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시인,논설위원)

 

음식 맛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에겐 물회가 그렇다. 내가 교직으로 처음 발령받았던 곳이 조그만 포구가 있는 바닷가 ㅅ초등학교였다.

당시는 경북 동해안의 주요 항구였던 죽변, 후포 등 물론 조그만 어촌마다엔 꽁치,오징어,쥐치,대게 등 해산물이 풍성하게 잡히던 때였다. 좀 뻥을 친다면 쥐치가 하도 많이 잡혀 그물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어, 해녀들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 칼로 그물을 찢고 난 뒤 건져 올렸다고 한다. 나는 그 고기도 이름도 『지치』인줄 알았는데 『쥐치』라고 정확하게 그곳에서 처음 알았다.

당시 학교의 교육과정에도 농촌에서는 농번기, 어촌에서는 어번기가 있던 시절이었다. 학교 아래 동네에 조그만 포구가 있었다. 동네 어선들이 바다에 나갔다 하면 만선의 깃발을 꽂고, 포구로 돌아오곤 했었다. 봄에는 꽁치가 가을에는 오징어가 산더미처럼 잡히던 시절이라 그래서 죽변,후포에는 개조차도 돈이 흔해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개 하며, 집 나가 타지에서 벌이가 시원찮았던 아들에게 오징어 배 타러 오라는 뜻의 『이까 개락』이라고 전보를 치던 때로, 말 그대로 그야말로 바다에는 고기반, 물반으로 풍어가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그냥 그릇째로 쭉 들이키게나.』 70년대 후반, 교직 시작 첫해, 어느 날, 친목회 회식 자리에서 물회를 처음 맛보던 날, 어느 선배가 내게 했던 말이다. 울진에 살면서도 회는 먹어보았어도 물회는 그날, 처음 먹어보았다. 벌건 고추장물에 가자미(도다리)를 찬찬히 썰어 넣은 물회였다. 젓가락으로 건저 먹는 줄 알았더니 그냥 들이키라니!

그 선배는 먼저 시범을 보였다. 양손으로 물회가 담긴 스텐 대접을 들고 그릇째로 쭉 들이키는 것이다. 그러곤 소주 한잔을 입에다 탁 털어 넣었다. 먹는 방식이 예전부터 하였던 것처럼 익숙한 몸짓이었다. 그가 마신 그릇에는 약간의 고추장물과 고기건더기 몇 점이 남았을 뿐이었다. 물회와 소주로 배를 채운 선배의 얼굴은 참으로 편안하고 유쾌해 보였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소주를 따라주면서 어서 물회 맛을 보란 듯이 눈짓을 했다. 당시 소주 알콜도수는 23도쯤 되었을 것이다.(예전 소주를 마셨던 세대들은 요즘 소주는 물 같아서 싱겁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목구멍을 넘어간 짜릿한 소주 기운이 빈속을 타고 치올라왔다. 나도 그가 권하는 대로 했으나 선배처럼 하지 못했다.

마신게 아니라 반 그릇도 먹지 못했다. 그래서 젓가락으로는 고기 점을, 숟가락으로 회 국물을 떠먹었다. 처음 맛본 물회 맛, 도다리가 잘게 씹히는 부드러운 식감! 회는 장맛이라 하더니, 매콤새콤달콤한 장맛이 이내 짜릿한 소주기운을 상쇄시켜 그야말로 온몸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그날 선배는 물회 예찬론을 일갈했다. 숙취한 날, 해장에는 최고, 더운 여름철에는 물회 한 그릇이면 더위도 싹 가신다는 것!

지금은 물회가 음식으로 일반화 되었지만 물회의 시작은 어부들이 선상에서 막 잡아 올린 고기를 간단히 손질하여 고추장에 버무려 물을 부어 먹었다는 것이 통설이기도 하다. 그들은 물회 한그릇으로 원기를 회복하여 거친 파도와 싸우며 생업에 종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물회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들의 억척같은 노동이 담긴 고귀한 생활이요, 인생인 것이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물회를 즐겨먹게 되었고, 외지에서 울진에 온 관광객들이나 지인들에게 울진 물회를 꼭 권한다. 더구나 숙취를 해소시키려는 술꾼들에게는 특효 처방의 해장약으로 여름에는 물회, 겨울에는 물곰국을 말이다. 그래서 울진을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한 말씀 드린다. 울진은 삼욕(온천욕,해수욕,산림욕)의 고장이라고 한다. 그만큼 천혜의 자연환경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래서 울진에 오시거든 한번쯤은 죽변 대끝머리나 후포 등기산에 올라 탁 트인 망망대해를 감상해 보시라, 그러곤 백암이나 덕구에서 온천욕으로 일상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시라. 그 다음 얼음이 동동 뜬 울진 물회를 맛보시라. 매콤새콤달콤한 물회와 뜨거운 매운탕이 시원 소주 한잔에 어우러진 환상의 맛! 그리하여 당신에게 울진 바다의 풍성함을 한 그릇 담아 통쾌, 상쾌하게 선사 할 것이다. 아마 서울 등지에서 먹는 물회 맛과는 하늘과 땅차이 일 것이다. 작년 여름, 죽변 모식당에서 물회를 먹으며 구상했던 졸시 한편으로 이 글을 마친다.

<죽변물회>죽변물회!/가없는 수평선/ 꿈꾸는 바다가 한 그릇 /그리움으로 담겨오고/대끝머리 붉은 태양은/뜨거운 희망으로 가슴 설렌다.//푸른 보자기에 갇힌 /하얀 파도 꽃들이/ 차디찬 얼음덩이에/부서지고/고추장 붉은 근육엔 힘이 불끈 솟는다.//그래서 당신이여!/어젯밤 만취했던 기억도/부끄러웠던 과거도/절망으로 고뇌하고 답답했던 날들도/시원한 파도 한 그릇 죽 들이켜/갈매기 날개 같은/ 아련한 수평선 너머로 모두 날려 보내라!//물회 한 그릇과 소주 한잔/ 그것에 바쳐진 인고와 희생의 바다/존경으로 대한다면/무릇 물심일체!/그대 행복하리라.//죽변물회!/그냥 후루룩 들이킬 수만 없는/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등 굽으며 /거칠고 멍든 파도와 같이 살아온/어매 아배의 바다였다.(김진문 ‘죽변물회’ 전문.2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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