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칼럼

 

산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답게 서울에도 울진관련 등산모임이 대략 11개 쯤 있다. 10개 읍면민회 소속 모임들이 있고, 재경울진군 산악회가 별도로 있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마다 산행을 하는데 관광버스 1대로 전국 명산들을 누빈다.

그러다보니 네댓 시간 이상 버스를 타게 되는 경우도 많다. 2018년까지 지난 2년간 산악회를 맡아 알찬 산행을 이끌어온 백상규 산악회장은 중학교 선배다.

나도 올해부터 서울의 등산모임에 가끔 따라다니고 있는데, 그동안 울진관련 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었던 터라 나를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후배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백상규 선배는 앞으로 불러내놓고 잔뜩 부풀려가며 나를 소개한다. 그러고는 보답으로 ‘인문학 강좌’ 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지루한 버스 이동의 ‘시간 때우기’용으로 써먹는다.

그럴 때 약간은 다행인 게 고전을 배운 덕에 전국 각 지역마다 그곳 출신의 역사적 인물을 어느 정도 꿰고 있다는 건데, 산행지에 닿기 전에 그 인물들을 잠시 소개하면서 넘어가곤 한다. 오늘날 이름만 거창하고 알맹이 없는 ‘인문학’이라는 용어에 잘 어울리는 시간 때움이다.

‘소칼의 장난(Sokal hoax)’ 이라는 말이 있다. 1996년, 뉴욕대학 물리학 교수인 앨런 소칼은 저명한 사회학 평론지 <소셜 텍스트(Social Text)> 에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 이란 논문을 투고했다. <소셜 텍스트>는 계간호에 그 논문을 게재하여 소칼의 장난 시험에 걸려들고 말았다.

소칼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다루는 학자들이 얼마나 편향적인 사고(思考)로 텍스트를 수용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짜깁기로 날조한 논문을 투고했던 것이다. 즉, 만약 어떤 논문이 표면적으로 그럴싸해 보이고, 편집자의 이념적 가치에 부합하는 내용일 경우, 사회를 주도한다는 평론지도 헛소리로 꾸며낸 논문을 게재할 것인지 시험하기 위해 벌인 장난이었다.

소칼은 그 시험을 통해 “미국의 사회학계가 인문학 영역에서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현실에 크게 당혹감을 느꼈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언론지나 방송계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TV만 틀면 ‘인문학’ 운운하는 수준 낮은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실을 가지고 마치 100% 진실인양 조작하고 선동하는 ‘꾼’들이 강단에 올라 순종적 방청객들 앞에서, 정권과 방송사 사장의 이념적 가치에 부합하는 ‘썰’을 풀어댄다. 정권마다 방송국 장악에 그토록 기를 쓰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나는 매주 일요일 오전이면 아내와 TV 채널을 두고 다툼을 벌인다. ‘TV쇼 진품명품’을 원하는데 아내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고집한다. 당연히 주도권은 아내에게 있어서 서프라이즈를 시청하게 되고 나는 재미가 없어 대부분 자리를 뜬다.

어쩌다가 같이 볼 때도 있는데 아내에게서 신기한 행동을 발견했다. 서프라이즈 끝부분에는 ‘진실 혹은 거짓’ 이란 코너가 있어서 이야기 세편 정도를 방영하고는 어느 것이 거짓인지 패널들이 맞추는 형식이다. 그런데 아내는 정답을 확인하지 않고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린다.

기껏 우겨서 양보를 했더니 정답을 확인도 안 하고 꺼버리는 아내의 무례에 화가 나서 따졌더니, “재미있게 봤으면 그만이지 진실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하냐”는 거다. 처음에는 기가 막혀서 주제넘게(?) 대들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내 말이 맞는 것 같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자체가 약간의 사실을 부풀려서 흥미를 유발하는 예능프로그램인데, 진실과 거짓에 민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오래된 역사적 진실은 수만 개로 조각난 채 존재한다. 그 조각들을 선택적 지각(知覺)으로 짜 맞추기에 따라, 원하는 사람의 이념적 가치에 부합하도록 이기적 진실, 주관적 진실로 그럴듯하게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소칼의 날조에 당한 사회과학자들도 “그것 봐라, 우리가 주장한 대로 텍스트는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은가” 라는 궤변을 내놓았다. 근래 우리 방송에서 남발하는 ‘인문학 강좌’ 그런 흔적들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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