같이 사실이 확인 되었다.

 

그리고 1667년 5월 26일 (기사) 평해 군의 바다 속에서 검은 안개가 나오다. 『원양감사가 평해군에서 5월 13일 신시(申時) 말엽에 검은 안개 한 가닥이 바다 속에서 나와 잠깐만에 하늘을 뒤덮어 천지가 컴컴해서 지척도 구분할 수 없었는데 초저녁에야 개었으며 또 며칠만에 강릉과 평해가 연이어 대낮이 컴컴했다고 보고 하였다.』

 

이 기록을 상고해 보면 지금부터 338년전 동해안 지역의 해저 화산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고 아직도 이 해역에 해저 화산활동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여러가지의 증거가 표착되고 있다. 또 1659년 2월 24일(을유) 조선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지진이 있으므로 해괴제(解怪祭)를 지내라고 명했는데 이날 해괴제를 지내라고 분부 하였는데 또 지진이 발생하였다.』 본고는 17세기에 번번이 일어났던 자연재해에 대해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천재지변을 어떻게 대응 하였을까? 미수 허목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이것은 당시의 재난을 대략적으로 살펴본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재난의 성격을 알아 본다는데 뜻이 있다.

 

재앙을 막고 백성들의 민심을 수습 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옛날 문헌을 연구하다 보면 허황되고 믿지 못할 일이 있다. 그렇지만 후세에 일어난 어떤 사실과 연계시켜 보면 허황된 기록이 아니였음을 실감하는 경우가 있다. 미수 허목이 삼척부사시절 ‘척주동해비’를 세웠다. 이 비를 세운 목적은 동해안 바닷가에 해일로 인하여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의 재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 비석을 세운 그 다음날부터 이상하리 만큼 신기한 일이 일어났고 그 후 바닷가의 침수피해를 입었던 곳까지도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육경(六經)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도가적이며 주술적인 비유들이 포함되어 있다. 미수는 유학자이기도 하지만 전국 명산 대첩을 방랑하면서 도가적인 인물과도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이인(異人)으로서 영적인 파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수 허목의 그림과 글씨는 화재와 재해를 예방한다는 말이 전해저 내려오므로 공장이나 상가 그리고 개인들 소장자들이 고가에 매입하여 소장하므로 재해를 막을 수 있다 생각하고 있다. 삼척시에서 허목의 동해척주비문을 표구나 액자로 상품화해서 팔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전설적인 이야기 같지만 한 시대에 백성들의 민심을 수습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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