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37)


   전세중 (시인, 재경 죽변출향인)
나이 육십에 수영을 배웠으니 좀 늦은 편이다. 어릴 적 뛰어놀던 마을 앞에는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어 여름이면 바다에서 살았다. 하지만 수영실력은 고작해야 물에 겨우 뜨는 정도였다. 바쁜 사회생활을 하며 물놀이를 잊고 산 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생활의 리듬을 위하여 가끔씩 탁구를 치며 여가시간을 즐기곤 했다. 탁구를 쳤다고는 하나 실력은 변변치 못했다. 언젠가 나보다 나이가 한참 젊은 친구와 탁구를 쳤는데,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니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웠다.

간혹 뼈마디가 으스러질 것 같은 중압감으로 내 온 몸은 정신을 거의 놓고, 가물가물 진땀으로 흠뻑 젖기도 했다. 준비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은 내 자신을 탓했다.

다음날 아침 허리가 아파 겨우 출근할 정도였다. 직장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에서 2주가량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대학병원을 찾아가서 허리상태를 이야기했더니 재활의학과로 안내해 주었다. 의사는 허리사진을 보더니, “약 드실 필요는 없고 한 달간 물리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하고 무성의하게 대했다. 찜질과 기구를 이용하여 매일 허리를 늘였다 폈다를 반복하는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하루는 무슨 일인지 간호사가 바뀌었다.

이번 간호사는 다른 방법으로 기구를 이용해서 허리 늘리기만 15분간이나 진행하였다. 그런데 몸이 묵직하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늘리기만 계속 하였으니 허리에 무리가 간 것이었다. 물리치료실에서 간호사가 치료하는 도중에 진행과정을 점검하지도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담당 의사에게 항의하였다. 담당의사도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구를 이용해서 오래도록 허리를 늘인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뚱뚱한 허리도 아닌데 말이다. 허리 물리치료를 잘못하면 오히려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의사를 바꾸어서 진료를 받았다. 이 의사는 허리 사진을 보더니 못마땅한지 고개를 가로저어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물리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고 약만 잘 드시면 됩니다. 약을 드시다 허리가 아프지 않으면 복용을 중지하셔도 됩니다.” 무슨 영문인지 정형외과 의사는 물리치료는 권하지 않고 약만 먹으라 했다. 환자인 나로서는 어떤 처방에 따라야 할 지 의문이었다.

같은 병원 내에서도 의사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다르니 말이다. 일단 약만 먹어 보기로 하였다. 약을 복용한지 한 달 가량 되었을 때 좀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소화기능이 약해져서 더는 먹기 힘들어졌다. 

다시 의사에게 가서 허리에 좋은 운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자전거타기, 등산, 수영 세 가지를 추천하였다. 자전거야 어릴 적 많이 타보았고, 등산은 지금도 가끔씩 다닌다. 하지만 수영은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물속에서 하는 운동은 척추에 큰 무리를 주지 않기에 특히 좋다고 하여 큰 맘 먹고 수영을 배워보기로 한 것이었다. 

며칠 지나 등록을 했다. 수영교실에는 나보다도 연세가 훨씬 많은 여성들이 ‘아쿠아로빅’을 배우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강사는 내게 수영을 할 줄 아느냐고 했다. 그래서 ‘개헤엄’을 조금 칠 줄 안다고 했더니 해보라고 했다. 25 미터가 그렇게 먼 거리일줄 상상도 못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겨우 도착했다. 강사는 초급반을 추천해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수영은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두 달 만에 기초와 자유형을 마쳤다. 허리만 좋아지면 그만 둘까 하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수영에 빠져버렸다. 허리통증도 물론 사라졌을 뿐 아니라 몸이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 4개월을 보내며 배영과 평영을 배웠다.

시작한지 육 개월 만에 접영까지 마치게 되었다. 수영의 기초를 어느 정도 배운 셈이다. 접영은 양팔을 물속에서 모두 사용하여 상체를 끌어올리려니 무척 힘이 들었다. 그나마 50미터를 완주한다는 게 다행이었다.

모든 운동에서 나이의 한계는 뛰어넘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젊은이들은 나를 앞질러 가곤 했다. 자유형 수영법을 할 때 몸이 굳어 있는 나를 보고 강사가 소리쳤다. “어깨를 좀 더 올려요. 어깨를.”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한 바퀴 돌고 난 뒤 어깨가 제대로 올라가는지 물어보면, 강사의 대답은 내 기대를 완전히 벗어났다. “잘 올라가지 않네요.” 

허탈한 마음으로 내 또래의 자유형 영법을 유심히 지켜보면 역시 유연하지 못했다. 어깨가 굳어 있는 모습이 초보자인 내 눈에도 보이니 말이다, 무엇이든지 시기가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모든 운동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사람의 몸은 20세까지 가장 유연하고, 이후에는 관절 기능이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세계적 수준의 단거리 육상선수나 수영선수를 보면,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기 때문이다. 

수영을 하면서 몸에 많은 변화가 왔다. 체중이 몇 킬로그램 줄었다. 조금 작았던 옷을 입어도 불편하지 않은 것이 뱃살이 좀 없어진 것 같고 시력 또한 좋아졌다. 남들은 수영장의 물이 독하여 염려를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눈의 피로가 많이 줄었다.

책을 두 시간 정도 보면 눈이 피로하고 두통이 왔지만, 지금은 네 시간 이상을 보아도 전혀 눈의 피곤함이 없다. 땀 흘린 후의 상쾌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도 제로로 만들어 주어 활력이 넘쳤다. 처음에는 초보라 운동의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6개월 지난 지금은 수영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흉내라도 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 때문이다. 탁구를 치다가 허리를 다치고, 수영을 배우면서 얻어진 경험이기도 하다.  이제 나에게는 남은 시간보다는 지나간 시간이 더 길다. 어떻게 살아왔는 지가 중요해지는 시기이다.
수영강사의 다그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깨를 좀 더 올려요. 어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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