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JC 제45대 중앙회장: 홍성태


가을은 늘 아쉽게 지나가 버린다. 가을주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상쾌한 새벽공기가 그렇고, 세월 지나가는 인생의 의미를 느끼기에 좋은 계절이어서 그렇고, 낙엽 내려앉은 마당을 깨끗이 청소 나면 그지없이 단아한 한옥정취가 내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 있다. 남쪽 담 옆을 지나가는 꽤 길다란 담 길을 쓰는 보람도 있기 때문인데, 이 길을 쓸데마다 늘 마음속으로 ‘또 다른 마당이 나는 하나 더 있지’ 라고 되 내이곤 한다. 그 ‘또 다른 마당’을 쓸고 나서야 가을 아침 청소가 끝이 나고 내 마음의 정돈이 마무리 된다.

우리 집은 마당이 참 많다. 한옥 집이어서 동서남북 마당이 다 있다. 거기에다 남쪽 담 길을 더 보태야 되니 나는 ‘마당 복’이 보통이 아닌 샘이다. ‘마당 복이 많으니 인생 복도 많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1991년 늦가을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되는 JC 세계대회를 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잠시 경유하였다. 첫 유럽여행이라 시골 촌놈 눈에는 별천지였다. 이것 저것 공항구경 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데, 현지인들이 좌충우돌 식으로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모두들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순간 ‘아, 내가 너무 분잡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조용히 걸어 다니다가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문을 여는데 우리나라와 정 반대로 사용자 쪽으로 열리는 것이다. “어, 이상하네, 왜 불편하게 반대 쪽으로 열릴까?”

또 JC시절 일본을 자주 갔었다. 거리가 깨끗했고,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시민들이 책을 보면서 매우 조용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떠들면, 부모가 주변 분들에게 사과하면서 공중도덕 교육을 시키는 것이 우리와 사뭇 달랐다.

세월이 흘러 이제 우리나라도 화장실 가보면 사용자 쪽으로 문이 열린다. 그런데 아직 우리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떠들 때면 방치하거나, 어른들 스스로도 많이 시끄럽게 떠들며 공중질서를 지키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금도 운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의 교통도덕 수준은 정말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문 정치 후진국 토양에서 수많은 갈등을 극복하고 민주화를 당당히 이룩한 나라다. 이런 나라의 국민의지로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진정한 선진국은 경제력만으로 이룩되지 못한다. 돈만 가지고 있다면 ‘졸부’요, 천해 보인다. 중동의 석유가 전 세계를 상대로 많은 돈을 벌었고, 국민소득 또한 꾀 높다. 그런데 중동의 어느 국가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나라는 아직 없는 듯하다.

진정한 선진국은 남을 잘 배려할 수 있는 문화가 살아있는 나라다. ‘배려의 문화’가 성숙되어 있는 나라여야 한다. 화장실 문이 사용자 쪽으로 열리고 닫히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고, 공공장소에서 어린이가 떠들 때 조용하라고 교육시키는 것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배려의 문화’가 성숙한 것이다.

집이나 사무실에 손님이 방문했을 때, 대문 밖이나 빌딩 앞 내지 엘리베이터 까지 배웅하는 것도 ‘배려의 문화’이고 ‘예의’이고,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가을마당을 청소하거나 겨울눈을 치울 때, 남쪽 담 길에서 늘 생각한다. ‘이번 주에도 내가 혹시 남에게 피해 끼친 게 없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또 다른 마당’을 쓸 때면, 나는 ‘성찰(省察)의 시간’이 된다. ‘또 다른 마당’이 나에게 ‘마음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복이 찾아드는 재산이다. ‘마당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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