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칼럼/ 초가삼간의 행복 (20)


 

세상이 어려워지면 사회적 약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옥의 전통생활방식을 살펴보다가 뜬금없이 주제를 비켜가는 듯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남존여비라는 불평등의 기준에 의해서 희생되어 온 여성, 우리들의 누이와 어머니들을 아프게 하고 있는 배경을 살펴보고자 함이다.

지금도 네팔은 힌두교의 영향으로 ‘차우파디’라 하여 생리중인 여성이 집안에 있으면 집안 식구가 다치거나 죽는다는 관습이 남아있다. 그로인해 젊은 여성들은 매달 며칠씩 열악한 곳에 감금되어야하며 가끔 죽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차우파디’와는 다르지만, 어머니 또래에 해당하는 80대 할머니들이 말씀하시길 “젊었을 때는 ‘부정한 날(생리)’이 닿으면 부정 탈것을 염려해서 절에 가지 않았고, 이에 대해 비구니스님은 (부정 탄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절에서 살아갈 수 있나요!’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못내 찝찝해서 가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의 생리가 부정하다는 것은 바이블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인류문화는 여성을 차별하고 있고, 현대사회는 양성평등에 노력하고 있지만, 사회관습이 쉽게 바뀌지 않아 그 피해는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인류문화는 조선의 칠거지악을 만들어 냈고,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회적 억압이 만들어 낸 수많은 열녀, 효부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재산권과 사회적 지위가 박탈당한 조선의 여성들이 가난과 함께 짊어져야 하는 또 다른 책무는 집안의 미래와 조상들의 내세(來世)를 이어가는 일이다.

인도에서 시집왔다는 김수로왕의 부인 허 황후를 시작으로 많은 씨족들의 족보에는 자신들의 시조(始祖)를 중국계, 화란계, 일본계, 베트남계 등 분명한 역사적 사실에 의해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는 누구에게도 부정되기를 거부하는 단일민족 (혈연공동체의식) 이라는 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 같은 혈연공동체의식은 점차 희석되고 있지만, 가족대소사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 두어 시간 남짓 행해지는 결혼식에 전국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이 핏줄 확인을 위해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같이 사라지고, 상(喪)을 당하면 얼굴은 물론 촌수계산도 가물가물한 혈족이라 할지라도 찾아뵙는 것은 당연한 예의이다.

뿐만 아니라 누구라 할 것 없이 유명대학을 입학했거나 높은 관직에 오르면 종친회에서부터 부모들의 친목단체에 이르기까지 혈연, 지연, 학연 등 인맥이 총동원되어 펼침막을 걸어 축하한다.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출세할 사람’, ‘출세한 사람’ 과 같은 핏줄이며, 인간적으로 가깝다는 것을 공포하려는 기저심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자와 가까워지려는 2인자의 심리를 가지고 있어 펼침막을 걸어 축하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인류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인지상정이라 한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이라는 우리 문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2인자의 심리란 자기보다 힘센 사람과 가까워져서 그 권력을 이용해 자신을 과시하고 이익을 쉽게 얻으려는 것을 말한다.

-무리 생활을 하는 짐승들에게도 나타난다. - 대표적으로 박근혜대통령 주변에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던 문고리 4인방이 여기에 속하며, 정승집개를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필자 역시 부탁이나 해결할 일이 있어서 관공서 등에 갈라치면, 인맥을 총동원하여 소개와 추천을 받는다. 분명 효과가 있다. 좀 더 확대되면 음식점 등에서 생면부지의 종업원을 이모, 고모, 언니 등으로 부르며 남이 아님을 강조한다. 어떻게든 인맥을 연결하여 특별한 대접을 받겠다는 한국인의 심리 현상이다. 이 같은 우리들의 모습에 외국인들은 매우 놀라워한다.

지난 호에 말했듯이 장손 중심의 조선사회는 사람의 귀천과 함께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직업의 귀천이 따랐다. 가난한 양반의 자손인 士는 굶어도 책을 읽어야 했으니, 그 가난의 책임은 태어날 때부터 약자인 여성들의 몫이 아니었을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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