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56)


 

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고즈넉한 대궐이 예술과 문화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내가 운현궁 뜨락을 산책하고 있을 때, 초등학생들이 넓은 마당에 엎드려 뭔가를 쓰고 있었다.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효도’란 주제를 가지고 글짓기를 하고 있었다. 학부모도 함께하여 운동회 날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초등학교에서 글짓기 대회를 하는 것은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행사 일 것이다. 어린 학생들이 원고지에 글을 쓰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옆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어떤 학부모는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거들어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열기를 여기서도 보는 것 같았다.

한 남학생이 혼자서 열심히 원고지를 메우고 있었다. 열중하는 모습이 기특하여 몇 학년인지 묻는 내게 오학년이라고 했다. 눈에 총기가 흐르는 아이에게 무슨 글을 쓰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외할아버지에 대해서 썼어요.”라고 대답했다. 외갓집에서 살고 있는 학생은 얼마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문병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고지를 넘기면서 보니 내용이 정연하고 감동적이다.

어린 학생이 짧은 시간에 10여장의 원고지를 단참에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 가끔 글을 쓰느냐고 물었더니, “매일 일기를 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학생의 일기가 글짓기에 도움이 된 것이라 본다. 효도란 글제도 현장에서 발표되었다. 일기쓰기와 이런 글짓기 훈련을 통하여 자기를 원숙한 경지로 단련해 가는 것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글쓰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머리와 입안에서 맴돌 뿐 생각이 글로 잘 형상화 되지 않는다. 주변에 넘치는 소재가 있어도 무었을 써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신변잡기의 글이라도 많은 사유를 하게 되고, 여러 번 퇴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글쓰기는 잘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대담하거나 어려운 것을 소재로 할 필요는 없다. 자기 자신의 경험담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장 쉬운 시작은 어렸을 때 잊지 못할 추억이나 경험한 것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부터 쓰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유별난 추억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야외 글쓰기는 당장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멀리 내다보면 성실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다. 무조건 외우는 교육이 아닌 글짓기, 예술 감상 같은 교실 밖 활동은 사고의 폭을 넓히는 참교육이라 생각한다.

남학생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원고지를 메우는 시간만큼은 정말 진지해 보였다. 학교는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의 꿈나무들이 감성을 키우는 교실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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