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9)


TV를 켜면 아름다운 여성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젊은이들은 연기하는 배우를 보며 사랑을 키우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앞세워 이상형을 그리는 외모 지상주의자들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해본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적인 것일까요, 외적인 것일까요. 

며칠 전 본부회의에 참석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을 탔다. 동대문역사박물관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 지났을 때 빈자리가 생겼다. 옆에 서 있던 여자 승객이 빈자리가 나도 그대로 서 있었다.

여성이 자리를 양보하는가 싶어 내가 자리에 앉았다. 호기심에 누구인지 쳐다보았더니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고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입술은 부르터 가뭄에 저수지 바닥마냥 갈라져있었다. 거친 피부는 여자로서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는 모양새다. 측은해 보여 동정심마저 들었다.

나는 재빠르게 일어서면서 자리를 권했다. “여기에 앉으세요.” “나는 서 있는 것이 편해요.” 앉아 있는 것 보다 서있는 것이 편하다는 그녀의 말에 눈을 감고 외면하는 젊은이들이 떠올라 혼자 웃는다. 나는 궁금하여 물었다.

“편하게 앉으시지 왜 서 계십니까?” 그녀는 머뭇거리다 웃으며 말했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많이 해서 서 있는 것이 편해요. 하루 다섯 시간만 자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한다는 말에 나이가 궁금해졌다.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69세입니다.” “느지막하게 무슨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시나요?” “중학교 2학년 때 중퇴를 하였어요.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아이들도 공부를 다 시킨 터라 늦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중․고등학교 과정을 1년 만에 다 마쳤고요. 대학교 학사 과정도 마쳤지요. 한자 자격시험 1급도 합격하였습니다.”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독학사 시험에도 붙었다는 말에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을 이어갈수록 복잡한 전철 안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 쪽으로 승객들의 눈빛이 모아졌다. 행색은 초라하였으나 잘 차려입은 여성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문득 그녀의 자녀들은 어떤지 알고 싶어졌다. “자식들은 어떻게 되세요?” “11남매를 두었어요. 아이들 모두 대학을 졸업하였어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를 졸업시켰지요.” 

자녀들을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키며 얼마나 고단했을까. 어쩌면 공부하는 부모를 보고 자식들이 잘 자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감동이 부담스러웠던지 그녀는 중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남편의 공으로 돌렸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내가 내려야 할 군자역이다.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은 아쉬움을 남긴 채 지하철에서 내렸다. 내가 일어서고 난 빈자리가 있었지만 그녀는 역시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에도 기품이 있고 당당해 보이는 눈빛이 어른 거렸다.

여성이 아름답다는 것은 빼어난 인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품과 지식, 무엇을 하고자하는 열정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좋은 곳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사는 여성보다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꿈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가진 분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로 누군가를 평가하는데 익숙하다. 보다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 성형수술도 불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저 외모만 보고 호감을 갖고, 사랑하고, 동경하는 세상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이다. 

세상과 얼마만큼 타협하며 사느냐 하는 것은 결국 나를 어떻게 포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상통한다. 물건을 아름답게 포장하면 내용물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하철에서 만난 여성처럼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면 자신의 가치는 무한히 달라질 것이다. 

꿈과 열정을 키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장애물에 부딪치면서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꿈을 좇는 사람은 아름답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지만, 미는 한 순간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라. 진정으로 가꾸어야 할 것은 내적인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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