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청 임문홍씨

본지는 각계각층의 출향인사들로부터 그의 유년시절 성장과정이나 학창시절의 추억, 어머니의 땀,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특별기고 『고향으로 부치는 편지』 칼럼을 연재합니다. 첫 회는 경북도청 도시계획과에 근무하는 임문홍씨의 글을 싣습니다.

 


어느새 가을이 무르익어 날은 차가울 정도로 서늘합니다. 생각할수록 지난 여름은 잔인했습니다.

장마소식, 태풍소식, 수해소식, 적조소식을 들으면서 우울했던 여름이건만 단 하루의 햇살로 그 모든 눅눅함과 우울함을 씻어내고 보란 듯 뽐내면서 우리 곁에 와 있는 가을입니다. 그래서 이 가을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뼈아픈 일들로 가득했던 여름의 길고 긴 과정이 없었다면 이 가을이 있었겠습니까 마는. 어느새 우리는 지난 여름을 잊어버리고 가을의 넉넉함만 즐기려는 심보는 아닐는지요.

가을이 되면 어머님의 사랑은 지붕위로 올라갑니다. 저 높은 가지에서 따낸 감 깎아 추녀 끝에 걸으시고, 태풍에 떨어진 고추와 호박, 손자 다루듯 썰어 지붕 위에 말리면서 도시로 나간 자식을 기다립니다. 몸은 날로 가벼워지고, 허리는 점점 더 굽어지셨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해마다 무거워지는 어머니의 가을을 찾아 나섭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운동장(현 제동중학교) 모퉁이에서 나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여주던 소녀의 얼굴을 찾아봅니다. 내 나이 오십이 넘었으나, 그 소녀는 여전히 얼굴이 둥글고 키도 작습니다. 항시 웃음을 머금고 내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따뜻한 훈계를 잊지 않습니다. 나는 요즘도 고향의 따스한 후배를 만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 소녀의 미소를 찾는 것이지요. 눈부시도록 맑은 가을날이면 고향의 정겨운 분들과의 만남이 얼마나 향기로울 수 있는 것인지를 가르쳐준 내 최초의 스승인 그가 보고싶어 찾아 나섭니다.

또한 우리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은밀한 추억의 장소가 있습니다. 이 장소는 고향의 뒷동산이거나 냇가의 바위, 초등학교운동장, 느티나무 아래 등 사람마다 자기 생의 가장 소중한 한 부분을 남겨둔 자리입니다.

 

저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고향 보물 1호인 수산솔밭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꿈을 키웠고, 미래를 설계하고, 삶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삶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고단해질 때 나는 소리 없이 찾아가 삶의 원기를 얻기도 합니다.

이렇게 추억의 장소를 서성이며 어머니의 지순한 사랑과 첫사랑 소녀의 잔잔한 미소와 은밀하고 소중한 시간을 찾아주는 고향, 생각만 해도 설레는 가슴 멈추지 못합니다.

 

고향으로 가는 길, 덕신에서부터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나는 갈매기를 찾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갈매기들이 다 동일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겠지만, 누가 말했던가요.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는 여행이라고 말입니다. 나는 오늘도 고향 갈매기가 되어 그 옛날 검정고무신 신고 뛰놀던 송림을 잊을 수 없어 북녘 하늘만 바라보면 해오라기처럼 긴 모가지 빼들고 울먹입니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