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50)

 

고궁에 가면 오색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본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한복나들이가 유행이라더니 치마와 저고리를 갖춰 입고 족두리까지 썼다. 갓을 쓴 남성도 여럿 보였다. 궁궐 곳곳에서 고운 한복 차림의 젊은이들을 만나면 예의를 갖춘 것 같아 아름답다.

한복을 보면 선의 흐름과 조화에서 미적 감각이 느껴진다. 동전, 깃은 직선과 사선의 초생 달 같은 아름다움이 있고, 저고리의 안깃과 겉깃이 이루는 선이나 하늘을 향한 듯한 배래선은 추녀의 곡선과 같아 부드럽다. 둥글면서도 뾰족한 버선코는 보름달의 온화함이 있다. 저고리에서 치마까지 곧게 떨어지는 고름은 움직일 수 없는 정숙한 멋이 있고, 오방색을 이용한 색깔의 아름다움에서 여성의 생기가 돈다. 치마는 허리에서 아래로 물결치는 듯한 잔주름 라인도 우아하다. 역시 한복은 화려하면서도 소박하고 넉넉한 멋이 있어 좋다.

수원에서 왔다는 고등학생, 입은 한복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여 물어보았더니 한복을 갖고 싶어 부모님께 졸라서 해 입었다고 한다. 30만 원 들여서 지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품위가 있어보였다. 한복이 없는 젊은이들은 대여점에서 빌려 입고 온다. 대여 가격은 보통 1만 5천 원이란다.

고궁 관람은 한복을 입으면 무료입장이다. 이것은 전통 계승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문화재청에서 한복 무료입장 홍보는 잘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관람객 중 열에 서너 명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고궁을 거닐면서 한복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들은 스마트 폰으로 자신을 찍기도 하지만, 기꺼이 외국인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관광 온 외국인들도 한복을 입고 나들이를 한다. 그들도 예쁜 한복을 입어보고 싶었을 게다. 케나다 부부가 한복을 입고 관광을 즐기는가 하면 한국에 공부하러 온 서울대학교 교환학생 30여 명도 한복을 입고 경북궁을 산책했다. 이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필리핀, 동남아 학생들로 모두 한복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었다.

외국인이 한복을 입는 것은 한국 문화를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복에 매료돼 미국인이 사진 찍는 장면을 보고 한복을 홍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옷 매일 입어요.” 중국 여성은 부러운 눈빛으로 한국 사람들은 한복을 매일 입는지 가이드에게 묻기도 했다.

한복은 우리 민족의 고유 의복이다. 일본에 기모노가 있다면 우리에겐 한복이 있다. 우리는 한복을 명절 때도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잘 입지 않는다. 한복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우리 옷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몇 년 전 일이 생각난다. 신라호텔 뷔페에 들어가려던 한복디자이너가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 한복과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호텔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회사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한복 입기를 장려해야 하는 마당에서 그럴 수 있느냐며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호텔 대표가 사과를 했지만 뒷맛이 씁쓸했음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고궁을 자주 찾기 때문에 이곳 분위기를 잘 안다. 주로 경북궁과 창덕궁, 비원을 드나들었는데, 갈 때 마다 한복 입은 젊은이들과 외국관광객이 늘어남을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궁에서 한복의 물결은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결혼식이나 명절에 보던 한복 입은 사람들을 경북궁에서 보니 한결 더 고궁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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