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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암, 대풍헌, 북천교비, 주천대 ... 를 돌아
울진문화원 제1차 ‘지역문화유적답사’
2018년 08월 01일 (수) 10:56:49 [조회수 : 755]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울진문화원(원장 김성준)은 문화원 회원을 대상으로 6월 29일에 1차(울진읍, 금강송면, 북면, 죽변면 회원) 울진 지역 문화유적탐방을 하였다.

회원들이 이런 행사를 통해 내 고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면서, 울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간단한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고자 하는 취지였다.

1차 답사지는 남쪽 유적지를 중심으로 해월헌, 도해암, 대풍헌, 북천교비, 주천대, 격암묘소 순이었다. 유적지 해설은 지역 역사문화를 오랜 시간 연구하고 현장에서 많은 관광객과 지역민을 대상으로 해설해온 경력을 자랑하는 김성준 문화원장이 직접하였다.

특히 해월헌에서는 황의석 해월 종손이 직접 집의 유래와 해월선생과 교유했던 인물들, 해월헌에 게판된 시판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어 더욱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

옛 선비들이 노닐던 공간인 행곡 주천대에서 담소하며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참여 회원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지역에 이런 문화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거나, 이름만 들었지 처음 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매우 흡족해했다.

2차 답사(평해읍, 후포면, 온정면, 기성면, 매화면, 근남면 회원)는 가을에 실시할 계획이다. 답사지는 봉평리 신라비, 불영사, 고산성, 주천대, 격암묘소를 찾아갈 계획이다. 지난 1차 답사지의 간단한 안내 자료를 소개한다.


❍ 해월헌(海月軒)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해월헌길 70.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6호. 해월헌(海月軒)은 동해가 인접한 기성면 사동리의 골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중기 길주목사(吉州牧使)와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지내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 되었던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이 지은 별당(別堂)이다.

해월헌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이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문인으로 뛰어난 학자요 정치 외교가였던 해월, 그의 장자인 동명(東溟) 황중윤(黃中允), 외숙인 정담(鄭湛) 장군이 해월헌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 도해암 - 경북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 산 78-5. 이 충절시는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백암 김제가 동해 바다로 들어가면서 남긴 시로 조선 정조 때 해안 바위에 이 시가 각자되어 있었는데, 이 바위를 도해암(蹈海岩)이라 불렀다. 그러나 1964년 7월 방파제 공사 때 암벽이 파괴되어 1981년 9월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인 해안가 암벽에 다시 새겼다.

충개공 백암 김제(金濟) 선생 벽상시 - 呼船東問魯連津 배를 불러 동쪽 노중련의 나룻터를 묻노니/ 五百年今一介臣 오백년 고려조의 한사람 충신이로다 / 可使孤魂能不死 외로운 이 영혼이 죽지 않고 남는다면/ 願隨紅日照中垠 붉은 해를 따라가 중원 땅 비추길 원하노라.

❍ 대풍헌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구산포(丘山浦)에서 울릉도로 가던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 건물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산동사중수기(邱山洞舍 重修記)」에 의하면 1851년(철종 2)에 중수하였고, ‘대풍헌’이란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울릉도를 관리하던 수토사들의 출발지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 북천교비 - 2004년 10월 1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1호. 1603년(선조 36) 3월에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북쪽 월송리 지역에 주민의 생활 편의를 위하여 세운 돌다리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평해읍 북쪽 월송리 지역에 하나의 사천(沙川)이 바닷물과 서로 통해 수시로 물이 넘쳐 지역 주민들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당하고, 울진 지역을 찾는 상인들이 통행에 많은 곤란을 겪어 왔다. 이런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당시 평해군수였던 조인징의 허락을 얻어 돌다리를 세우게 되었다.

17세기 경상북도 울진군 일대의 지역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월송 지역의 명칭과 대시주 91명의 인명 기록 방식 등에 나타난 금석문을 발음대로 새긴 것은 국어학연구와 관련하여 자료적 가치가 크다.

❍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 남사고(南師古, 1509~1571)는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서 태어난 유학자이자 풍수가이다. 남사고의 본관은 영양(英陽)이며, 자는 경원(景元)·경초(景初)·복초(復初)이고, 호는 격암(格庵)이다. 이조좌랑을 지낸 남희백(南希伯)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평생 󰡔소학󰡕을 즐겨 읽은 남사고는 거의 독학으로 학문에 매진했으며, ‘해동의 소강절(邵康節)’이라고 일컬어진다.

명종 때(1564년 무렵) 효렴(孝廉: 효행이 지극하고 청렴한 사람에게 벼슬을 주는 제도)에 천거되어 사직서(社稷署)의 참봉(參奉)을 지냈으나, 대부분의 생애를 고향인 울진에서 보냈다. 선조 초(1568년 무렵) 관상감(觀象監)의 천문교수(종6품)로 임명되었으나 1571년(선조 4) 병으로 사망했으며, 지인이 시신을 울진의 성산마을로 운구해 장사지냈다.

남사고는 부인 강릉 최씨 사이에 아들과 딸을 두었으나,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 외손이 제사를 모셨다. 1574년(선조 7) 옥계서원에 배향되었다. 그와 관련된 행적이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자료는 그의 시와 편지, 묘비명 그리고 후학들이 쓴 글을 모은 󰡔격암선생일고역(格庵先生逸稿譯)󰡕 등이다.

❍ 주천대
주천대는 근남면 행곡4리 ‘구미(龜尾)마을’에 있다. 조선 인조 때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가 주천대의 풍광에 반해 이곳에서 20여 년간 주거하고, 주천대를 중심으로 울진지역의 인사들과 깊은 교유를 한다. 만휴에 앞서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가 주천대의 경관을 사랑하여 자주 제자들을 거느리고 찾던 곳이다. 만휴의 유적비와 동봉(東峯)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 1645~1703), 만휴의 삼선생유허비(三先生遺虛碑)가 있다.



                                                                        /김정순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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