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시인, 논설위원)

 

몇 해 전 여름, 초중학생들과 러시아 연해주 일대의 항일 독립운동지를 탐방했다.

양양 국제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러시아 혁명 광장과 독립운동의 본거지인 신한촌을 둘러보고 이튿날엔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변 이상설 유허비를 찾았다. 유허비 앞엔 누군가가 바친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고, 우리 일행은 항일 독립 운동가를 기리는 묵념을 올렸다.

이상설은 고종의 밀지를 받아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국권회복을 호소하기 위해 특사로 파견되었던 인물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일제와 영국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상설은 그 이후에도 활발하게 항일운동을 하다가 연해주에서 병사했다. ‘내가 죽거든 불태워 유해를 강에다 뿌려 달라’던 유언대로 그의 유해는 수이푼 강에 뿌려졌다.

그날 저녁 우수리스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시베리아 야간 횡단열차를 탔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아시아 대륙 동쪽의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까지, 총길이 9288㎞, 최소 7일이 걸리는 세계 최장거리 철도다. 1891년 착공, 1916년에 완공되어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까지 63개의 역을 지난다.

중국 북부를 지나 바이칼 호를 남으로 끼고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예카테린부르크를 거쳐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고 핀란드 헬싱키까지를 잇는다. 철도로 유럽을 가려는 여행객들에게 시베리아 횡단철도 타기가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버킷 리스트) 중 하나라고 한다.

야간열차를 탄다는 말에, 더구나 열차에서 숙박하는 2층 침대 열차라는 말에 아이들이 환호했다. 열차는 덜커덩 거리며 밤새 달렸다. 아이들 안전 점검차 들렀더니 열차 칸마다 모두 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샘요, 이 열차 타고 계속 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나요?”
어느 한 녀석이 뜬금없이 물었다.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갈 수 있다는데?”
“얼마나 걸려요?”
“최소 1주일 걸린다는 데 나도 너들처럼 이번에 처음 타 봐서 잘 모르겠다.”
“그럼 울진에도 열차가 들어오면 모스크바까지 갈 수 있겠네요?”
“글쎄, 앞으로 남북한 철도가 연결되면 그럴 수도 있겠지.”

수이푼 강변에 잠든 이상설을 비롯한 특사 3인방이 임명되었던 구한말, 그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네덜란드까지 갔다. 얼마 전 끝난 인기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도 의병들은 열차를 타고 만주대륙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남북철도는 1951년 끊어졌다. 자루에 갇힌 것처럼 ‘대륙의 섬나라’가 되어 버린 지 66년이 흘러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남북철도가 연결돼 시험운행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사그라져 들었던 꿈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은 최근 남북정상회담 덕분이다. 지난해 판문점과 평양에서의 정상간 합의대로 동·서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 착공식과 시험운행이 재개되었다. 앞으로 남북미간 협상이 잘 성사되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시대가 실현된다면, 미래 주인공인 우리 아이들의 꿈처럼 열차를 이용하여 모스크바까지, 아니 헤이그 특사가 갔던 네덜란드까지 질풍노도처럼 달릴 수 있겠다. 한반도 유라시아 횡단 열차를 타고 말이다.

현재 공사 중인 영덕-울진-삼척 철도가 완공되고, 남북한 철도까지 이어진다면,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러시아와 중국, 유럽에까지 인적 문화교류와 무역 등이 활발히 오가는 새로운 역사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머잖아 울진역 전광판에 평양역,신의주역,금강산역,원산역,함흥역,청진역,블라디보스토크역,베를린역, 프랑스 파리 행까지 점멸 표지판이 나타나고, 울진 발 유럽행 승차권을 손에 쥐는 날이 오기를 황금 돼지해에 소망해본다.

허리 툭 잘린 한반도! 철도와 도로 연결은 끊어진 민족의 인적, 물적 대동맥을 잇는 평화통일의 길을 잇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험난하더라도, 혼자 꿈꾸면 백일몽이지만 여럿이 꿈꾸면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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