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집필위원


 

울진신문 서울지사장인 황승국 선배님이 얼마 전 45년간이나 즐겨오던 담배를 끊겠다고 했다. 현명한 결정 반드시 성공하시길 빈다. 한편으로 따져보니 그 분의 연배에 담배경력이 45년이면 꽤 일찍부터 흡연을 했다는 소리다.

하지만 나 역시 40년 가까운 담배 이력을 지니다 몇 해 전에 폐에 구멍이 생기는 기흉(氣胸) 때문에 수술을 받고 마지못해 손에서 담배를 놓게 되었으니, 미성년자 흡연이력에는 내가 몇 수 위인 셈이다. 낯선 도시 고등학교에서 입학시험을 치르면서도 휴식 시간마다 담배 때문에 안절부절 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중독이 심각했다.
그 시절 산골에서 자란 주변인들도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담배를 시작했다. 우리는 왜 그토록 일찍 담배를 배웠을까.

오영수라는 작가가 있었다. 예전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단편소설 ‘요람기(搖籃期)’를 통해서 동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작가를 기억할 것이다. 연배가 좀 더 많은 분들은 영화 ‘갯마을’을 떠올리며 그분을 추억하지 않을까싶다.

오영수 작가는 울주군 웅촌이라는 산골에서 나고 자랐는데, 울주군의 환경이 바다와 산골이라는 점에서 울진과 비슷해서인지 그분의 작품 배경이 울진과도 참 많이 닮아있다. 예를 들어 서생포를 배경으로 한 ‘갯마을’은 울진의 여느 바닷가 마을과 흡사하다.

특히 후리질을 하는 장면은 후포리 어느 바닷가 마을을 보는 것 같다. 멸치 떼가 몰려들 때, “후리여, 후리여” 외치는 소리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전체가 바다로 내달려 양쪽에 늘어서서 후릿거물을 끌어당기던 모습은 저녁나절 울진 바닷가의 흔한 풍경이었다. 오죽하면 후릿거물만으로 생선을 잡는다고 해서 후포의 옛 지명이 후리포였다.

산골의 묘사도 마찬가지다. “기차도 전기도 없었다. 라디오도 영화도 몰랐다. 그래도 소년은 마을 아이들과 함께 마냥 즐겁기만 했다. 봄이면 뻐꾸기 울음과 함께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 가을이면 단풍과 감이 풍성하게 익는, 물 맑고 바람 시원한 산간 마을이었다.” 도입부터 내가 자란 산골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소설 요람기(搖籃期)는 내용도 전체가 내 어린 시절과 흡사하다.

그러나 교과서에 실린 것 마냥 동심으로만 넘치던 시절은 아니었다. ‘갯마을’에도 군데군데 ‘19금’이 들어있듯 오영수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는 순수한 요람기와 달리 오염된(?) 동심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의 요람기에도 그런 것이 없지 않았는데 술과 담배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에서 아이들은 김초시댁 머슴 춘돌이가 이끄는 대로 몰려다니는데 우리도 그랬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꼴머슴들이 대장이었다. 우리의 대장들은 춘돌이보다 훨씬 무서웠다. 소설처럼 꼬맹이들은 학교를 파하면 각자 집에서 소들을 끌고 나와 한 군데 모였다가 산으로 들로 소풀 뜯기를 하러 간다.

소들은 항상 무리를 짓기에 고삐를 걷어 뿔에 감고 산이나 들에 놓아두면 소들끼리 풀을 뜯다가 어둑해질 때면 한자리에 모인다. 소들이 풀을 뜯는 동안 조무래기들은 감자를 구워 먹으며 신나게 놀았다.

감자에 작은 구멍을 내고 사카린 한 알을 넣고 구우면 환상적은 요깃거리가 된다. 열 개를 구워 절반은 대장에게 바친다. 대장은 먹고 남은 감자를 두고 조무래기들에게 내기를 걸었다. 온갖 신나는 놀이들이 내기의 대상이었고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가 된다. 그러나 대장에게 찍히면 그 놀이터에 입장불가다.

소고삐를 잡고 산이나 들로 다니며 혼자 대여섯 시간 소 풀을 뜯겨본 적이 있는가. 산골 조무래기들에게 그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 꼴머슴 대장님이 시키는 대로 가끔 집에서 몰래 막걸리도 훔쳐내오고, 아부지 담배갑에서 몇 개비 훔쳐다가 같이 피워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소풀뜯기에서 벗어나 소꼴 지게를 질 나이가 되면, 어느새 담배연기로 도넛도 만들고 가끔 거북선도 만들어 쑥 뜯으러 나온 가시내 앞에서 뽐내기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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