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유럽기행 (5)


패키지여행은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이드가 얼마나 열정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관광의 질이 달라진다. 가이드는 함께 걸으면서 안내해야 한다. 말만 앞세우고 쇼핑으로 불필요한 시간을 보낸다면 먼 여행의 의미는 반감된다.

지난해 서유럽 여행 중 인솔가이드 1명과 현지가이드 4명이 안내를 했다. 서울에서부터 인솔한 가이드는 40대 초반의 윤 씨, 그녀는 보통 키에 몸이 다부져 보였다.

독일에서 숙소를 떠나 오전 9시 30분경에 첫 여행지인 하이델베르크 대학가에 도착했다. 성령교회 광장에서 가이드는 잠시 설명을 한 뒤 카를 테오도르 다리까지 안내를 하고 1시간을 주면서 둘러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면세점에 들렀다. 독일 칼 종류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가격이 국내 백화점과 별 차이가 없어 구매하는 사람은 없었다. 할 일 없이 40분간을 허비했다. 이곳에서 주요 볼거리는 하이델베르크대학과 학생감옥. 하이델베르크 성, 철학자의 길이다. 2시간이면 전부 볼 수 있는데 안내를 하지 않으니, 우리는 골목길을 걸으면서 상점이나 기웃거릴 뿐이었다. 

이동하여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도착했다. 황금지붕 앞에서 골목길을 따라 개선문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1시간 동안 둘러보라고 한다. 저마다 흩어져서 개선문을 보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곳을 본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쇼핑을 하였는데 수정으로 만든 목걸이, 귀고리, 반지를 판매하는 곳이다.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도 없이 40분을 그냥 허비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기서 볼만한 곳은 성 야곱사원에 있는 ‘구원의 성모를 그린 제단과 설교단, 천장화, 왕궁과 궁정 교회가 있었다. 5분 거리인데도 안내를 하지 않았다. 가이드는 어딘가에서 쉬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곳은 이탈리아를 가기위해 잠시 쉬어가는 곳이에요” 중요한 유적지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하는 것만 봐도 관광객을 위한 마음이 없었다. 

베네치아를 들렀을 때 40대로 보이는 현지 가이드 강 씨가 안내했다. 병원 환자같이 흰옷을 입고 머리를 박박 깎은 체격이 건장한 그는 성악을 공부하러 왔다가 유능한 가이드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도를 펼쳐놓고 베네치아 도시가 뻘 위에 조성된 공법에 대해 설명을 하는 열정을 보였다.

수상버스를 타고 싼타루치아 역을 지날 때,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를 성악가답게 멋지게 불러주어 우리 일행을 즐겁게 했다. 저 건물은 누구의 집, 누가 거처 하던 곳이라며 약장사처럼 말을 많이 했으나, 이어폰으로 들어야 하므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로마를 들렀을 때는 70세가량 되어 보이는 여성가이드 장씨가 안내했다. 그녀의 피부는 까무잡잡했으나 아름다웠다. 햇볕에 그을린 것처럼 화장을 한 탓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피부를 가진 여성을 미인이라고 했다. 3일간 안내를 했는데 열심히 잘 해주었다. 이탈리아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그녀는 어릴 적 고향에서 괴나리봇짐 매고 다니던 이야기도 했다. 나이도 지긋하여 자녀들을 몇 명 두었느냐고 물었더니 “결혼하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했다. 어딘가 모르게 외롭고 우수에 찬 표정이다.

한국 유학생들은 주로 산업디자인, 자동차 디자인, 고대 건축,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면서 성악인이 제일 많다고 했다. 아침 일찍 로마로 가는 도중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렸다. 굵은 빗방울은 아니고 미세했다. 나는 속으로 오늘 관광은 잡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30분 내리던 비는 언제 그랬는가 싶을 정도로 그치더니 금방 햇살이 비쳤다. 그녀가 말했다. “이곳 날씨가 이래요, 로마시내에서도 한쪽은 비가 오는데 다른 곳은 멀쩡하고 친구에게 전화하다 보면 다 알아요.” 

로마 인구가 380만 명이라면서 이곳 사람들은 일정한 틀을 싫어하고, 융통성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로마, 폼페이, 나폴리, 카프리섬을 안내하면서 역사, 기후, 일상생활에 이르기 까지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녀의 말은 내 귀에 쏙 들어 왔다.

파리에서 2일간 머무를 때 가이드 10년 차인 40대의 김마리아라는 여성이 안내를 맡았다. 훤칠한 키에 달변가인 그녀는 구매해야 할 상품의 종류를 소개하면서, “작년 관광객을 100여회 안내했어요, 올해도 70회를 안내하여 연말까지 100회를 채울 겁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1회에 2일씩 계산해도 1년 200일 이상을 가이드로 일하는 셈이다.

루브르박물관에서 엉뚱한 핑계를 대고 우리들만 들여보냈다. 가이드 없는 관람은 보아야 할 곳을 빼 먹기도 하고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백화점 쇼핑을 했다. 물건 사는 시간을 1시간 20분 주겠다고 하자, 한 젊은이가 10분을 더 달라고 하여 1시간 25분으로 결정되었다. 상당히 긴 시간이다.

여기서 300백만 원짜리 가방, 100만 원 짜리 시계를 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음날에도 슈퍼에서 40분간의 시간을 보냈다. 유적지 관광은 뒷전이고, 상품판매에만 신경을 쓰는 듯 했다. 파리에서 그런 가이드를 보고 실망했다.

런던에서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최 씨가 안내를 했다. 가이드 생활 20년이 된 그는 콧수염을 보기 좋게 길렀다. 영국에서는 콧수염 기르는 것이 유행이란다. 길거리에는 콧수염을 기른 사람과 귀고리를 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는 열정적으로 안내를 했다. 여행 10여일 지나자 지친 일행이 걷기조차 싫어했다. 대영박물관에서 쉬고 싶어 하는 우리들에게 이집트미이라 전시실은 꼭 보라고 재촉했다.

이렇듯 안내를 잘 해준 가이드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글을 쓰려고 여행서적을 들쳐보면, 중요한 곳을 들르지 못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한 시간이 되었음에도 가이드가 안내를 소흘히 했다는 느낌이다. 적잖은 비용과 시간을 내어 다녀온 여행이 개운치 않은 것은 왜 일까. 즐거운 여행이 되려면 가이드를 잘 만나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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