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지금 사는 동네 뒤에는 관악산 둘레길이 있어 산책하면서 사색을 하기에 너무나 좋다. 거의 매일 한 시간씩 둘레길을 걷다시피 하는데, 이맘때는 알을 품은 봄 꿩들이 여기저기서 꿩꿩댄다.

우리 속담에 “봄 꿩이 제바람에 놀란다.”는 오월이다. 시골은 어떤지 몰라도 지금 서울 야산에 사는 꿩들은 알을 낳기 전까지는 불과 20여 미터 거리를 두고 사람이 지나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런 꿩을 보고 닭이냐고 묻기도 한다. 꿩알이 ‘공덕지물(功德之物)’이라 하여 이맘때는 ‘꿩알줍기’에 한창이었던 옛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열자(列子)' '황제편(皇帝篇)'에 해옹호구(海翁好鷗)라는 고사가 있다. 직역하면 갈매기를 좋아하는 바닷가 노인이라는 뜻인데, 요약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매일 아침 바닷가에서 수백 마리 갈매기와 더불어 어울렸는데, 어느 날 부친이 갈매기를 갖고 싶다며 한 마리 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다음날 아침 해옹(海翁)이 바닷가로 나갔더니, 잡으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갈매기들은 그의 머리 위로만 맴돌 뿐 한 마리도 땅에 내려않지 않더라는 이야기다. 짐승이나 곤충 같은 미물도 사람의 그 미묘한 마음까지 읽는다는 의미다. 그 미세한 마음의 기미를 동양에서는 기심(機心)이라 한다.

어렸을 때 선친으로부터 기심(機心)이라는 말을 우연찮게 들을 수가 있었다. 육식(肉食)이 귀하디귀한 산골이라 산짐승을 잡는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되어 싹쓸이로 포획되던 오래전 얘기다. 따라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야생동물은 구경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다.

다람쥐만 그런대로 흔하게 눈에 띄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다람쥐를 한 해 30만 마리가 넘게 일본에 수출을 하면서 다람쥐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뒤란 장독대를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던 다람쥐들이 사라지던 때 부친을 따라 산속 깊은 데를 갈 일이 있었다. 다람쥐가 바위에 올라앉아 호기심(好奇心) 어린 동작으로 고개만 꼰들거리기에, 어째서 도망을 가지 않는 지 이유를 여쭈었더니 아주 어려운 말로 다람쥐가 사람 기심(機心)을 보는 중이라 했다. 짐승은 물론 곤충에게도 위험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것이 기심(機心)인 줄 알았다.

여름철에 관광객이 많은 절집(寺刹)을 가보면 학습효과에 길들여지지 않은 곤충들을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거리가 몇 리나 되든 상관없이 절집 바깥문(山門)에서부터 대웅전까지 매미는 나무 밑동까지 붙어서 울어댄다. 山門 밖에서는 매미채로도 못 잡을 나무꼭대기에 붙었을 매미가 산문 안에서는 꼬맹이들 눈높이에서 맴맴거린다.

개구쟁이들이 손으로 잡아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잡혀준다. 붙잡았다가 주변사람들한테 혼이 나서 놓아줄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천연스럽게 꿈쩍도 않고 잡혀준다. 왜 그런가 물어오는 개구쟁이들에게 나는 고급지게(?) “절집 부근에서는 사람들의 기심(機心)이 사라진다”고 말해주고는, 몰래 귓속말로 “사람들이 없는 저 아래 도랑에 가서 가재 몇 마리 잡아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기심(機心)과 관련한 한시(漢詩)로는 고려말에 살았던 오세재(吳世才)의 ‘눈병(病目)’이라는 오언율시(五言律詩)가 유명하다. 오세재는 문학적 재능은 뛰어났지만 평생 벼슬을 못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젊어서부터 과거시험에 수도 없이 떨어지기만 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과거를 보고나서 지은 시로, “늙은 데다 눈병까지 앓아서 눈곱 때문에 햇볕도 어둡고, 눈(雪) 온 날에는 눈이 부셔 창밖을 못 본다. 등불 아래서 책 읽는 것조차 두려운데 그 와중에 과거시험을 보고 합격자 벽보가 붙기를 기다리지만, 이제는 합격자 명단 읽을 기심(機心)조차 일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세상이 온통 부푼 기대에 차 있다. 호기심(好奇心) 조차 전혀 없던 사람들도 이번에는 기심(機心)이 동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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