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위원 임명룡


 

밥 딜런이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그가 가끔 문학상 후보 명단에 들었을 때도 서구식 농담 정도로 여겼을 뿐 설마 수상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평화상의 수상 기회는 오래전에 놓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가끔 했었다.

아무튼 밥 딜런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우리의 EBS 교육방송은 밥 딜런의 대표곡 blowing in the wind에 맞춰 그의 사상과 그로인해 세계에 울려 퍼진 반전운동 영상을 방영한다. 영상에는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들의 총구에 꽃을 꽂는다.

어느새 늙어버린 우리나라의 그 세대는 마음에 작은 덩어리 하나씩을 안고 있다. 가슴 뜨거웠던 청춘시절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던 질문들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다지면서 생긴 응어리다. 그 다짐은 ‘내 청춘의 선택은 결코 헛되지 않다’이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는 舊질서에 대한 청년들의 저항운동이 펼쳐졌던 시대다. 그 중심에 밥 딜런의 저항 음악이 있었고 비틀즈의 존 레논이 합세했다. 저항 운동은 걷잡을 수없이 세계로 확산되었고 마침내 68혁명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5,16을 혁명으로 기억하던 시절, 유럽에서는 5월혁명이라 일컫는 68혁명이 일어난다.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군의 대학생들이 베트남전 반대를 외치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리지사를 습격한다. 전원이 체포되어 구속되자 소르본대학 학생들이 석방을 요구하며 학장실을 점거하였고 경찰과 대치하면서 본격적인 학생운동이 벌어진다. 이후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한 저항운동이 프랑스 전역에 확산되었으며 국경을 넘어 독일에서도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곧이어 미국과 일본 전역으로 혁명은 확대되었다.

베트남전 반대 운동 또한 확산일로에 놓인다. EBS 교육방송의 blowing in the wind 영상에 등장하는 군인들의 총구에 꽂힌 꽃이 그것을 의미한다. 베트남전 반전 운동이 어느 정도였는지 우리 국민들은 잘 모른다. 총구에 꽃을 꽂는 정도의 아름다운 장면은 결코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대학생들이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인간 띠를 만들어 베트남으로 향하는 전투기들의 이륙을 막으며 저항했다. 베트남전 참전 중인 미군들에게 탈영을 유도하기도 했고, 캄보디아 등지에서 탈영병 보호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처럼 반전운동은 치열했던 것이다.

그렇게 세계 젊은이들이 반전을 외칠 때, 우리나라 청춘들은 베트남전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세계의 68혁명이 일어났던 그해 1월, 한국에서는 북한군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총격전이 벌어질 정도로 북한의 남침 기미는 여전했고, 같은 해 가을과 겨울에는 울진 삼척에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하여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은 그 당시 시대상황에서 미국이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내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흔히 “미국은 정글에서 베트남을 잃은 게 아니라 TV가 놓인 거실에서 잃었다”고 말한다. 최초로 TV에 중계 된 전쟁이 월남전이다. 2차 대전 참전 군인들에게 무상수준으로 보급된 미국의 중산층 주택 거실마다 TV가 놓이던 시기와 맞물리기도 하다. 밥 딜런과 존 레논의 반전 노래와 더불어 청년 학생들의 반전 데모가 끊이지 않고, 명분이 약해진 전쟁은 패전을 거듭했다. 전쟁은 무기가 아니라 명분이 승패를 좌우하기 마련인데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낯설고 거친 정글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야하는 명분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이다.

구세대 또는 기존 질서로부터의 해방운동은 히피 운동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도 여전히 밥 딜런이 있었다. 시카고 젠(禪) 센터 등지에서는 히피에 정신적 이론을 보급했다. 21세기 히피운동이 ‘웰빙 운동’이라고 하듯 초기 히피 정신은 건강하고 순수했다. 그러나 점차 영혼의 자유까지 주장하며 마약과 마리화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딜런이 마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리화나를 즐겼다.

비틀즈 멤버들에게 마리화나를 권유한 사람도 밥 딜런이다. 물론 당시 마리화나는 청년들에게 일반적이다시피 퍼져있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마약과 마리화나에 타락한 히피 운동은 프리섹스로까지 이어졌다. 작가 어빈 웰시는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선정을 두고 “히피의 썩은 내 나는 전립선에서 짜낸 노스탤지어 상”이라고 비난 했는데 왜 하필 썩은 내 나는 전립선에다 빗대었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미국의 거실에 놓인 TV는 마약에 취한 아이들과 베트남전 패전을 보여준다. 그러다 화면을 바꾸어 한국군의 승리 소식을 전한다. 우리 청년들은 베트남에서 용맹을 떨쳤고 대부분 승리한다. 미국 언론은 한국군의 연전연승에 주목하며 우리 청춘들의 단정한 태도와 투철한 애국심 그리고 일사불란한 태권도를 소개한다.

그러한 것들이 보수적인 미국 부모들의 눈에 들었다. 태권도가 미국에 상륙한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란 당시 태권도의 캐치프레이즈는 누가 봐도 마약에 몸을 상한 히피들을 의식한 문구다. ‘마약 치료는 코리아 진생(人蔘)’이란 소문과 함께 통일교가 인삼과 함께 미국에 정착했다. 태권도장과 통일교회에는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어찌 이 나라 청춘들이라 해서 청바지와 통기타를 싫어할 리가 있겠는가. 장발도 해보고 싶고 저항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끔 대마초 정도는 피워도 보고 싶고 뜨거운 가슴으로 반전운동을 하고도 싶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택한 우리 선배 청춘들의 선택은 헛되지 않아서 혹시나 있었을 북한의 오판을 막았고 고속도로가 생겼으며 KIST가 세워졌다.

이제 그 KIST를 모델로 한 연구소(V-KIST)를 베트남에 지원해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동시대 세계 청춘들의 양심운동에 동참하지 못해 생긴 가슴의 응어리는 어쩔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았는데 밥 딜런이 노벨상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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