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손용한

 

고향을 떠나 정착한 성남시 언 몇십년 어느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순간 옆에서 차를 빼던 주부가 내 차를 살짝쿵 박았다. 다행히 차에 큰 상처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주부는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 하며 변상을 하겠다고 했다. 얼굴엔 긴장감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워낙 살짝 박은 거라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니고 차도 멀쩡하니 그냥 가시라며 웃었다.

그러자 주부는 거듭 고맙다며 내게 명함을 주면서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란다. 몇 번이나 허리 숙여 고맙다며 인사하고 떠난 그 주부를 보며, 내가 처음 성남으로 이사 온 10년 전쯤의 일이 떠올랐다.

대도시에 와서 제일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서툰 운전실력 덕분에 주차를 헤매는 일이었다. 널찍했던 시골의 주차여건에 비해 복잡하기 짝이 없는 도시는 곳곳에서 주차전쟁을 치러야 했다.

어느 날 밤, 지하 주차장에서 후진하다 다른 차를 박는 사고를 냈다. 부랴부랴 차량의 파손 여부를 확인해 보니, 상대 챠랑 범퍼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약간 찌그러졌다. 바로 차량 앞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고, 몇 분 후 차 주인의 듯한 중년 남자분이 내려왔다. 그런데 이 분은 범퍼를 발로 툭툭 차 보더니 “멀쩡하네, 됐어요! 차도 오래 탔는데요 뭐.

그래도 양심적이시네요. 이렇게 연락까지 해 주시고. 괜찮으니 그냥 가세요.”라고 했다. 사소하지만 파손된 것이 분명한데, 오래된 중고차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쿨하게 넘어가는 배려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수리는 않더라도 범퍼 값 정도는 드려야 하지 않겠냐 며 재차 미안한 마음을 전하자, “중고차 범퍼 갈면 자원낭비예요. 그러니까 보험료 올라가는 거라니까요”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후 나도 혹시 사고를 당하면, 이런 관대함으로 상대를 배려해야겠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그리고 오늘 그런 관대함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분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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