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농모 배동분의 세계여행기 4편


 

독일을 몇 번 갔지만 딸과 함께 배낭여행을 갔을 때가 가장 잔상이 오래 남는다. 그것은 아마도 가이드의 외침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쫓아다니는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내 발길 닿는대로 다니는 느림의 배낭여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유럽배낭여행은 독일In, 체코Out의 일정이었다. 독일여행에서 가장 감동적인 곳 세 곳 중 하나가 지금 이야기할 로텐부르크다. 딸은 “엄마가 좋아할 곳이라”며, 로텐부르크로 가는 기차 안에서 기대해도 좋다고까지 했다. 딸의 말은 적중했다. 로텐부르크는 1274년 ‘황제의 자유도시’라는 지위를 부여받은 곳으로 도시 전체가 높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세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중세의 보석”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여행자는 중세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중세시대에 주변국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마을주위가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어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다. 지금도 그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내게 한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중세시대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로텐부르크만한 곳이 있을까?
인구 16만명 정도의 중세마을인 로텐부르크는 로맨틱가도의 가장 인기있는 곳이다. 로맨틱가도란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에 이르는 약 350km를 말하는데 이곳 로텐부르크를 ‘로맨틱가도의 보석’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그게 거품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도시 전체가 납작돌로 깔려져 있는데 중세의 분위기에 어느 것 하나 위배되지 않기 위해 많은 관리를 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중세에는 문맹이 많았던 까닭에 동물, 가위, 별 모양의 연철로 만든 간판들이 또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어 내걸렸고, 여행객들은 고개를 젖히고 멋진 철재 간판에 감동했다.

성벽과 중세의 집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다 상점들도 하나같이 고풍스럽고, 조잡하지 않으며, 창밖에서 들여다만 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상품들로 가득하다. 중세 건물에 칠해진 칼라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색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도시 전체의 건물 색상까지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관리되고 있음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곳은 중세의 멋도 멋이지만,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는 크리스마스마켓이 유명한 인기관광지이다. 크리스마스 박물관까지 있으니 그곳 전체의 분위기가 얼마나 동화같고, 아름다운지는 두 말 하면 입 아플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각종 화려한 조각품, 장식, 인테리어 소품, 데코용품 등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여행자를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세계인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이곳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15세기에 조성되었다는 마르크트 광장과 190년 동안 지은 고딕양식의 성 야콥교회, 시의원연회관 등이다. 물론 이곳만이 아니라 도시를 형성하는 가게, 식당, 호텔 및 게스트 하우스 모두가 하나의 관광상품 처럼 건물들 전체가 고풍스럽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 시의원연회관은 그 건물이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그 건물 벽에 걸려 있는 벽시계가 멋진 관광상품이 되어 있었다. 이 벽시계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각마다 시계창문이 열리면서, 그곳에서 인형들이 나와 공연을 한다. 이 공연의 의미는 30년 전쟁 당시 에스파냐 장군으로부터 3리터가 넘는 포도주 한 통을 원샷하면 시민들을 학살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받고, 이곳 시장은 포도주 한 통을 다 마셔 시민을 구했는데 이 이야기를 재현한 벽시계와 인형극이다.

시민을 구한 시장을 잊지 않기 위해 인형극 벽시계를 만든 것도 대단했고, 역사적 사실에 감동받은 것은 그곳의 시민만이 아니라, 여행객들도 그곳에 모여 역사적 스토리를 되새긴다는 것도 독특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토리의 힘은 그런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스토리로 여행객을 끄는 곳이 있었다. 성벽 끝부분에 위치한 곳인데, 할아버지의 화실 겸 그림 판매하는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벽난로 옆에서 이젤을 앞에 놓고 그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많은 여행객이 그곳에 들어가 그림도 보았지만 대부분은 할아버지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에 넋이 나간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느 나라든 삶이란 게 잡사에 시달리느라 모두가 여유와는 담을 쌓고 산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여행객들은 그 여유로운 풍경에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할아버지는 호객행위는커녕 들어오는 손님에게조차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나 역시 할아버지 모습에 배운 바가 많았으니, 교육비를 지불하는 차원에서 작은 그림을 한 점 샀다.

로텐부르크의 관광적 특징은 첫째, 중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는 점이다. 대개는 현대적인 건물이나 상점이 어설프게나마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중세시대로 들어간 듯 완벽에 가깝게 재현했다는 것에 세계인이 감동하는 곳이다.

둘째, 크리스마스 마켓기간이 아니더라도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특화했고, 그것이 먹혔다는 점이다. 셋째, 목 좋은 상점만 볼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상점마다 상품들이 조잡하지 않고 퀄리티가 높다보니, 상점구경만으로도 여행객을 동화 속으로 안내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넷째, 숙소 역시 인테리어 소품부터 식당까지 중세분위기를 내어 여행객의 마음을 앙고라 스웨터의 폭신함으로 채워주었다. 다섯째, 로텐부르크하면 망치로 깨먹는 과자인 슈니발렌이 유명한 먹거리이다. 우리나라에도 슈니발렌 전문점이 유행했었는데, 원조는 로텐부르크이다. 그곳에 모여든 관광객들마다 주먹만한 눈뭉치처럼 생긴 슈니발렌이 들려 있을 정도로 명성높은 먹거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샹그릴라’(shangrila)를 동경한다. ‘샹그릴라’는 영국의 유명 작가인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소설에 이상향으로 나오는 도시이다. 또 박범신 작가는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이란 책에 ‘샹그릴라’가 본래 ‘언덕 저쪽’이라는 뜻이라고도 했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닌 ‘언덕 저쪽’ 이란 뜻으로 나는 해독(?) 했다.우리는 ‘샹그릴라’를 꿈꾸기에 여행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를 가야 ‘샹그릴라’가 있는 게 아니고, 바로 내 안에 존재하는 곳임을 여행은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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