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 산골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내 고향은 원래부터 오지(奧地)였다지만 개발에서 멀어진 세월만큼 더 깊은 첩첩산골이 되어 더 이상 마을로서의 기능마저 상실하고 있었다.

거대한 숲은 맑디맑던 마룡산 자락의 계곡물을 물방울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빨아들여 우거질 대로 우거졌고, 마을을 꼼짝 못하게 가둔 채 사람들을 향해 거칠고 탁한 습도를 훅훅 뿜어댔다. 숨이 턱턱 막히지만 이제 그 숲을 상대할 천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유년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고향은 그렇게 숲이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다.
 
원래 그 숲의 천적은 마을의 소들이었다. 내 어릴 적에는 40여 가구가 사는 제법 규모를 갖춘 산골마을이었다. 마을 전체에 소가 약 50여 마리 정도였고, 지금 마을을 포위하고 있는 거대한 숲은 그때는 단지 쇠꼴에 불과했다. 소들이 숲을 지배하던 시절에 마을에는 초군회라는 일종의 계모임이 있었다. 세상이 지금보다 몇십년 더 순진했던 꿈같은 시절 이야기다.
 
소들은 집단으로 이동을 하면서 풀을 뜯기에 산골 조무래기들은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각자 자기네 소를 몰고 마을 어귀에 모인다. 특정한 장소로 이동한 뒤 소고삐를 쇠뿔에 감아 묶어두면 소들은 저들끼리 몰려다니며 풀을 뜯는다. 소들이 풀을 뜯는 동안 조무래기들은 챙겨온 감자나 옥수수를 구워먹으며 신나게 논다.

편을 갈라 온갖 내기를 하며 즐기는 동안 순번대로 돌아가며 몇몇은 소들이 혹여 곡식밭에 들어가지 않나 살펴본다. 그래도 한두 마리 소는 이탈하게 마련이고 곡식을 뜯어먹다 조무래기들에게 혼나면서 끌려온다. 신기하게도 책임소재는 소를 지키던 망꾼이 아니라 소 주인에게 있었다.
 
초군회(草群會), 회의 결성은 소풀을 뜯기기 시작하는 6월에 시작해서 가을걷이가 끝날 때 쯤 해체된다. 소를 키우는 집은 무조건 회원이다. 회의 소집은 읍내 장날 저녁에 초군회 행수어른 댁 마당에서 열린다. ‘행수어른’이라는 예스럽고 거창한 호칭에 비해 소집 대상은 각자 집에서 ‘소풀뜯기’를 맡은 조무래기들이다. ‘행수어른과 조무래기들’ 도저히 어울 것 같지 않은 조합이 펼치는 유쾌한 동화 같은 여름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장날 초저녁이면 청년들이 마을을 돌며 크게 소리친다. “초군회 모이소! 초군회, 모이소오!” 소리를 듣고 조무래기들이 행수어른 댁 마당에 깔린 멍석위에 옹기종기 모여든다. 멍석에 모인 꼬맹이들이 주눅이 잔뜩 들어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툇마루 끝에 행수어른이 앉으면 그 아래 섬돌에는 터벅머리 꼴농군들이 행수어른의 좌우에 늘어서서 조무래기들에게 잔뜩 겁을 준다. 분위기는 자못 살벌하다. 꼬맹이였던 내가 느낀 정도는 요즘 아침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복수할 때 열리는 주주총회 수준과 맞먹는다.
 
개회시작을 알리고 나면 꼬맹이들이 지난 닷새간 동네 소들이 남의 곡식을 먹은 것을 보고하는 순서가 이어진다. 누구네 소는 어느 집 콩밭에 들어가서 얼마를 뜯어먹었으며, 또 어느 논배미에서 벼를 몇 포기 뜯었노라고 고자질하는 시간이다. 행수어른께 고자질을 올려 받치면 같이 목격했던 꼬맹이들이 손을 들고 증인을 서기도 하고, 소가 먹은 양을 자기가 본 대로 조정하기도 했다.

소는 팽개치고 신나게 놀았던 어제의 동지들끼리 의리와 배신이 난무하는 처절한 시간이다. 그런데 소풀 뜯기며 노는 시간보다 더 재미있고 신난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혼나는 것은 나중의 문제고 우선 서로서로 고자질하고 발뺌하는 놀이에 열을 올린다.
 
고발이 끝나면 인증하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행수어른 앞에 불려가서 종아리를 걷는다. 행수 보좌격인 수총각이 회초리를 들고 소리친다. “너거 소 곡식 먹었나?, 안 먹었나?” 방금 전 고발과 증인을 통해 우리 소가 남의 곡식을 먹은 횟수만큼 매를 맞는다. “앞으로 소를 잘 볼거나 안 볼거나?” 큰 소리를 치면서 매질을 하지만 종아리는 한 대도 안 때리고 멍석만 철썩철썩 내리친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면 청년들은 소가 먹었다는 곡식 장부를 들고 마을을 돈다. 현금이 생긴 장날이라 수금이 쉽다. 엄마는 귀한 막둥이가 즐겁게 놀다가 생긴 일이고, 귀중한 우리 소가 영양 많은 곡식을 먹었다니 기꺼이 대가를 치른다. 초군회는 그렇게 모인 돈으로 가을걷이가 끝날 때 쯤 마을 대잔치를 연다. 행복한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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