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의 이런저런 이야기 (62)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도나우 강변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야경을 유람선으로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건너편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붉게 타고 있었다. 푸른 바탕에다 빨간색, 주황색을 몇 줄 길게 그었다. 푸른 하늘에 무지갯빛 덧칠은 황홀한 한 폭의 그림, 이런 연출은 그리 흔치않은 광경이었다. 머나먼 외국에서 이런 그림 같은 노을을 감상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까. 쾌청한 날씨는 여행객에게 덤으로 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도나우 강은 독일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를 지나 헝가리에서 서쪽의 부다와 동쪽의 페스트 지구를 가르고, 불가리아 우크라이나를 거쳐 흑해로 흘러가는 강. 장장 10개국을 거쳐 흘러간다.

강폭은 한강의 절반 정도로 그리 넓지 않았으나 수심은 깊어 보였다. 여러 대의 유람선이 분주히 오갔는 데, 우리가 탄 배는 강 중심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저녁노을이 건물을 붉게 물들이는가 싶더니 어두워지자, 강을 잇는 다리와 언덕에 있는 건물에 등불이 하나하나 밝혀졌다.

국회의사당의 촘촘한 불빛은 검게 타올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성이슈반대성당, 오페라하우스는 짙은 회색에 불을 밝혀 은은하다. 머리를 옆으로 돌리니 르네상스문화를 꽃피운 위풍당당한 왕궁이 장엄하고 투톨이라는 새조각상이 어슴푸레하다, 오른쪽으로 마차시교회도 불을 밝혔다.

왼쪽으로 겔레르트 언덕에 솟은 요새 치터델러가 풍경을 연출했다. 영화 <글루미선데이>의 주요 배경이 되었던 부다페스트의 상징 세체니 다리는 수천 개의 전등으로 유럽에서 가장 장엄한 야경이 되었고, 에르제베트다리, 자유의 다리, 모두 예술적이었다.

짙은 회색이 드리우는 동유럽의 진주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압도적이었다. 내가 많은 나라를 여행 다닌 것은 아니지만, 여러 도시들 중에서 부다페스트만큼 밤의 모습이 완벽한 경우는 없었다. 그것은 다리의 독특한 구조물과 언덕에 자리한 건물들이 도드라지게 밤을 밝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연극 무대 위 주인공에게 쏟아지는 조명 같았다. 나는 가장 완벽한 무대에 꽂혀 움직일 줄 몰랐다.

침묵이 다소 묻어나는 야경 뒤에는 숨 가쁘게 굴러온 수레바퀴가 있었다. 헝가리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수백 번 외침을 받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바다에 접한 거대한 대제국이었는데 많은 영토를 주변국에 빼앗기고 현재의 반도만 차지하고 있는 나라. 몽골과 오스만, 오스트리아, 나치독일, 소련의 야만적 지배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부다페스트의 세치니 다리를 포함하여 모든 다리는 폭파되어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그리고 헝가리는 공산화되어 고난의 길을 걷다가 1989년 시민이 공산정권을 무너뜨리는 역사가 있었다. 어쩌면 그것도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6. 25 참화를 격고 일어선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역경을 딛고 가장 강인한 민족으로 살아남아야 할 동병상련의 나라다.

헝가리는 우리와 많이 닮았다. 헝가리인들의 체구도 다른 서구인들에 비해 다소 적은 편이다. 헝가리 음식도 우리와 비슷했다. 마늘 고추를 많이 쓰고 그들이 먹는 할라스레는 생선매운탕이고, 그들의 구야시는 우리의 육개장이었다.
 

연월일 표기 순서와 이름 쓰는 방식이 우리와 같다. 서양은 날짜를 기록할 때 일, 월, 년의 순으로 기록하는데 헝가리는 우리와 같은 연월일로 기록한다. 서양인은 성을 뒤에 적고 이름을 앞에 적는데 헝가리만은 우리와 같이 성이 먼저오고 이름이 다음에 온다.

헝가리란 말은 훈족의 나라라는 의미로써 Hun 즉 ‘한’을 의미한다. 몽골리안의 훈족이 세운 땅이다. 유럽에는 훈족의 혈통을 가진 나라들이 더러 있다. 언젠가 우리를 보고 형제의 나라라고 했던 터키가 그렇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사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그들을 잘 모르고 지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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