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곡고등학교 교사 남 주 숭

며칠 전에도 여기 대구 한 식당에 들렀다가 고향 사람을 만났습니다. 음식값을 계산하려는데, 안주인이 물었습니다.

 

“고향이 동해안 어디쯤이냐, 영덕 쪽이냐”고요. 울진이 고향이라는 대답에 반색을 하면서 자기도 울진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말씨로 대뜸 짐작을 했다고 하면서도 짐짓 멀찍이 물어 보는 조심스러운 태도가 역시 울진 사람입니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스무 해가 가까워 갑니다. 그 세월 속에서도 말만은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처럼 남아 날더러 울진 사람으로 살아라 합니다.

 

그러나 정작 뇌리와 몸속 깊이 남아 있는 우리 고향 말을 나는 오랫동안 부끄러워하며 지냈습니다. 국민 학교에 입학하면서 배우기 시작한 교과서에 나오는 말들은 우리 일상 말과는 참 동떨어진 것들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책 따라 표준말을 써야 한다고 하셨지만, 책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집에 오면 할배, 할매, 아배, 어매로 바뀝니다. 선생님들이 가정 방문을 오신다고 하면, 참 부끄럽고 난감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초라한 시골집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과 선생님 앞에서도 표준말을 쓰기 어려운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국민 학교 시절뿐만 아니라, 중학교·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말에 대한 열등 의식은 떨쳐 버리기 어려웠습니다. 표준말은 서울말, 서울말은 아름답고 바른 말, 이렇게 뇌리에 각인되어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울말이 소리결이 아름다워 한층 돋보이기는 합니다만, 결코 표준어를 기준으로 지방 말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뒤이었습니다.

 

오래 전입니다. 대구 근처에 살던 한 친구가 울진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어째 할머니, 어머니나 아주머니더러 ‘하게’나 ‘했는갗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물론 울진도 남쪽과 북쪽이 다릅니다만). 그래서 너희들은 왜 어른께 대놓고 ‘해라’, ‘했나’ 하느냐고 하니까, 그건 가까운 사람 사이의 정다움을 나타내는 말이랍니다.

 

표준어를 기준으로 한다면, 차라리 ‘하게’체가 ‘해라’체보다 상대를 더 대접해 부르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언들을 결코 표준어에서 보는 ‘하십시오’(아주높임), ‘하소’(예사높임), ‘하게’(예사낮춤), ‘해라’(아주낮춤)와 같은 네 등급의 높임법에 견주어 말할 수 없습니다. 높임의 체계가 아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테면, “아지매, 오데 가능가?” 와 같이 말하다가 어느 날 “아주머니, 어디 가십니까?” 한다면, 그 아주머니는 오히려 소원(疏遠)하게 여길 것입니다. ‘하게’가 표준어에서 말하듯 ‘예사낮춤’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안어른에 대한 정다움을 드러내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표준어에서 사라진 우리 고유어를 방언에서는 찾을 수도 있습니다. 방안 한쪽 구석에 걸어두고 자잘한 물건을 담던 ‘드빙이’(뒤웅박)는 훈민정음에 ‘드    ’로 나옵니다. 또, 거기에 함께 나오는 ‘우케’라는 말을, 찧기 위해 멍석에 널어 말리는 벼를 일컫던 그 말을 지금도 고향에서는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되살려 쓰고 싶은 말이 우리 고향 말에는 지층처럼 쌓여 있습니다.

 

방언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이질감을 느끼게 합니다. 한 나라 사람들 사이의 통일을 위해서는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표준어가 필요합니다.  대신 같은 지역 사람들 사이에는 정서적 유대감을 조성해 주는 훌륭한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우리 고향 말, 그리고 지방마다 지녀온 방언들은 결코 부끄러워해야 할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중한 가치를 가진 문화 자산으로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향의 산과 들과 내〔川〕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그립고, 귀에 익은 사투리가 다시 듣고 싶습니다.

- 약력

  - 근남면 행곡리 출생

  - 현재 대구 대곡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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