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이 만난 사람 7 / 문현호 ‘지구촌 유학원장’



죽변 출신, 강남에서 유학생 가이드

전인교육 담당할 학교 만드는 게 꿈

 

퇴근 시간, 서울 강남역은 도시의 심장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활기로 혈류 같은 통로는 뜨겁게 꿈틀댄다. 건강하게 진화한 도시의 미래를 걷다보면 덩달아 기운이 솟는다. 그 길을 따라 또 한 분의 자랑스러운 울진사람을 만났다.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에서 <지구촌 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문현호 원장이다. 대한민국 미래세대를 지구촌 곳곳으로 안내하고 있는 분이다.
 

철저한 고객관리로 탄탄한 신뢰구축

문 원장은 <지구촌 유학원>을 통해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유학생들이 새벽 두세 시에 전화로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일상일 정도로 학생들을 철저하게 보살피고 있다.

“고객들이 초대형이나 기업형 유학원을 마다하고 저희 유학원을 찾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너무 많으면 1대1 케어가 불가능하거든요. 어린 학생들이 외국에서 맞게 되는 수많은 상황과 변수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지요. 긴급한 상황인데 하루나 이틀이 지연되면, 아이나 부모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지구촌 유학원>을 통해 유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은 유학생활은 물론 성적과 용돈까지 관리대상이다. 또한 문화 차이에서 발생하는 생활 범칙금까지 부모님들께 수시로 상황설명을 통해서 관리한다. 그렇게 철저히 보살핀 까닭에 유학을 통해 성공한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학점 2,5/4.5점을 받은 학생을 미국으로 보내서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유서 깊은 코넬대학교에 2등으로 합격시킨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전문대학교를 마치고 영어연수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주립대학교에서 연간 1천만 원 상당의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2등으로 졸업하여 지금은 뉴욕대학원에서 역시 연간 1천만 원 상당의 장학생으로 석사과정으로 공부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또한 충청도 시골에서 상경하여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중 유학을 통해 크게 성공한 학생도 있다. 그 학생은 군대를 제대하고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미국유학을 준비했으나 출국 열흘 전에 미국비자를 분실했다.

망연자실해있는 학생을 비자가 필요하지 않는 영국으로 보내 돌파구를 마련해주었고, 영국대학 졸업과 동시에 글로벌 업체에 취업하여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또 19년 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재수생이 2013년 미국의 명문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교수가 되어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올해 초에 받았다며 내게 카톡문자를 보여주었다.

그밖에도 1996년에 캐나다 어학연수생이 퍼듀대학원 석사, 버클리대학교 박사 취득 후 지금은 연세대학교 교수가 된 경우 등, <지구촌 유학원>의 가이드로 제2의 도전과 유학을 통해 인생역전에 성공한 사례는 차고 넘쳤다.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는 테이블 위에 한 자 높이로 쌓인 종이더미가 있기에 궁금해서 물었더니 그것이 전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보낸 감사편지라고 했다.


죽변면 화성리(용장)에서 더 넓은 세계를 꿈꾸다.

문 원장의 고향은 죽변면 화성3리다. 부친은 농사와 소를 거간하는 일을 하셨다. 4남매 중에서 셋째로 나고 자란 문 원장은 어려서부터 유별났다. 숙부께서 월남파병을 거쳐 일찍이 서울에서 정착하신 덕분에 문 원장은 어려서부터 서울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넓은 세상을 그렸던 것 같아요. 방학동안 서울에서 지내다가 산골로 돌아오면 갑갑해서 힘들었습니다. 산속에서 소에 풀이나 뜯기고 있는 현실이 싫었어요. 일단 서울로 가면 어떻게든 해결 되겠지 생각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출을 했습니다(웃음).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서울 가는 차비를 만들었지요. 북평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북평에서 분천으로 해서 청량리역까지 새벽에 도착했어요. 머릿속에 ‘천호동 주공아파트’ 만 외고 택시를 탔습니다. 새벽에 초인종을 누르고 나타난 저를 보고 작은아버지가 기겁을 하더군요 (웃음)”

죽변중학교를 마치고 안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경북에서 연합고사를 치른 곳은 대구와 안동이었는데, 대구는 아는 사람이 없어 포기하고 할머니의 동생이 살고 있는 안동을 택했다.
할머니가 자취방에 오셔서 뒷바라지를 했다. 문 원장에게는 할머니가 각별하다. 6,25 때 조부께서 북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서른여섯에 청상이 되신 분이다. 그분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육군사관학교를 꿈꾸었지만

할아버지는 6,25때 북한으로 강제로 북송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납북 도중 탈출을 했다가 체포되어 끌려갔다. 명지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연좌제 폐지’라는 소식에 과감하게 자퇴를 하고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당시에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서울경기지역 시험에서 1차와 2차를 합격하고 합격자 발표만 기다리는데 연락이 없었다. 1월말 가입교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서 육사 교무처에 문의했으나 탈락원인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숙부는 국방부에 수차례나 탄원서를 보내도 대답이 없어서 결국 대통령 민원실로 탄원서를 보냈다.

최종적으로 국방부장관 명의로 “신원조회에서 불합격했으니 일반대학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육사는 포기하고 외국어대학교로 입학을 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에 합격했으나 이미 유학 및 1개월 후 출국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기에 숙부께 5백만 원을 빌려 캐나다로 유학을 선택했다.
 

유학생을 돌봐주는 유학생이 유학원장이 되다.

