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칼럼 / 초가삼간의 행복 8

 

다소 민감한 부분이 있지만, 한옥과 전통문화라는 입장에서 개고기 논쟁에 대해 의견을 피력해 볼까 한다.

필자는 지금도 개를 키우고 있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털 손질이 많이 가는 삽살개를 키웠다. 키워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삽사리 같은 장모 종은 웬만큼 정성을 쏟아서는 볼품을 유지 할 수 없다. 그것도 놓아 키우면 가시나 풀씨 등에 털에 엉기고, 특히 도꼬마리 씨앗 같은 것이 감기면 한참 애를 써야 한다.

개고기 논쟁은 북극지방에 사는 ‘이누이트’족을 ‘날고기를 먹는 미개인’이라고 폄훼하여 ‘에스키모’라고 불렀듯이 그 바탕에는 문화에 대한 편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문화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고 전통문화의 입장에서 현재의 상황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니, 불필요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구조적으로 보면 한옥은 툇돌을 올라가서 디딤돌에 신발을 벗어 놓고,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간다. 반면 탁자주거는 신발을 신고 곧장 실내로 들어간다. 난방의 기본은 온도유지와 열관리이다.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오며 순환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공기가 순환되는 온돌은 방 전체가 따뜻하고 장시간 열을 간직하기 때문에 적은 연료로 오랜 시간 난방이 유지된다. 이에 반해 불이 꺼짐과 동시에 열기도 함께 사라지는 난로는 열효율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바닥에 정체되는 찬 공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뿐만 아니라 조적조의 집이 대부분인 유럽은 화산재를 이용한 벽돌이나, 돌로 벽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벽에서 뿜어 나오는 냉기는 흙벽의 한옥과는 비교 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추위를 견디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침대에서 개나 고양이를 안고 겨울을 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기초적인 문자와 인성을 기르려는 목적으로 송나라 왕응린이 지었다는 삼자경(三字經)에는 “후한 때 사람 황향(黃香)은-어려움에 처한 백성들의 구휼에 앞장서는 훌륭한 관리가 됨-아홉 살 때 자기 체온으로 부모님의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드렸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중국 역시 온돌이 없었기에 자식이 체온으로 부모님의 잠자리를 따뜻하게 살피는 것을 효행의 표본으로 삼았던 것이다.

앞서 말한 이누이트와 같은 북극지방 사람들은 우리가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듯 개에 의지해서 살아왔다. 개들은 썰매를 끄는 이동수단이요 사냥터에서는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주인을 지켰으며, 저체온증이 걸린 사람들에게 체온을 나누어 생명을 살리는 등 없어서는 안 되는 동물이었다.

농경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 역시 농사철이 되면 소들은 목덜미에 군살이 불룩 솟아났고, 발굽은 물론 쟁기와 소를 이어주는 봇줄이 닿는 곳에서는 피가 흘러 딱지가 졌으며, 밤이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잤다.

이렇게 고생한 소도 형편에 따라 팔아서 살림 밑천도 마련하고 잡아서 먹고 그렇게 살았다. 학비가 많이 드는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인간이 동물들을 사육하는 목적은 다양하며 개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물론 어디나 특별한 경우는 종종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개고기 논쟁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인도인들은 종교적 이유로 소나 뱀 등을 신성시하고, 이슬람은 돼지고기를 금한다. 계룡산 갑사에는 불사를 도운 소를 기리는 공우탑(功牛塔)이 있고, 곳곳마다 소가 주인의 은혜를 갚았다거나 호랑이로부터 주인을 구했다는 등의 의우총(義牛冢), 전쟁에서 주인의 목숨을 구했다하여 매년 장군님의 제사 때 한상 거하게 받는 말 등등... 그리고 오수개 이야기와 같이 들불에서 주인을 구했다는 의구설화(義狗說話)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도 널리 나타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의구설화에 근거한 개에 관련한 무덤이나 기념물 등이 20여 곳이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결코 우리민족이 개와 소를 천시하거나 미개해서 개고기를 먹었던 것이 아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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