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명 룡 집필위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그들만의 땅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소지주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하였고,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이 제임스 매디슨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비선실세(泌線實勢) ‘갑질’ 문제로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혼란한 가운데, 새해를 맞았지만 소란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이제는 온 나라가 너덜거릴 정도다. 개인적으로 TV나 인터넷 뉴스를 끈 지 오래여서 나라 여론이 걸레짝마냥 너덜댄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통계를 보니 촛불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이 연인원 1천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이미 탄핵소추를 했고,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24시간 중계하고 있다. 특검에다가 거대 야당과 여당마저 등을 돌려 공격으로 나선 국회청문회까지 있는데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든다. 왜 그럴까.

우선은 국민들이 나라의 현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 데 기인하겠지만, 거기에 국민 특유의 평등의식과 자유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에게 평등의식과 자유의지가 강하다고 하면 언뜻 동의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우리나라 만큼 평등과 자유의지가 강한 나라는 드물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자영업자의 비율만 보더라도 압도적으로 많다. 직장생활보다 수입이나 노동의 강도에서 나을 것도 없지만, 한 집 건너 닭집이고 미용실이며 빵집이다. 왜일까. 한국 특유의 이러한 현상에 여러가지 이론이 있지만, 내 생각에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대대로 이어온 논농사와 소농체제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동아시아에서 16~17세기에 정착한 이앙법은 적은 토지에서도 집약적인 쌀농사의 획기적인 확대가 이루어져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토지생산성과 높은 인구밀도를 실현시켰다.
수도작(水稻作)과 이식식(移植式) 논농사는 김매기가 쉬워지면서 모내기와 수확 시기를 제외하면 그다지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두레를 통해 모내기와 수확을 해결하면, 평소에는 가족영농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아가 부업으로 다양한 밭농사도 충분히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이모작도 가능하여 소농 자영농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같은 시기 전국 산간 오지를 계단식으로 계간하여 정착한 자영농도 마찬가지로 늘어났다. 지주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상인(常人)들은 양반을 추구했고, 그러다보니 17세기 9%에 불과했던 양반의 비율이 불과 2세기만에 70%를 넘어선다.

당시 지배계층이 그렇게 높은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양반인 세상에서는 당연히 자유와 평등의식이 고취될 수밖에 없다. 정치 참여도 마찬가지다. 조선 후기 만인소(萬人疏)가 번번이 상소될 수 있었던 것도 나라 전체에 팽배해진 평등의식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유생 1만 명 이상이 공동으로 정치에 참여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영남 한 지방에서만도 만인소가 두 차례나 있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가 정착한 오늘날에 견주어 봐도 결코 뒤지지 않을 놀라운 평등의식인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도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귀족의 통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개인이 토지를 소유하거나 장인, 공예가 등의 기술자가 되어 목제품을 비롯한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유지한다면 평등이 실현되리라 믿었던 것이다.’(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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