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삼간의 행복(13)

 

한국인의 정서를 담고 있는 마당은, ~을 (처음) 맞이한다는 ‘맏앙’이 어원이고, 열다, 펼치다, 놀다, 일하다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마당은 혼자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소통하고 어울리는 역동성의 공간 즉, 우리의 공간이다.

이웃하는 중국과 일본은 정원을 가꾸어 왔고, 한국인들은 자연을 끌어들여 정원을 대치했다. 평지가 대부분을 이루는 중국은 일정한 공간을 벽으로 둘러치고, 그 안에 자신이 원하는 산천의 모양을 인공적으로 꾸몄다. 일본 역시 자연을 단순화 상징화하여 기하학적으로 꾸미는 정원을 선호한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중국식 정원을 꾸미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마당 너머로 보이는 산천을 감상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것을 차경(借景)이라고 하는데 집의 중심이 되는 건물의 창문이나 기둥 사이에 확보된 공간을 통해 비춰 들어오는 풍광을 감상했다.

이로서 한옥은 생활공간인 마당과 감상의 대상인 정원을 모두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집은 자연의 일부로서 어우러진다. 정원은 폐쇄된 일정한 영역에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인위적으로 꾸밈으로서 엄청난 자본이 소요된다.

그래서 정원은 가진 자와 지배자들이 누리는 특권의 공간이라면, 마당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의 공간이다. (중국, 일본) 정원은 극히 개인의 공간인 반면, 한국의 정원은 모두의 것이며 마당은 소통의 공간이 된다.

마당 역시 온돌만큼이나 과학과 지혜가 숨 쉬고 있다.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장경각은 세계 최고의 건축물로 꼽힌다. 그것은 사계절 불어오는 바람과 빛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여 목판(木版)을 안전하게 보호 할 수 있도록 지어진 지혜로운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온갖 기계장비를 동원하여 온도와 습도 등을 조절하는 현대건축과는 애초부터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했다.

찬 공기는 더운 쪽으로 흘러간다. 마당을 앞에 두고 집 뒤쪽에는 나무를 심는 한옥의 특성상 문을 열어 놓는 여름에는 뒤쪽의 찬 공기가 마당으로 이동하면서 시원한 바람이 일어나고 문을 닫는 겨울에는 고도가 낮아진 햇볕이 창문에 직접 비추어 복사열이 추녀 밑에서 맴돌아 따뜻한 열기를 전한다.

그리고 발달된 창호지 덕분에 마당에서 반사되는 빛은 방안의 조명에 큰 도움이 되며, 집의 뼈대를 이루는 목재의 습도를 조절하여 썩지 않도록 보호한다. 이러한 연유로 마당이 필요 없어 보이는 사찰건축 등에서도 마당을 확보한다.

정원은 침대와 탁자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효율이 떨어지는 탁자문화의 연장이라면, 마당은 때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온돌방과 같다고 하겠다. 마당은 텅 비어있어 쓰임새가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

이것을 ‘비어있다’는 철학적 의미에서 보면 ‘(그릇은) 비어있으므로 쓰임새가 있다’ 는 용(用:사용) 과 ‘무엇으로 확정짓지 않음으로서 언제나 다양한 변화가 가능하다’ 는 공(空)의 개념으로 정리 할 수 있다. 용(用)과 공(空)은 남을 수용 할 때 비로소 발현되어지는 것으로 나와 남이 하나 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상생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마당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공간이다. 과거 서구유럽은 국가형태를 갖추지 못했고, 민중의 대부분이 영주에 예속되는 공장노예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중국은 춘추전국, 5호16국 등 내란에 의한 짧은 왕조의 변화, 일본역시 무사집단인 사무라이들의 끝없는 내전으로 민중들은 이웃과 소통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조차 만들 수 없었기에 우리의 마당과 같은 문화는 싹틀 수 없었다.

한국인들은 온돌의 따스함에서 정(情)을 배웠고, 마당을 통해 열린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생각을 표현하는 말과 글에서 우리말 정(情)에 해당하는 외국어가 없고, ‘우리’ 라는 개념역시 희박하며 3.1운동, 금모으기, 월드컵응원, 촛불집회 그리고 현재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이르기까지 세계인들이 놀라워하는 한국인들의 열림과 어울림은 온돌과 마당의 정서를 그대로 닮아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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