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58)


 

서울 송파사진동우회에서 회원 50여 명이 서산 개심사에 출사를 갔다. 출사 관심사는 벚꽃이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울창한 조선 솔밭 길을 걷는다. 왼쪽으로는 붉은 빛을 발하는 소나무 사이로 흙길이 가파르게 올라있고, 마주보는 곳으로는 돌계단이 잘 깔려져 있다. 계단은 800여 미터나 된다. 올라갈 때는 흙길을 걷고 내려갈 때는 계단을 걸어보는 것도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파른 길을 걸어가면 제법 숨이 턱에 찰 정도이다.

개심사는 가야산의 한 줄기가 내려 온 상왕산 중턱에 자리 잡아 저 멀리 내려다보는 시야는 시원스러움이 있고, 양쪽 산자락이 꼭 껴안아 주는 포근함이 있다. 그래서 여기에 오면 마음이 열린다는 개심사라 했던가.

우리나라의 절이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스러움을 살리고 있는데, 여기 심검당도 기둥이 얼마나 굵고 힘차게 휘었는지 모른다. 종루 절집의 기둥 또한 그런 모습이어서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개심사는 영주 부석사, 청도 운문사와 함께 자연과 잘 어우러진 사랑스러운 절집이라 할만하다.

개심사를 구경하다 보면 현판 글씨가 눈에 띈다. 당대 최고의 서예가 해강 이규진 선생이 전서체로 쓴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 현판 글씨가 세월의 더께를 얹고도 정연하다. 예스러운 전서체의 현판 글씨는 오래된 절과 어울리기도 했다.

한낮 대웅보전은 참선에 든듯했다. 한 여인이 불상 앞에서 불공을 드리고 뒤편에는 스님이 합장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문밖에서는 벚꽃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대웅전 안쪽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인과 스님 그리고 관광객 세 명이 부처 앞에서 한 마음이 된 듯하다.

간밤에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며 내리던 봄비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멎었다. 물에 젖어 잔뜩 웅크렸던 꽃잎은 잘게 부서지는 햇살에 투영되어 더욱 우아하고 화사한 자태를 드러냈다. 사찰과 벚꽃이 어우러지니 절경이 따로 없었다.

늘어진 벚꽃이 겹겹이 피어 아기 주먹만 하여 탐스럽게 보이는데, 사람들은 왕벚꽃 혹은 겹벚꽃이라 부른다. 벚꽃 중에서도 개심사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는 연둣빛의 청벚꽃과 진분홍의 겹벚꽃이 정말 아름답다.

여기 온 사람들은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다는 말처럼 불심으로 사찰을 찾기보다는 벚꽃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산신각까지 올라가면 경내를 굽어보는 맛이 개심사 답사의 절정이라는데 다음 방문지가 해미읍성이라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모두들 벚꽃에 관심이 많았으니 다른 생각은 못할 법도 하다.

벚꽃 주위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 벌 떼처럼 웅성거렸다. 화가 동우회원 이십여 명이 마루에 앉아 만개한 꽃송이를 바라보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관람객들은 만개한 꽃을 스마트 폰으로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모두가 벚꽃의 청순한 자태에 흠뻑 취해 있는 듯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도 사진 찍는데 방해가 되었다. 사람에 가려 찍어야 할 주제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계단 쪽은 한적했다. 누군가 걸어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 셔터를 눌렀는데 중년의 여성이 찍혔다. 스마트 폰을 보며 웃는 모습이 곱게 핀 목련화 같다.

여인들의 웃음도 꽃 속에 묻혔다. 4월의 따스한 햇살 속에서 온 대지가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고, 겹벚꽃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 꽃의 향연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세상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듯 며칠이 지나면 꽃 잔치도 끝날 것이고, 구경꾼으로 북적거리던 사찰도 조용해질 것이다. 내년 이맘때까지 청벚꽃은 내 가슴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겠지만 왠지 허전한 마음이다.
 

나는 이번 개심사 출사에서 청벚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사진 찍는 기술이 아직 서툰 탓도 주요 원인이었겠지만 개심사에 도착한 시간대가 사진촬영을 피한다는 한낮 시간대였다는 변명을 해 본다. 다음번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청벚꽃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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