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먼저, 이 귀중한 지면을 나에게 할애해주신 전세중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처음 제안을 받고 내가 과연 이 귀한 저서에 추천사를 쓸 자격이 있나 싶어 머뭇거렸다.

그러다 문득 내가 윗분들께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할 때, 앞에 성씨나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유일한 분이 전세중 작가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나에게 의미가 큰 분이기에 외람되지만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작가님과 나는 울진신문에 각각 수필과 칼럼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10년이라는 꽤 오랜 기간 같은 지면(紙面)에 글이 실려, 더불어 읽다보니 직접 만난 적은 별로 없어도 서로가 매우 친숙하다. 그 동안 많은 작품을 통해 나에게 인식된 작가님의 이미지는 ‘선생님’과 ‘선비’다. 작가님은 이 두 가지 단어가 권위적인 심상이 다분하다는 이유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선비다”로 정의하는 이유는 두 단어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제외한 순수함이 작가님께 그대로 스며있기 때문이다.

한유(韓愈)는 <선생이란(師設)> 글에서 진정한 스승과 제자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을 뿐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다. 나이 많은 것도 없고 어린 것도 없다.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계신 곳이다.(吾師道也, 無貴無賤, 無長無小, 道之所存, 師之所存也)” 이러한 자세가 작가님의 심성에 그대로 녹아있다. 운현궁 뜰에서 글짓기를 하는 초등학생에게서도 감동을 찾고, 의류상가에서 오토바이나 지게로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들로부터 가슴 뛰는 삶을 투영한다.

“나는 오늘도 배우면서 살고 있다. 배워야 할 대상이 사방에 널려 있다. <중략> 비바람의 하늘 질서에서 배우고 나무와 야생초의 척박한 자생력에서 배운다. <중략> 우리는 언제까지 학생이어야 할까. 죽을 때까지는 누구나 학생인 것이다. 학생 신분으로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중략> 하찮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소질을 발휘하면서 건전한 생활을 영위한다면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학생이다- 전세중>

작가님께 갖추어진 선생님 이미지는 작품을 통해서 본 인생관이라는 점에서 내면적이다. 반면 선비적 이미지는 작가님의 외형에서 바로 드러난다. 단정하고 꼿꼿한 자세에 인자한 표정이 천생 선비다.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신데, 작가님의 그런 외형에서 화마(火魔)와 평생 싸워온 소방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온화한 모습 안에 투철한 사명감이 강인하게 자리한 선비의 본래적 의미가 그래서 더 와 닿는 분이다. 화재에 취약한 떡솜으로 지어져 시도 때도 없이 화재진압으로 출동했던 판자촌 구룡마을이 진력이 날 만도 하건만 작가적 시선은 여전히 고향마을을 보듯 따스하다.

“낯선 손님 출현에 매어둔 개는 죽어라 짖어댄다. 뒤뜰로 나가 지붕위에 주렁주렁 앉아 있는 호박덩이를 보며 도심에 이런 정취가 숨어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좋은 사진 남기라는 아주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여러 장을 찍었으나 내놓을 만한 작품은 없었다. 그것은 사진의 주제를 찾기보다 마음의 고향을 감상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구룡마을- 전세중>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 한국 고전번역원에서 옛 선비들의 작품을 오늘날 블로그 형식으로 편집 발행하는 <선비들의 블로그>라는 코너가 연상된다. 작가님은 현대를 상징하는 인터넷 매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 사진과 수필이 곁들여진 선생님의 작품은 하나의 완벽한 블로그 자체다. 물론 나는 작가님의 팬이자 그 블로그의 대표적인 팔로어(follower)다.


                                                                       /임명룡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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