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대 교수(신라대 사범대학 국어국문과)

▶주상대 교수
2003년 11월 모 TV 방송국의 역사 드라마에 울진 대게가 거론되면서, 울진과 인근 지방자치단체 간에 대게 논쟁이 있었다.
‘대게는 oo대게인데 어찌 울진대게라 하느냐’와 ‘생산지로 보면 울진 대게가 타당하다’라는 논쟁에서, 한 쪽은 피해를 입었다는 분위기였고, 울진은 느긋하게 즐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를 보면서 나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이 미소는 대게 논쟁에서 내 고향에 대한 지지와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고향을 생각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은 데서 오는 것이다.
고향은 이렇듯 잊고 지내다가도 무엇인가 계기가 되면 관심과 맹목적 지지의 대상이 되고, 마음의 평온을 찾게 해 준다.

고향을 떠난 지 사십여 년이 되었지만 고향의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는 희석되지 않는다. 매일 먹는 밥이지만 언제나 싫증이 나지 않는 것과 같이 고향도 언제나 한결같이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같은 저녁놀이라도 내 고향의 서산으로 지는 해가 만들어 내는 저녁놀만큼 아름다운 놀은 없다. 변산반도 채석강에서 본 저녁놀도 매우 아름답기는 했지만, 나에게 주는 감흥은 나의 고향 서쪽 하늘에 드리우던 놀에 미치지 못했다.
이곳저곳 연못들에서 많은 연꽃들을 보았지만 내 고향 연호정의 연꽃만큼 청초하고 품위 있는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해운대 만리포 상주리 등 유명한 해수욕장이 많으나, 내 어릴적 도시락 싸 들고 찾아가던 이름 없는 동해안의 조그마한 해변만큼 만족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진달래가 아름다운 산이 많지만 어릴 때 오르던 내 고향 뒷동산의 진달래처럼 친근한 정취는 못 느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감동으로 고향의 자연을 항상 간직하면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고향이 나에게 베푸는 혜택이고 고귀한 선물이다. 이런 고향의 자연에 대한 아름답고 아련한 심상을 영원히 간직하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다.
도회의 회색 건물들과 자동차 홍수 속의 삭막해지기 쉬운 현대 생활에서, 고향의 아름다운 심상은 늘 나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고향하면 이웃이 생각난다. 어릴 적 내가 자라던 고향 마을은 대문이 없었다. 울타리나 담도 거의 없었다. 혹 있어도 나지막한 것이 그냥 이름만을 위한 울타리나 담이었다. 대문 없는 이웃들과는 그야말로 이웃사촌으로 살았다.
격의 없이 친밀한 관계로 살면서 남의 집 세간 살림까지 서로 알고, 큰 일이 있으면 서로 빌려다 내 물건같이 사용했다. 세간들만 서로 나누어 쓰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은 서로 돕고, 슬픈 일은 서로 나누어 가지면서 모두 형제처럼 사는 곳이 고향이었다.
이웃의 아저씨나 누나는 나의 아저씨나 누나와 다를 바 없었다. 대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춥지 않으면 집들의 문도 열려 있었으니 이는 이웃들과 서로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지낸다는 징표였다.

이렇듯 이웃과 서로 돕고 위로하고 사랑하면서 지내는 곳이 수십 년 전의 내가 살던 고향 마을이었다. 그 곳은 현대의 각박한 경쟁과 이해타산이 없이 그저 서로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따뜻한 인정이 샘솟는 마을이었다.
고향하면 사람들이 생각난다. 어릴 적 긴 담뱃대 들고 사랑방에 모여서 세상 살아가는 얘기, 인생 얘기 그리고 버릇없는 젊은이들 걱정하시는 얘기들을 나누시던 할아버지들, 동네 어른들이 생각난다.

그 분들의 화제에는 마을과 고장과 젊은이들과 나라를 걱정하시는 진정이 담겨 있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그 할아버지들이 생각난다. 그 할아버지들이 모여 계시던 모습은 지금도 나에게 이 거친 세파의 울타리로 회상된다.
흉년이 들거나 보릿고개가 되면 아침 동틀 무렵에 일어나 뒷동산 중턱에 올라서서 아침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이 없나 살피시다가, 연기가 오르지 않는 집이 있으면 내려와 적은 양의 곡식이라도 바삐 들려 보내시던 할아버지들이 사시는 고향 마을이 생각나고, 그 할아버지들이 그리워진다. 노회함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순수와 위엄과 권위와 사랑이 있을 뿐이었다.
같이 자라던 친구들이 사는 곳, 일가 친척들이 사는 곳, 모두 낯익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고향이었다.
그런데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어쩌다 고향을 찾으면, 친구나 친척 그리고 세월 따라 훨씬 연륜이 더한 낯익은 사람들을 더러는 만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이 설다.

