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섭 세중옛돌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장원섭
K형.
꽃샘추위가 한결 덜해진 것 같습니다. 먼 산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니 문득 고향의 봄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신지요?

듣자하니, 고향에서도 이 번 선거는 많이 달라진 모습들을 보이면서 끝났다고 하더군요. 선거도 끝났으니 한달 여 동안 술렁거리던 민심도 이제는 가라앉겠지요.

옳든 그르든 우리가 선택한 사람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4년을 또 그렇게 가슴조일 생각을 하니, 그저 이제는 제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속담이 회자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K형.
요즘처럼 시끄러운 세상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나는 고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K형도 잘 알고 계시는 포정해우(?丁解牛)의 고사 말입니다.

소를 잡는데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가지고 있어 이 방면에 도통했다고 소문난 이로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백정 도우토(屠牛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아홉 마리의 소를 잡아도 칼이 전혀 무디어지지 않아서 여전히 소의 털을 자를 수 있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포정(?丁)이라는 사람은 그 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무려 19년 동안이나 칼을 갈지 않아도 여전히 그가 사용하는 칼의 날은 전혀 무디어지지 않았다고 하니 말입니다.
원래 포정은 문혜군(文惠君)의 주방장이었던 사람이지요. 워낙 소를 잡는 데 도통하여 소 한 마리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찌나 능수능란했던지 손 놀리는 것이나 어깨 위에 둘러매는 것, 발을 내디디는 것, 무릎으로 밀어치는 동작, 살점을 쪼개는 소리, 칼로 두들기는 소리가 마치 뽕나무 숲에서 춤을 추듯 음악에 맞고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를 보고 감탄한 문혜군이 말했습니다.
“정말 훌륭하도다! 어찌 인간의 품새라 하겠는가.”
그러자 포정이 대답했습니다.
“소인은 항상 도(道)를 위해 몸 바쳤습니다. 도는 단순한 기술보다 고상하지요. 제가 처음 소를 잡았을 때는 소 전체가 눈앞에 보였습니다. 그러나 3년 정도 지나니 소를 보지 않게 되더군요. 지금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봅니다. 즉, 육감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오직 마음으로 일을 하지요. 그래서 소의 신체구조를 따라 뼈마디와 마디 사이로 칼날을 놀립니다. 자연히 살점과 심줄은 건드리지도 않고 큰 뼈를 다치지도 않지요.”

포정은 식칼을 바꾸는 횟수에 따라 소 잡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숙달된 고수는 식칼을 1년에 하나씩 바꾸고 보통 실력자는 한 달에 한 번씩 바꾼다고 합니다. 고수는 고기를 베고 보통 실력자는 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이 식칼을 19년 동안이나 사용했으며 지금까지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단 한 번도 칼을 바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비결은 뼈마디에 있는 틈새로 얇디얇은 식칼의 날을 밀어 넣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칼의 칼날은 언제나 숫돌에서 갓 갈아낸 것처럼 예리했다고 합니다. 포정이야말로 절정의 고수의 경지에 이른 셈이지요. 오늘날 포정은 요리사의 대명사로 널리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고 포정해우(?丁解牛)의 고사(故事)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한 분야에 집중하다 보면 도리가 훤히 트여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된다고 했습니다.
솔거(率去)가 황용사의 벽에 소나무를 그리자 새들이 소나무에 앉으려다 벽에 부딪쳐 죽었다는 일화나, 천리마를 볼 줄 알았던 백락(伯樂)같은 이들이 모두 그런 경지에 든 사람들입니다.

K형.
매일 아침에 일어나 듣는 똑같은 뉴스(?)도 이제는 식상합니다. 한 마디로 난장판이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볼썽사나운 모습들뿐입니다.
이럴 때, 한꺼번에 이를 쾌도난마처럼 해결해낼 수 있는 이 분야에 도통한 사람은 어디 없을까요? 포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소 한 마리를 해치우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가 뽑아놓은 사람에게 포정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K형.
개나리가 지고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입니다. 그동안 춥고 어두웠던 시간들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 모두가 지쳐버린 우리 서민들의 맺히고 시린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반가운 소식이라도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솔거나 백락, 포정과 같은 이들이 점점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K형.
고향을 떠올리면 언제나 K형과 함께 뛰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아름드리 노송이 우거진 뒷산 바위에 올라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대장부의 호연지기를 키우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곧 바쁜 일이 끝나는 대로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울진군 북면 나곡1리(석호) 출생 / 부구초(32회), 죽변중(13회), 울진고(21회), 고려대학교 졸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 문학박사 / 경기도 용인 세중옛돌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