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3>


나는 남의 양복을 입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하였다. 살다보면 이따금 중요한 일이 작은 실수로 인하여 어그러지는 경우도 있지만, 결혼식 예복이 바뀌었다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결혼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그래서 약속을 의미하는 반지를 주고받고 예복도 장만한다. 그러나 나는 결혼식에 새로 맞춘 예복을 입지 못하고 예식을 치렀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이 30 만혼이라서 그랬을까 무척 설레었다. 평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에서 폼을 내고 싶은 마음에 예복은 충무로에서 최고급 순모로 맞추었다. 결혼식 전날부터 우리집에는 친척들이 모였다.

어머니가 손님 밥상을 차리느라 분주하여 아침 일찍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나를 챙겨주지 못하였다. 내가 예복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오촌 당숙모께 옷장에 걸려 있는 밤색 정장을 주라고 하였다.

“옷이 좀 구겨졌네. 다림질 해야겠네” 하면서 당숙모는 다림질을 하였다. 새 옷을 다림질하는 것이 이상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새신랑의 새 출발을 축복이라도 하듯 하늘은 맑고 따뜻하였다. 밤색 양복으로 갈아입고, 오케스트라의 행진곡에 맞춰 걷듯 경쾌하게 예식장으로 향했다.

예식이 시작되었다. 주례사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앞으로 살아갈 때 도움 되는 좋은 말씀을 해주었다. 오춘삼 선생이 주례를 하셨는데, 주례사 중에 지금도 생각나는 대목은 날씨가 상당히 청명하다는 말과 고부간의 갈등이 많은데, 잘 해소해야 된다는 당부였다. 나는 아내와 평생 희로애락을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예식이 끝나고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처형이 내게 다가왔다. “옷이 좀 작네” 하시며, 짧은 내 바지를 아래로 자꾸 끌어 내렸다. 다른 사람들도 내 옷차림새에 시선이 모아졌다. 이구동성으로 옷이 좀 작다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싶은 생각으로 양복 속에 이름을 자세히 보니 동생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뿔싸, 이런 낭패가 있단 말인가. 마침 동생의 옷도 내 정장과 같은 색상이었다. 옷장에 비슷한 옷이 걸려 있으니 내 옷과 동생의 옷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결혼식 날 아침이 얼마나 바쁜가. 모두가 정신이 없어 미처 확인을 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내 키는 175센티미터이고, 동생의 키는 165센티미터이다. 10센티미터나 차이가 나니 옷이 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경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이왕에 저지른 실수지만 그렇다고 헌옷을 입고 신혼여행을 갈 수는 없었다. 신부를 서울역에서 기다리게 하고 부리나케 잠실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우리집은 4층이었다. 모두 예식장에 가는 바람에 문이 잠겨 있었다. 다행히 3층에는 사람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베란다를 통해 4층으로 올라갔다. 들어가서 예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아랫집으로 내려와 경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2박3일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결혼식 사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생에 단 한 번 찍은 결혼사진이 걸작이었다. 동생의 짧은 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서 생긴 한순간의 실수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처갓집 안방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는 나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 그날의 기억이 영상처럼 흐른다. 모르는 이들은 “왜 저런 옷을 입고 결혼식을 했느냐”고 묻는다. 상의 길이가 짧아 와이셔츠 소매가 다 보인다. 그야말로 촌스럽기 짝이 없다.

살면서 결혼식 예복을 바꿔 입은 것은 작은 실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의 실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내게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 세상에 순간의 실수가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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