40여 년의 세월은 자연도 변하게 했지만 사람들은 더 변하게 했다. 당나라 시인 賀知章의 回鄕偶書란 시가 생각난다.
少年離家老人回 :어릴 적 고향 떠나 나이 들어 돌아오니
鄕音無改 毛衰 : 고향말씨는 그대로인데 수염은 세었네.
兒童相見不相識 :아이들 날 보고 낯설어 하다가
笑問客從何處來 :웃으면서 묻네. 어디서 오셨냐고.

어디서 들어도 정감이 가는 고향 말씨는 그대로인데 만나는 사람들은 예전에 만나던 사람들이 아니다. 아직 수염은 희여 지지 않았지만 60 고개를 넘어선 나이에 고향은 낯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고향에서의 낯설음은 객지에서 느끼는 낯설음과 달리 고향의 자연과 같은 친근감이 수반된 낯설음이다.

따뜻한 눈빛이나 한두 마디 말로 언제나 곧 친해질 수 있는, 고향에서만 느끼는 낯설음이다. 이 낯설음에는 고향의 따뜻한 정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고향을 말하면서 흔히 인물타령들을 많이 한다. 이를테면 어디 한 마을에서는 박사가 몇 명이 배출되었고, 어디 마을에서는 고시 합격자가 몇 명이 나왔고 하는 식의 타령은 어느 지방에나 있다.

나는 내 고향 울진에 대해 그런 인물타령을 하고 싶지 않다. 무슨 고시에 합격해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야 인물이고, 박사가 되어 학식을 쌓아야 인물이고, 정계의 저명인이 되어야 인물이고, 돈을 많이 벌어야 인물이고 하는 세속적 기준을 내 고향 울진에 적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만약 한 시대의 사상사를 창시 선도한 인재, 민족의 번영과 국가 장래에 크게 기여한 인재, 인류의 건강과 평화와 번영에 공헌한 인재 등은 우리가 기념비를 세우고 칭송하고 본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바에야 나는 차라리 내 고향 울진 사람들은 이웃과 더불어 정답게 사는 사람들, 대문이 없어도 안심하고 사는 사람들, 외지인에게 순수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들, 성실하며 열심히 일하고 자기만족을 아는 사람들, 맑고 밝고 자신감 있는 사람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 사회와 국가를 걱정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 내 고향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울진을 다녀온 동료 교수들이 ‘울진 어디 경치가 좋더라, 온천의 수질이 제일 좋더라, 바다가 아름답더라, 음식맛이 좋더라, 모두 절경이더라’ 등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더 듣고 싶은 말들이다.
내 고향 울진은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수질 좋기로 이름난 온천들, 동해와의 조화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망양정과 월송정, 절경으로 소문난 불영계곡 덕구계곡, 억년의 신비를 간직한 성류굴, 아름다운 동해, 봉평리 신라비, 백암산 등은 이름난 관광자원이다.

현대 사회에서 관광 자원은 고장의 소중한 재산이기에, 이 관광 자원도 잘 자꾸고 보존해야 한다. 이런 관광 자원이 더 빛을 내고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이들을 가꾸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여기에 고향 울진 사람들의 후덕하고 순수한 인심은 그야말로 다른 관광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고 자랑이다.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다. 우리는, 도회의 번거로운 일상에서 머리 위의 푸른 하늘을 잊고 사는 것처럼 고향도 잊고 살 때가 많다.

그러나 삶의 무게로 마음이 피곤할 때나,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심기를 불편하게 할 때, 우리는 고향을 생각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고향의 어릴 적 일을 생각하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고, 즐거운 미소를 머금게 한다. 고향은 여유와 관용의 샘이다. 어릴 적 고향의 생활은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소를 몰고 소 먹이러 가는 길도 전혀 바쁘지 않았고, 숙제하는 저녁 시간도 언제나 여유로웠다. 시계가 없어도 생활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으며, 계절을 늦게 맞이해도 그 감흥은 줄어들지 않았다.
주위의 실수나 결례는 웃음으로 수용되고, 순간적 오해는 곧 이해로 바뀌는 것이 어릴 적의 고향이었다.

내 고향 울진의 자연은 아름답다. 내 고향 울진 사람들은 순수하다. 이 아름답고 순수한 고향을 가졌다는 것은 행운이다. 이 고향에 대한 회상에서 언제나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축복이다.
이런 고향이 주는 축복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울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 울진 출생/울진 초·중·고등학교 졸업/경북대 학사 석사, 계명대 대학원 문학박사/신라대학교(구, 부산여자대학교) 사범대 학장/교수평의회 의장 교무처장 역임/(현) 신라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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