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문화원장의 울진민담순례 (2)

 

통고산 자락의 어느 산골마을 사람들은 허구헌날 농사일만 하다보니,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길이 없었다.

서당도 없고 글을 가르칠만한 선생님도 없었다. 어느날 마을 주민들은 이 문제를 놓고 회의를 했다.

결론은 외부에서 선생을 모셔다가 서당을 열자고 의견을 모았다. 마침 이 마을의 촌장격인 어른의 사위가 읍내 근처에 사는데, 글께나 하는 선비라고 했다.

그런데 모셔 온 이 선생은 모든 언어를 문자를 써서 말하니, 마을 사람들이 매우 유식한 줄 알았다.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항상 큰 소리로 야단을 쳐마을 사람들은 그를 “꽥 선생”이라 불렀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산골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호환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밤 호랑이 한 마리가 꽥 선생의 장인을 물고 달아나 버렸다. 꽥 선생이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와 고함을 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문자를 썼다.

“遠山虎가 近山來 하여 吾之 丈人을 拉去하니 (먼산의 호랑이가 가까운 산으로 내려와 나의 장인을 물어갔으니)/ 洞中之人아 有鋹者 는 執鋹而來하고 (동네 사람들아 창이 있는 사람은 창을 갖고 오고)/ 有弓者는 執弓而來하고 無鋹無弓者는 執棍捧而 急來 速來하라 (활이 있는 자는 활을 갖고 오고, 창도 활도 없는 사람은 몽둥이를 들고 빨리 나오라!)”

그런데 이렇게 소리를 쳤으나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자기 자식들을 가르쳐주는 훈장인데, 급할 때 한 사람도 도와주지 않다니...” 꽥 선생은 장인을 잃고 생각할수록 괘씸하여 마을사람들을 관가에 고발하고 말았다.

사건을 접수한 사또는 마을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훈장님이 큰 소리로 빨리 나오라고 외쳤는데도 왜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느냐?” 고 문초하니,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훈장님이 문자를 써서 소리치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고 했다.

이에 사또는 마을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꽥 선생의 잘못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사또는 오히려 위급한 상황에서도 유식한 체 문자를 쓰다가 장인을 살리지 못한 책임을 물어 꽥 선생에게 태형 10대를 쳤다.
 

꽥 선생은 태형을 맞으면서도 문자를 썼다. “不孝莫大漢也로 至死無限이오나 此後에는 不用文字하오리다 (불효막대한 놈이라 죽어도 한이 없으며, 다음부터는 문자를 쓰지 않겠습니다) 문밖에는 숙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카인 꽥 선생이 나오자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숙부는 애꾸눈이었는데 서로 안고 울게 되니, 숙부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줄기만 흐르는데 꽥 선생은 이런 와중에서도 우스웠던가 보다. “叔姪이 相對泣하니 兩人이 淚三行이라” (숙질이 서로 안고 우니 두 사람의 눈물이 세 줄기더라) 하고 또 문자를 썼다. (*출처: 구 울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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