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그 어느 해 보다 다사다난했던 2004년 갑신년도 고요히 저물었다. 한자문화권에서 새해를 정하는 기준은 동지일, 음력 1월1일, 입춘일 등 3가지이나 여기서는 양력으로 간주하자.

 

 우리나라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한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선정해 오고 있다. 첫해에는 오리무중(五里霧中), 2002년의 이합집산(離合集散0, 2003년의 우왕좌왕(右往左往)에 이어 2004년에는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선정됐다고 한다. 중국역사책인 後漢書에 나오는 말로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를 공격한다’는 뜻이다.

 

당쟁이 극심할 때 분파주의, 당파주의를 비판하는 용어로도 널리 쓰였다. 경제불황은 극심한 내수침체로 “체감경기가 IMF 외환위기때 보다 더 나쁘다”는 서민의 하소연이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경제전문가들은 ‘질병백화점’, ‘고치기 어려운 우울증과 무기력 환자’, ‘조노현상(早老現象)에 따른 산성화된 체질’ 등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해찬 국무총리는 “불황은 언론이 왜곡하고 있다”고 했고, 노무현대통령은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위기를 확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별한 불경기지만 우리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의원들이 시장에 갔다가 상인으로부터 “소금을 확 뿌려 버리겠다”고 말하는 수모를 당했다. 또 여의도 소규모 식당주인들의 ‘솥뚜껑 시위’도 있었다.

 

헌정질서면에서 볼때 3월12일 헌정사상 최초로 노무현대통령의 선거법위반 등을 이유로 탄핵안을 의결하고 5월14일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이 났다. 탄핵의 역풍은 예상외로 커서 4월15일 17대총선에서 여당은 152석의 과반의석을 확보하였고,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참패했다. 또 10월21일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정부는 즉각 이 사업을 중단했고 연기, 공주 등 충청도의 반발 등 후폭풍이 거셌다. 탄핵결정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사필귀정으로 헌재 재판관에게 감사 드린다”고 했지만,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이 나자 “총칼만 들지 않았지 5.16, 12.12 등에 버금가는 쿠데타(이목희 의원)라는 비난이 있었다. 4월15일 총선은 탄핵풍과 노풍의 대결이었다.

 

그 결과 386운동권 출신 의원 총 50명이 금빼지를 달았다. 민노당 노희찬 의원은 “탄핵풍 덕을 본 열린우리당은 길에서 지갑 주웠으면 파출소에 갖다주라”고 했다. 여당의 ‘노인폄하’ 논란은 60, 70대가 되면 뇌세포가 달라진다(유시민 의원)고 까지 악랄했다.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노대통령은 “왜곡된 민의로 선출된 (이전)국회는 참된 대의기관이 아니고 17대 국회가 국민의 국회”라고 했다.

 

4대 쟁점법안을 여당은 “4대개혁법안이라 했고, 야당은 4대국민분열법안”이라고 불렀다. 노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국보법과 관련해서는 “서울 한가운데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흔들어도 처벌하지 못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노대통령은 “친일했던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리고”란 말을 남겼다. 또 “서울 한복판에 빌딩을 가진 신문사가 행정수도 반대여론을 주도한다”고도 말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유럽순방 중 조선, 동아는 더 이상 까불지 말라“며 ”중앙일보는 역사의 흐름에 가닥을 잡고 중심을 잡은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6월에는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된 김선일씨가 무자비하게도 피살되고 우여곡절 끝에 8월부터 11월말까지 3,600여명의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파견됐다.

 

KBS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NHK에서 방영되면서 주인공인 탤런트 배용준을 일컫는 ‘욘사마신드롬’이 일본열도를 뒤덮었다. 한국은 욘사마를 보러온 일본팬들로 수천억원대의 경제효과를 누리고 있다. 11월1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와 대리시험으로 먹칠했다. 학벌지상주의와 도덕불감증이 여실히 드러났다. 심지어 ‘技七運三’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4월22일 북한 신의주 부근 용천역에서 석유와 LP가스를 실은 화물열차들이 충돌하면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수천명의 사상자가 나고 역 주변 건물이 모두 부서지는 대형 참사사건이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해 남한은 물론 미국, 일본도 복구를 지원했다. 4월에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정식 발효되었고, 11월에는 싱가포르와도 FTA를 체결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황우석교수 인간배아복제의 성공이다.

 

이를 계기로 ‘황우석신드롬’인 과학붐이 일어났으며, 황교수는 과학자 중 최초로 국가요인급 경호를 받게 되었다. ‘사이언스’지는 지난 17일자에서 황교수의 연구결과를 올해 10대 연구성과 중 세 번째로 뽑았다. 이상으로 조선일보가 선정한 올해 국내 10대뉴스의 대부분을 언급했지만 내외에도 수많은 명암이 엇갈린 사건사고가 있었던 한해였다.

 

자기와 같은 편은 무조건 깨끗하고 정당하며,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부도덕하고 잘못됐다는 소인의 독선적 사고가 올해 갑신년 한국을 휩쓸었다. 그래서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당동벌이(黨同伐異)”라고 선정한 것 같다. 밝고 서기어린 희망찬 2005년에는 동보다 화를 추구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즉 코드가 안 맞는 사람들과도 마음으로 통할 수 있는 “당화친이(黨和親異)”의 한 해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드린다.

 

이를 위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민관군, 한국민 모두가 믿음과 소망을 갖고 꾸준히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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