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분의 세계 여행기(8)



<프라하의 연인> 블타바강의 카를교

신부 동상 만지며 기도하면 소원 성취

 

팔자에 없이 커다랗게 만든 나의 산골 꽃밭은 지금 보라보라하다. 이전에는 꽃잔디, 진달래, 벚꽃, 복사꽃, 서부해당화, 금낭화로 이어지며 핑크색 일색이더니 지금은 미스김 라일락, 매발톱꽃, 붓꽃 등 보라색 꽃들이 어깨동무하며 피어나고 있다.

향기로 발길을 멈추게 하는 꽃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움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꽃이 있다. 여행도 그렇다. 눈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이쁜 곳이 있는가 하면, 역사와 전설이 말해주는 암울한 냄새, 슬픔의 냄새와 애절한 사랑의 향기를 간직한 곳이 있다. 후자의 경우가 체코 프라하 카를교다.

국내 여행은 몰라도 해외여행은 간 곳을 또 가기란 쉽지 않다. 죽기 전에 한번도 못가 본 곳이 쌨을 텐데. 굳이 그 비행시간과 비용을 들여 가본 곳을 또 간다는 것이... 그러나 이곳만은 예외다. 몇 년 전에 며칠 다녀오고도 또 한번만 가봤으면 했던 곳이 유일하게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였는 데, 꿈이 현실이 되어 이번에 다시 찾았다.

체코 프라하의 블타바강(Vltava River) 에 놓여 있는 카를교는 그곳만이 간직하고 있는 슬픔이 있는 것 같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슬픔들이 모두 모여 그곳을 흐르는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로...

그렇다고 그곳이 음산하고 칙칙하거나 회색빛이냐 하면 전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고, 하다못해 야경은 이곳을 능가한 곳이 없을 정도로 감탄과 찬사를 자아내게 한다. 밤과 낮의 얼굴색이 달라도 이리 다를까 싶은 다리 또한 카를교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라하의 연인>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고, ‘꽃보다 할배’와 ‘짠내 투어’ 등 방송에서도 자주 소개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 프라하... 1406년에 지어진 카를교는 바닥까지 석교이면서 차량 통행이 제한된 곳으로 그곳에는 사랑과 낭만, 연인들로 낮이나 밤이나 활기차다.

그들 속에는 여행자의 얼굴을 그리는 예술가와 보안미안의 노래와 기타, 바이올린 선율이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풍경을 자아내는 곳... 우리네 모든 인생의 희로애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다리 곳곳에는 30개의 성인상이 조각되어 서 있는 것이 특징인 데, 이들 각각은 빛나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 하나의 다리 위에서도 여러 편의 가을 에세이를 읽는 것 같다. 이 다리는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설이 많은 데, 그중에서도 제일 인기있는 것이 얀 네포무크 신부의 동상에 대한 전설이다.

 

카를 4세의 아들인 바츨라프 4세가 통치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왕비가 프라하 담당 주교인 얀 네포무크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러 왔다. 왕비는 다른 내용도 아닌 자신의 외도 사실을 고해했던 것...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것, 부하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얀 네포무크 신부에게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사실대로 털어놓으라고 채근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왕이었으나 왕비의 사랑만은 독차지 하지 못했으니 어찌 되었겠는가.
그러나 신부는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은 절대로 말할 수 없다고 했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왕은 신부를 다리 아래로 던져 죽게 한다. 며칠 후, 네포무크 신부가 떨어진 블타바강에서는 신부의 시신과 함께 다섯 개의 별이 떠올랐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떨어진 다리 난간에 십자가와 순교모습의 네포무크 신부 부조를 세웠다. 그래서 부조 옆에 세워진 얀 네포무크 신부의 동상 머리 위에는 다섯 개의 별이 왕관처럼 둘러쳐져 있다.
네포무크 신부는 강 아래로 떨어지기 전에 “내 마지막 소원을 이 다리에 바치노라. 이 다리에 선 자는 소원을 이룰 것이다.”라고 축복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얀 네포무크 신부 동상 아래의 청동판 조각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까? 각자의 언어로 소원을 빌며 동판을 만지는 바람에 여행자의 손길이 닿은 곳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옛날 현실은 전설이 되고, 그 전설은 다시 현실에 되어 여행자는 가슴 밑바닥에 묻어둔 소원을 꺼내 간절히 비는가 보다. 나도 소원을 주섬주섬 꺼내 반짝이는 동판을 만지며 빌었다. 왠지 금방이라도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온도의 두근거림은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선이다.

현실에서는 나를 떼어내어 타인처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여행길 위가 유일하지 않을까. 현실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면 여행지에서는 내 자신의 영혼을 꺼내 안녕을 체크하게 된다.

카를교는 세계에서 낮 풍경보다 야경이 유명한 곳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다리에서 석양을 바라보기 위해 또 한 번의 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석양이 다리에 쏟아지고도 감당이 안 되는 지 강물로 떨어져 별처럼 빛났다. 석양하면 크로아티아 자다르 석양을 꼽지만, 카를교의 석양은 슬픔을 머금은 빛이라서 독보적이다.

다리 아래 불타바강에는 석양빛을 가르며 유람선이 지나다니고, 그 안에는 각국의 사연을 간직한 여행자들이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동안 밤은 절로 깊어갔다. 카를교 야경의 완성은 프라하성이다. 유럽에서 성이라 하면, 그 하나로도 독보적 풍경을 자아내는 데, 프라하만큼은 카를교가 있기 때문에 성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프라하성과 카를교는 지게와 지게 작대기처럼 하나로는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다. 둘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에 다른 유럽 어떤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환상의 야경조합이다.
“그대 슬픔이 차고 넘쳐 감당하기 어려울 때, 프라하로 가라! 카를교는 여행자의 슬픔을 껴안을 온도를 늘 유지하고 있는 곳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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