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덕 (근남면 수곡출신)

▶이종덕씨
민족 최대의 명절이자 한 해 추수를 감사하는 의미가 깃든 풍성한 날인 추석이었지만 그리 풍성하지는 못한 것 같다. 추석보너스는 커녕 체납된 봉급이 몇 달이고 서비스업종 등 민생경제는 사상 최악의 바닥을 치는 가운데 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만 가고 있는 형편이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가 맞물린 스테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울한 가운데 맞이한 추석명절이 명절다울 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한가위를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보다 더 힘든 시절을 살아오면서도 추석에는 모두 모여서 즐거운 한때를 조상을 숭배하고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의 진미를 맛보곤 했다. 다들 어려워도 조금 더 나은 이웃이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환난상휼’의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어린시절은 환난상휼이란 단어와 통하는 실생활이었다.
모내기를 할 때나 마을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두 십시일반 상부상조 정신으로 도와주곤 했다. 이웃집이 제사를 지내고 나면 어른이 있는 집에 음식을 갖다드리고 젊은 분들은 모두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고 하는 풍습이 지금도 뇌리를 스친다. 동심의 세계는 인간의 본성과 본능이 순수하게 비춰지는 스크린처럼 지나가는 느낌이 늘 고향이라는 큰 명제 앞에 있다.

치열한 경쟁의식 속에서 사회활동은 때로는 힘들고 고달프고 괴롭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와도 주저하지 않고 빛 한줄기가 내려와 새벽을 연다는 진리 속에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청소년기의 진정한 용기가 토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60리길을 통학하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에 출발하여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누금, 비월, 성류굴에 도착하면 평소에는 괜찮은데 비만 오면 문제 구간이다. 다리가 나무다리라 강수량이 많으면 다리가 없어지고 댐 위를 여러 명이 손을 잡고 건너는 데 지금 생각만 해도 위험천만한 일을 자행했던 것이다. 겨울은 다리가 없으면 맨발로 강을 건너는데 발바닥에 얼음자갈이 주렁주렁 붙어서 추운 동장군의 참맛을 톡톡히 보고나면 아무 생각이 없다.

또 한 가지 학교 가는 길은 강수량이 많아서 댐 위를 통과하지 못할 때는 행곡 노선이다. 함질, 살구를 지나 바리재를 넘는데 왜 그리 높은지 힘이 들곤 하는 길이 제2의 길인 셈이다.

청소년기의 생활은 모두가 그렇듯이 빈곤의 악순환이었다. 의식주 해결에 최고 비중을 두고 있어도 먹고 살만한 토지가 있나 돈이 될만한 것이 있나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 때 최고 인기과자는 뽀빠이과자다. 통학을 하면서 가게 옆을 지날 때 왜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지금도 그렇게 먹고 싶은 과자는 없을 것이다.

방학이 되면 여름에는 농사일을 도우면서 오후에는 소 풀 먹이고 겨울이면 뗄감용 나무를 하면서 산토끼 목로를 놓고 운수좋은 날은 두 세 마리를 잡을 때도 있어 나무 짐 속에 넣어서 집에 가지고 와 털은 목도리용으로 고기는 요리를 해서 먹는 날이 유일한 촌놈의 저녁상에 고기국 만찬이 있는 날이다. 노루도 많아서 눈이 많이 오면 부엌에 들어와 자고 가고 한 순수한 오지마을이었다. 지금 이때쯤 송이버섯이 울진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는 마을로 나는 알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타향 객지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모든 기본이 되는 것은 동심의 세계의 생활과 성장기의 용기가 인생 전반을 차지하지 않았나 질문을 던져본다.
사람은 나서 죽을 때는 고향을 찾아 간다지만 항상 고향은 이웃인 동시에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한 곳이다.

우리 울진에서는 2005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를 유치하여 울진 군민 모두가 풍요롭고 잘 살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시점에 세계 속에 최고도시 울진이 되도록 전국 각지에서 살고 있는 울진 출신들은 홍보대사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2005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가 성공리에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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