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성균관 유생 11명이 결성
창계 600周年 현존 최고 연혁집 발간

 

저희 선조 휘 남회(諱 南薈)께서는 조선개국 초기인 1416년(太宗16 丙申年) 음력 9월 달에 동문수학하던 150여명의 성균관 유생(成均館 儒生) 중, 의기상통한 친구 11명과 낙하동주계를 창계(創契) 했습니다.

금년 음력 9월달이 창계(創契)한 지 십주갑 (十周甲: 600周年) 이었습니다.

낙하동주계는 한 배를 타고 생사고락을 같이한다는 신조(信條)로 친구간에는 의리를 사계절과 같이 정하고, 군자의 도리를 다하여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여 어지러운 사회상을 바로 잡고자 굳게 결의하여 그 뜻을 계축서문에 담았습니다.

그 후 맥이 끊긴 상태인 것을 저(남정섭)가 저희 문중 (영양남씨 목사공파) 에 소장해 오던 낙하동주계 계축(洛下同舟契 契軸)과 좌목(座目:계원 명부 p021~023참조)의 문서에 의지하여 2009년 9월부터 그 열 한 분 계원 후손을 찾아 나섰습니다.

8개월만인 2010년 5월7일 서울용산에서 후손 상견례를 하고, 선조님들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나아간다는 뜻을 모아 ‘낙하동주계승사업회(洛下同舟契繼承事業會) 라고 이름 짓고, 지금까지 매달 후손 모임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 후손들은 ‘임원계회’를 비롯해서 선조님에 대한 선양사업(宣揚事業)으로 전국 곳곳에 산재(散在)해 있는 일 곱 분의 선조묘소 순례를 마쳤으며, 그 중에서 지난 5/12에는 650년을 지켜내려 온 저희 영양남씨 목사공파 종택(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을 방문하고, 선조묘소(울진읍 정림2리 다리골)를 순례했습니다.

또 금년이 60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서 기념책자를 1,000부를 발간하여 9개 참가문중에5~600부를 배부하고, 나머지를 전국 각 대학도서관으로 발송 비치하였습니다. 행사당일 전국에서 찾아주신 100여명의 내빈들의 식대, 책 발송비 등 비용이 2,000여 만원이 쓰였는데, 9개 문중에 각 200만원씩 배분했으나, 형편이 좋은 연안이씨 문중은 400만원을 출연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승되어온 계(契)는 영남을 대표하는 안동의 우향계(友鄕稧: 1478창계 成宗9)로써 저희 계보다 62년 늦에 창계됐으며, 호남을 대표하는 왕인박사의 탄생지 전남영암의 구림대동계(鳩林大洞契: 1565창계 明宗20) 는 저희 계 보다 149년 늦게 창계됐지만, 이 두 곳이 전통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공통점을 살펴보면, 2~30리 안팍의 한 고을 사대부 집안들로 결성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든가, 6.25동란 같은 난리가 끝난 몇 달 후쯤 장거리에서 서로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 자연적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저희 낙하동주계는 선조님이 성균관에서 공부를 마친 후 벼슬길로 뿔뿔이 나서다 보니 자연적으로 맥이 끊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이해가 가고도 남겠습니다.

지난 10월27일(음력9/27) 낙하동주계 600주년기념대회 때 구림대동계에서 저희 초청에 응하시어 축사를 한 것을 계기로 이 앞으로는 우향계와도 함께 세 군데와는 정기적인 교류로 왕래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6. 11. 11 서울에서 남정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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