 캐나다 도착 3일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식당에서 설거지 알바부터 시작했는데 알바생이 받는 몇 푼의 팁까지 관여하는 주인과의 마찰로 1주일 만에 그만두고, 주급으로 받은 돈으로 자전거를 샀다. 당시 유학생들이 타국에서 홀로 겪는 고초가 얼마나 심하고 힘들었던지 그들을 ‘패러슛 키즈(PARACHUTE KIDS), 즉 “낙하산에 태워져 떨어진 아이들”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러한 처지에 있는 유학생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던 일들이 <미주 한국일보>에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수입을 아껴 자전거에서 중고차로 갈아타게 되었고 그만큼 일자리를 찾는 반경이 넓어지면서 양질의 아르바이트가 생겼다.

한국에 귀국을 하게 될 대사관, 영사관 직원들과 해외 파견을 나온 대기업 간부들의 자녀들에게 <한국 대학입시 과외>를 하면서 제법 큰 수입이 생겼다. 덕분에 학비걱정을 덜고 공부할 수 있었고, 캐나다 Dorset College, BCIT, Compu College School of Business MCBA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또한 주요 인사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캐나다 유학·이민 전문회사인 <KOREANA>와 사업동반자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KOREANA> 대표이사인 ‘조 엘 화이트헤드(Joe L. Whitehead)’는 전 캐나다 상원의원이었고 캐나다의 세계적인 명문대학교인 UBC에서 40년 이상 교수생활을 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캐나다 대표로 참석하여 대한항공의 캐나다 취항과 주한 캐나다 대사관을 설립에 앞장선 지한파 인사였다. 또 <KOREANA>원장인 ‘웨인 미첼(Wayne Mitchell)은 한국전(6.25) 참전용사로, 1993년 당시 15년 이상 캐나다 유학·이민컨설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과 협력업체로 계약을 맺고 한국에서 <지구촌 유학원>을 개원하여 지금까지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다.
 

교통사고 이후 진정한 인생 꿈꿔

유학원을 개원하고 이듬해 끔찍한 교통사고를 겪었다. 친구와 소백산맥 야간 여행 중에 승용차가 가로 벽을 들이받고 앞 유리창이 깨지면서 눈썹뼈가 드러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의 말에 의하면 기적 같은 사고라 했다. 눈 주위로 수없이 박힌 유리조각들이 천만다행으로 눈동자를 피했다는 것이다. 목에도 혈관을 겨우 빗겨나가는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 주어진 귀중한 삶은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의미라 생각해요. 세계를 아우르는 인재를 키우는 일, 이보다 의미있는 직업은 별로 없을 껄요.(웃음) 한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인재는 더 넓은 세계에서 더 큰 꿈을 꾸게 합니다. 또 비록 1차 교육에서 실패를 겪었다고 해도 유학은 좌절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세계에는 그 학생에게 맞는 돌파구가 얼마든지 존재하거든요.”

이어서 문 원장은,“저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해요. 첫째, 자신만의 스토리로 책을 쓰고 있으며 자신의 공든 탑을 쌓는다고 생각하라, 둘째, 어느 길을 가든 그곳에서 주인공이 돼라. 셋째, 그리고 베푸는 삶을 살자. 자신이 헤쳐 나갔던 그 길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또래나 후배 또는 2세들, 그 누군가에게는 가장 강력한 조언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두 함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자. 저는 이 말을 학생들이 출국 전에 받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특별히 강조합니다.”


욕심이 있다면 학교를 만들고 싶다.

 <지구촌 유학원>을 통해 외국에서 성공한 수많은 학생들은 이제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외국이나 국내에 대학교수로 있는 경우도 있고,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 수 많은 인재들을 배출해냈다. 그들은 <지구촌 유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저마다의 특장점(달란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능력을 발견하고 극대화시켜 모든 유학생들을 성공사례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진정한 전인교육을 담당할 학교를 만드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라고 한다. 

“그 학교는 <미래세대를 위하여, 남을 위하여, 배워서 남 주는 베푸는 삶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인재를 기르는 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그 꿈을 꾸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 유학을 보낼 때마다 이 학생은 어떻게 변모하여 어떤 글로벌 인재가 될까! 하는 기대를 품습니다. 그들이 세계적인 인재로 변모해 가는 동안, 온갖 다이나믹한 사건들의 연속과 그것을 해결하면서 제가 얻는 희열은 덤이지요(웃음). 이런 삶이 정말 행복합니다.”
 
◆문현호 원장 약력 : 죽변중, 안동고, 한국외국어대. 캐나다 Dorset College, BCIT, Compu College School of Business MCBA (Micro Computer Business Admistration)전공 최우수 졸업. 한국유학협회 이사, 총무 10년 역임.
2000년: 영국문화원의 선별 및 초청으로 Plymouth 에 있는 Mayflower College of English 에서 특별 연수, 2000년: 영국스페셜리스트 자격으로 워일즈 정부 및 영국관광청 초청을 받아 웨일즈 Cardiff에서 Bangor까지 탐방 (MBC PD 2명, 국내 7개 유학원 선정).  2001년: 미국오리건 주 대학연합 초청 주요대학 탐방(세계에서 7개 유학원만 선정).   2006년: 호주유학 골드메달 획득(호주 수상 직접 수여).  국내외 유학 박람회, 워크샵, 컨퍼런스 30회 이상 참가.

                                                                    
                                                                      /임명룡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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