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인하사대부속고 교사

▶박영수씨
도회지인데도 무척 높고 파란 아침 하늘을 참 오랜만에 올려다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살아 숨쉬는 고향의 가을을 회상한다.

소 먹이려 새름재(박금에서 정림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 신림으로 가는 고개)에 오르면 온 천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한 두 봉우리 끝이 시야를 가려 좀더 높은 곳에 올라서면 북쪽의 쇠치봉, 서쪽의 아구산, 남쪽으로 금산, 그 넘어 또 다른 이름모를 봉우리와 능선들, 동쪽으로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죽변 등대와 고요한 동해바다가 다 내 눈 높이에 걸쳐져서 마치 사방이 넘실대는 파도처럼 아련히 펼쳐진다.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하거나 묘 등에서 재잘대는데, 나는 가끔 혼자서 내가 모를 저 먼 세상의 끝자락이 희미하게 사라지는 온 누리를 한참동안 두리번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하였다. 문득 하늘을 보면 비행기가 길고 흰 꼬리를 달고 어디론가 날아간다. 자세히 보면 흰 꼬리 앞에 은빛 물체가 아주 조그만 한데 흰 꼬리는 계속 커지면서 옅어지다가 꼬리 끝이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모습은 참 신기했다. 그리고 그 비행기가 어디로 가는지 무척 궁금했다.

마음속으로 그 비행기에 몸을 싣고 머나먼 어느 곳까지 가보는 꿈을 한참 동안 꾸다가 언뜻 정신을 가다듬어 동쪽을 바라보면 푸른 바다 위를 아주 작은 배들이 늘어서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배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눈이 아련 거려서 새하얀 등대로 눈을 돌리면 “저 등대아래 외가가 있다는데……”, “저 곳에는 사람들도 많고 물품이 풍족하여 살기 좋은 곳일 거라……”는 상상을 하다가 다시 배를 보면 그 배들이 등대를 기준으로 조금씩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배는 저렇게 느릴까?”하고 궁금해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바다는 북쪽 끝 어디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내 닫다가 저 멀리 어느 땅 끝으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바다는 왜 수평선이 둥글게 휘어서 양쪽 끝이 땅 끝 너머로 시야에서 사라지는지를 알 수 가 없었고, 그 끝이 사라지는 북쪽과 남쪽의 끝 부분이 아마 이 땅의 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언제나 고갯마루나 산봉우리에 오를 때면 늘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눈앞에 펼쳐진 자연 현상을 바라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하였다.

무장공비의 침투가 있던 해에, 친구들은 모두 5학년 이였으나 병치레로 나 혼자 4학년을 다니게 되었다. 하교 길에 혼자서 들길을 지나고 고개를 넘다보면 정찰기가 낮게 떠서 굉음을 내며 날아간다. 가끔 확성기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끌리는 것은 그 비행기에서 뿌리는 ‘삐라’였다. 비행기를 물끄러미 바라볼라치면 갑자기 비행기에서 별처럼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물체들이 늦가을 비바람에 떨어지는 잎새처럼 온 하늘을 뒤덮는다. 어디로 떨어질까 생각하며 목이 부러져라 쳐다보다 보면 어떤 때에는 내 주위에 온통 하얀 눈이 내리는 듯 쏟아져 바람에 이리 저리 흩어진다. 종이를 주워 보면 “자수하면 살려준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 딱 이렇게 인쇄된 빠닥빠닥한 종이였다. 종이가 귀한 때라 숨차도록 주워서 책보에 가득 싸서 집에 오면, 일부는 연습장으로 대부분은 딱지를 접어서 놀았다. 그 때만큼 종이를 흔하게 써본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태어난 곳이 울진하고도 북쪽으로 시오리나 떨어진 산골 마을이라, 울진 읍이 너무 멀어서 지금은 폐교가 된 북면의 소곡국민학교를 다녔다. 두 고개와 대 여섯 물 나루를 건너서 오가는 길에 새겨진 추억들은 그렇게 멀게 느껴졌던 거리만큼이나 내 가슴에 수북하다. 길모퉁이, 논·밭두렁, 시냇가, 고갯마루에서 배불리 먹지 못해서 생긴 일들, 자연만이 놀이터라 그곳에서 뒹굴던 천진무구함이 오늘에도 내 가슴에는 현실보다 더 처량하게 새겨져 있다.

지금은 포장이 잘되어 한 달음에 다가가 제방 이였던 아스팔트길에서 들여다본 크디컸던 교정은 그렇게도 조그맣고 혼자 쓸쓸한 듯 했다. 누군가와 말 한마디라도 꼭 걸어야 할 것 같은 아쉬움에 한참을 서성거렸다.

덕구온천을 가려고 소야를 지나다가, 문득 입황조의 비석이라도 보고 가려고 멈췄는데 차는 이미 주인리로 넘어가는 산마루에 앉아있었다. 포크레인으로 혼자 길을 보수하는 젊은이에게 그 지점을 물어보니 잘 모른다고 했다. 어린시절 작은 할아버지를 따라 시제를 다닐 때 그리도 멀어서 다리가 무척 아팠는데, 신작로를 닦아서 지형이 모두 변하여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차를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올라가면서 콘크리트로 포장된 이 동네 저 골목을 두리번거리며 마치 숨겨놓은 보물이라도 찾는 듯이 기웃거렸다. 마당 언저리나 텃밭을 서성이는 촌로께 여쭤보려 했으나 내가 이미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말 한마디 못 건네고, 혼자 쓸데없이 카메라 셔터만 몇 번 누르다 황급히 그 자리를 도망쳤다.

왜냐하면, 그 동네 온 산천에는 우리 집안 조상의 묘소가 많아서 너무나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지만, 나를 어떻게 간단히 소개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세월이 하도 흘러 그 사이를 메워줄 중간 세대가 그곳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 중에는 어렴풋이 어느 동네 누구네 자손일 거라는 걸 알아차린 분도 계셨을 것이다.

곳곳에 감나무는 그 잎이 다 떨어지고 노랗다 못해 붉은 열매만 주렁주렁 매달고 빨개진 내 얼굴과 쿵쾅거리는 내 마음을 저마다 차창 틈으로 들여다보는 듯 했다. 길가에 피어있는 외송이 황국화도 반가운 듯 다가왔다가도 멈칫하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러난 나는 이 마을 저 길가에서 그리운 이들을 다 만나 보았다.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마음으로 서로를 아껴주던……. 그 뿌듯한 것 같으면서도 횡 뚫린 가슴을 안고 그리도 높아보이던 돌 재를 한 숨에 넘어 죽변항에 내달아 찬 바닷바람으로 허기를 채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폿집으로 향했다.


박영수씨는...
울진읍 정림2리(박금동) 출생 / 소곡초등학교 졸업 / 울진 중·고등학교 졸업 / 중앙대학교 졸업 / 인하대학교 대학원 졸업 / 현재 인하사대부속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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