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차 길따라 맛따라 동행기 ... 남제동 기획실장

 

울진신문 주최 25차「길 따라 맛 따라」이번의 테마기행은 대가야문화를 택했다. 연록색 나뭇잎이 교태를 부리고 수줍어서 붉어진 진달래꽃이 반기는 길을 따라, 2,000년 전의 시간으로 동행하는 우리들의 발길은 가벼웠다. 

한반도에는 기원전 1세기경 마한 진한 변한 삼한시대가 형성됐다. 이후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시대가 열렸다. 오늘날 사학자 중에는 삼국시대를, 가야를 포함해 4국시대로 보는 견해가 있다. 가야는 경남지방인 변한 지역에서 42년에 건국한 금관가야를 비롯해 6가야를 말한다. 가야국은 한반도에서 520년간 존속한 틀림없는 고대 국가였다.

김해 금관가야가 종주국인 전기 가야연합은 삼국과 함께 세력의 형평을 굳건히 유지하다가 4세기 말부터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의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410년 이후부터 고령의 대가야가 후기가야 연합체의 종주국으로 등장해 152년간 존속하여 지금의 고령에 대가야의 많은 문화 유적을 남겼다. 결극 후기 가야연합은 법흥왕 19년인 530년에 금관가야, 진흥왕 23년인 562년에 대가야가 신라에 복속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고령군에 진입하면서 시야에 들어온 대가야 고분군은 전성기 지배계급 체계가 보이는 듯했고, 대가야 박물관에서는 우수한 철기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거대한 순장(殉葬) 왕릉 모형 내부를 관람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왕권이 뭔지, 권력이 뭔지. 命이 다하여 죽으면 혼자서 갈 것이지, 산 사람을 40여명이나 죽여서 같이 매장하다니... 끔찍한 권력의 순장제도는 당시 대가야에서 성행한 듯하다. 신라 지증왕 3년인 502년에 순장을 금한다는 왕명으로 한반도에선 이때부터 순장제도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어서 간편한 고분군 트래킹을 마치고, 길따라 맛따라의 맛짱!「참살이가든: 054-954-1466」의 담백한 한정식 오찬은 일품을 넘어 명품이였다.

꽃피어 열매 맺힘을 뜻하는 개실마을은 영남사림학파의 종조이자, 조선 성리학의 중추인 김종직(1431~1492) 선생의 5대손이 피신오면서 선택한 선산김씨 집성촌이다. 해설사는 이 마을 앞에 서 있는 문필봉처럼 생긴 산을 접무(蝶舞)봉이라 했다. 꽃을 찾아 춤추는 나비형의 풍수학적 지형이라는 설명에 공감했다. 나는 선생님의 삶과 후세에 남긴 커다란 사상적 학풍과 학맥을 그려 보았다.

이어서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는 우륵의 박물관은「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의 표상이었다. 악성 우륵은 551년 가야금을 안고 혼란기에 접어든 대가야를 떠나 신라로 망명하여 충주에 기거하면서 음악 지도를 하였다. 당시 젊은 19세의 진흥왕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통일신라 음악예술의 발전을 가져 왔고, 오늘날에도 충주 탄금대에는 1592년 임진왜란 시 그곳에 전사한 신립장군의 넋을 우륵의 가야금 곡조가 달래고 있다.
 

돌아오는 길 대구 김광석 거리 음악카페 산책에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김광석의 애석한 생애가 담긴 거리의 음악을 들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아도 좋고, 감사받을 생각도 없이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는 김윤성의 詩「나무」를 ‘김광석’ 이 노래했다. 원형의 석비에 새겨진 이 시가 뜻하는 의미는 적지 않은 무게감으로 다가 왔다.

저녁 만찬장에 나와 격려해 준 최흥로 재구군민회장, 이용기 수석부회장, 출향인 주성중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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