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집필위원

 

 

 

전국에서도 오지(奧地)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봉화군 재산면 어느 골짜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본시 이랬다.

비 오는 날, 논배미를 100 뙈기나 소유한 농부가 논물을 보러 나갔다가 물꼬 트기를 거의 마쳤다싶어 논배미들을 하나씩 헤아리면서 확인을 했다.

원래 자기 논은 100 뙈기가 맞는데 아무리 세어도 아흔아홉 뙈기로 논이 하나 모자라는 것이다. 결국은 세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옆에 벗어둔 도롱이를 집어 들었더니, 그 속에 논 하나가 들어앉았더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 중에 누구는 도롱이가 아니라 삿갓이라고 했고, 한문의 고장답게 어떤 이는 우장(雨裝)이라고 우겼다. 옆에 있던 울진 사람이 한마디 했다.
“밀짚모자를 들믄 그 속에도 할 일이 남은 게 울진 땅이시더”

 

고향 동무 중에 지금은 큰 수녀님이 되어 사회봉사를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 그 분이 시카고 어디에서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동료 수녀님들과 벤을 타고 가는데 시속 140킬로미터를 달리는 자동차가 네 시간을 가는 동안 옥수수밭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울진 산골 산비탈에 노루꽁지만한 논밭 몇 뙈기를 빌어 소작을 짓기 위해 평생 부모님들이 겪었던 설움 같은 것들이 목구멍을 뜨겁게 하더라는 것이다. 같이 차를 타고 가던 동료 수녀님들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이유를 듣고는 모두가 흐느껴 울다가 나중에는 차 안이 온통 울음바다가 됐더라는 얘기를 울먹이면서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누군가의 한마디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울진 땅은 서울서 차로 네 시간을 달리믄 끄트머리가 보이니더”


며칠 전 매일신문 기사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다. 울진 주민들이 부르는 울진의 별명은 '경북 육지의 울릉도'라는 것이다. 그만큼 교통이 불편해 섬처럼 따로 떨어져 있는듯하다는 의미란다. 그래서인지 물가는 경북의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고, 심지어 울릉도보다 훨씬 비싼 곳도 있을 정도라는 기사였다.

울진이 대한민국 오지(奧地)의 대명사 BYC(봉화 영양 청송)를 제치고 ‘육지의 울릉도’를 차지하다니, 울진이 울(蔚) 안의 보배(珍)가 맞나보다. 감춰진 것인지 갇힌 것인지 헷갈리지만, 아무튼 도롱이 안의 논뙈기가 울진이 아닌가 싶다.

서울로 떠나 올 때 대부분 고향에 작은 꿈 하나는 두고 온다. 언젠가는 내 살던 이곳에 초막 하나 짓고 주말이나 휴가 때는 쉬러 오리라는 꿈. 그러나 막상 왕복 열 시간 이상 소요되는 여행을 실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늘 길이 열리기를 학수고대도 했고, 철길이 뚫리기를 오매불망도 했다.

36번국도 확장 소식은 이제 귀에 딱지가 붙었는데, 더께로 2차선이란 소식이 달라붙어 김샐 곳도 없어 뚜껑이 열릴 판이다. 그러는 사이 아직도 36번국도 레퍼토리를 파는 정치 한량들의 나이가 되고 말았다.

일전에는 향우회 모임에 갔다가 술상을 엎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고 일찍 귀가 했다. 이 땅의 아저씨들의 술자리가 언제나 그렇듯 땅 자랑이 빠질 리가 없다. 밀짚모자 속에 들어앉았을만한 땅뙈기를 두고 온 주제들도 땅 얘기는 한다. “울진 땅은 말이시더. 36번 국도가 확 뚫리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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