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전명선                              


사람은 평생 인생의 옷을 몇 번 갈아입을까.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뜻하지 않는 사건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다. 보편적인 생각으로는 몇 번의 옷으로 만족하며 생을 마감하길 바라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예외는 항상 있는 법.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돌아보면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내 인생의 옷을 자주 바꿔 입었던 것 같다. 의도 되었던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한 것이던 결과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되어버렸다.

태어나서 성년이 되기까지 겉으로는 누구나 비슷한 모습으로 산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겉으로 크게 드러나 보여지지 않는다. 안으로는 엄청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겠지만 말이다. 스무살이 되면 독립을 꿈꾸면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특별한 재주가 없던 내게 고등학교 때 잠깐 배웠던 유일한 내 것인 피아노와  시작되었다. 작은 마을에 교습소를 운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직 생계를 위한 피아노라는 옷은 너무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곳에서 서성이다 도피처로 결혼을 선택했다. 급하게 결론지어진 이 사건(?)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다. 나를 얻고 나를 잃는다. JB면에서의 방문레슨, 작은 시골학교 정문이 보이는 작은 문구점, 지인의 오리전문집, 두 아이 교육을 위해 선택한 BS광역시의 레스토랑 등등. 오로지 밝은 미래를 향해 삶의 기차는 쉬지 않고 레일 위를 달렸다. 매 순간 인생의 옷에 아름다운 꽃도 그리고, 향기도 나게 하려고 나를 몰아 세웠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간이역이 있다면 가족이 울릉도에 살 때이다. 그때의 나는 삶의 한 가운데 서 있었고, 무엇인가 찾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선택 한 것은 피아노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보기로 용기를 내었다.

배움에 대한 갈망 하나로 시작한 대학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채워 주었다. 내 안의 열정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의 헤어져 있음은 가장 힘든 일이였다. 나의 빈자리를 세 식구가 감당해 냈던 일은 내 인생에 가장 고마운 것으로 남아 있다.

변화무쌍한 삶 속에서 열세번의 이사는 보통 사람들이 감내하기 힘든 노동과 같았다. 1.5톤 트럭에 혼자서 짐을 싸고 푸는 반복된 일들이 삶의 회의를 느낄 정도로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그러나, 푸념과 회의를 느끼면서 맞이한 반복된 이동이 어느 순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 때마다 그곳만의 다양성과, 다양한 사람과, 느낌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낯선 모습에서 오는 귀중한 느낌들이 삶 속에 조금씩 저축되어 지고 언젠가 반드시 어떤 보상도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도 해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기다림 속에서 수 없이 많은 타인의 삶을 읽어 내려갔던 일이다.

카뮈,헤르만헤세,톨스토이,루이제린저,세익스피어 등등, 그들과의 만남은 힘든 날들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즐거움이자 희망이였다. 완전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위안과 고통을 수반한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고 그리움으로 내 곁에 머물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매 순간 완전하게 채워 나가야 했던 것 같다. 나의 눈빛과 심장, 정신의 완벽함을 원했다. 특히, 만학도의 끝에서 얻은 자신감과 용기는 맞지 않은 옷에서 내 몸에 딱 맞는 옷으로 변화시켰다. 그랬다. 나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도 달려 왔던 것 같다. 마치 유년의 無意識, 無存在를 만회 하려는 듯이.

지금의 나는 염소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다. 인생이란, 예상치 않게 들이 닥치는 일에도 받아들이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었지만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긴 여정은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함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삶의 조각조각들이 훗날 커다란 가치로 빛나기를 간절히 원했는지 모른다. 지금의 나는 어떤 것을 채워 나가는 것보다, 그것을 풀어 나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삶도 사랑하고 앞으로의 삶도 열심히 사랑할 것이다.

                               
                                 ☆제2회 울진문학상 공모전 - 입선 작품
                                 울진신문사 주최/ 동아베스텍(주)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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